경비병들이 무기를 손에 쥔 채 밭 가장자리에 버티고 선 가운데 현지 농부들이 경비병들 너머에 있는 밭을 유심히 살피며 대체 얼마만큼 귀하고 값비싼 작물이 흙을 뚫고 싹을 틔웠는지 감을 잡으려고 애쓴다. 호기심이 불붙은 농부들은 참을성 있게 땅거미가 지기만을 기다리다가 밤이 되어 경비병들이 병영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고 환호한다.
보초를 서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농부들이 막무가내로 밭으로 달려가더니 달빛을 받으며 작물을 파내고는 살그머니 그 작물을 자기 밭으로 옮겨 심는다.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귀족 식품은 자기들이 처음으로 맛보게 될 터였다. 한 편의 연극 같은 절도 행위를 전해 들은 밭 주인은 흡족한 미소를 띤다. 그의 교활한 계획이 멋지게 성공한 것이다.
냉동 해시 브라운스(hash browns: 찐 감자를 잘게 썰어 기름에 볶는 요리)를 프라이팬에 던져 넣으면서 위와 같은 감자 이야기를 떠올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소박한 식품이 한때 상류층의 업신여김을 받고 극도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토마토와 마찬가지로 감자는 남미가 원산지이며, 남미 잉카족은 고산지대에서 재배한 감자의 덩이줄기를 서리로 얼려 물기 없는 전분 상태로 만들었다. 오늘날의 냉동 프렌치프라이를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처리한 감자는 보존 기간이 늘어나 다른 작물의 작황이 좋지 않을 때 구황식품 역할을 했다. 그러나 1570년대에 유럽에 소개된 감자는 영양분이 풍부하고 조리가 간편한 재료임에도 잘못된 홍보 전략으로 실패한 제품처럼 철저히 외면당했다.
1596년 스위스의 식물학자 카스파 바우힌(Caspar Bauhin)은 감자에 솔라눔 투베로숨 에스쿨렌툼 (solanum tuberosum esculentum)이란 학명을 붙였지만, 자신의 저서에 감자를 기괴하게 묘사한 스케치와 퉁퉁배(배 속에 가스가 차서 배가 붓는 증상), 음란한 생각, 나병 등을 일으킨다는 악의적인 내용을 실었다. 남사스러운 상황을 유발하여 로맨틱한 만남을 확실히 망칠 수 있는 3대 요소다. 바우힌이 어째서 그 같은 결론에 이르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옹이가 지고 울퉁불퉁한 감자의 외양을 보고 나병 환자의 문드러진 사지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일어난 광우병 사태로 영국산 쇠고기의 신뢰도가 추락했듯이 바우힌의 끔찍한 묘사 때문에 감자의 평판은 땅으로 떨어졌고, 사람들은 제아무리 극심한 기근이 닥쳐도 감자만은 절대로 먹지 않았다.
앞에서 약탈당한 감자밭의 주인은 프랑스의 식품학자인 앙투안-오귀스탱 파르망티에(Antoine Augustin Parmentier)로서, 프로이센의 전쟁 포로로 잡혀 있을 때 말에게나 먹이는 감자를 식량으로 배급받았다. 3년 동안 포로로 지내면서 비천한 음식으로 취급되던 감자만 먹었는데도 그는 튼튼한 몸이 되어 풀려났다.
결국 파르망티에는 감자가 악마의 음식이 아니리라는 확신을 품었고 과학자, 농부, 프랑스 정부, 미신에 젖은 일반인들에게 감자가 방귀를 유발하며 사지를 썩게 하는 최음제가 아니라 훌륭한 빵 대용품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오랫동안 애를 썼다. 1771년에는 과학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지만 농부와 일반인의 거부감은 여전했다. 그래서 그는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유명인사에게 감자 요리를 대접한다든가, 마리앙투아네트 왕비에게 감자 꽃으로 장식하도록 설득하는 식으로 교묘한 홍보 전략을 펼쳤다.
파리 서쪽의 뇌이(Neuilly)에서 감자를 심은 모래 황무지 약 2만 2,000평방미터에 무장한 경비병을 세워놓은 까닭도 농부들을 속여 감자가 미천한 사람들의 주린 배나 채우는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귀족 사이에 유행하는 사치품이라는 소문을 내기 위해서였다. 청개구리 심리를 이용한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 파르망티에는 감자 조리법에 이름이 붙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전분이 많은 감자가 영양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말 사료에서 기근을 이겨낼 구황식품으로 서서히 승격된 데도 그의 노력이 컸다. 그러나 흉년에나 먹던 감자가 아일랜드에서는 주식이 되고, 결과적으로 병충해에 약한 감자가 한꺼번에 말라죽자 대기근이 일어나 무수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비극의 연출가가 되기도 했다.
'역사·문화 >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05. 혁명가들의 바지 (3) | 2022.08.16 |
---|---|
04. 어떻게 늑대가 개로 변신했을까? (1) | 2022.08.15 |
03. 비누 전쟁 (1) | 2022.08.14 |
01. 로마시대 엽기적인 공중변소 (3) | 2022.08.12 |
00.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연재 예고 (1) | 2022.07.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