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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자기만의 산책>11

10. 린다 크랙넬 (마지막 회) 어떤 이야기든 그걸 쓰는 것은 대체로 다시 쓰는 것이다. … 나는 그것을 반복해서 하는 걷기로 생각한다. 모양이 다양하거나 방향이 바뀌는 고리 같은 것으로 본다. 우리의 기억을 다시 찾아가 보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는 기억을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그걸 미묘하게 재구성한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객관적인 현실이라기보다는 다시 만들고 또 만드는 상상의 연극과 더 비슷하다. - 린다 크랙넬, 《되돌아가다》 도로시 워즈워스, 낸 셰퍼드, 아나이스 닌, 린다 크랙넬을 포함해 걷는 여성들에게 같은 곳을 다시 걷는 행위는 현재의 자아와 미래를 연결해 준다. 인간의 짧은 수명이란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길의 힘 덕분에 우리는 과거의 자아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고, 앞으로 올 미래의 자.. 2022. 4. 30.
09. 셰릴 스트레이드 10년 전 내 모습을 상상했을 때, 나는 이때쯤이면 첫 책을 출간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단편을 몇 개 썼을 것이고, 소설을 본격적으로 시도해 봤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 내 처지에 책은 꿈도 꿀 수 없다. 혼란스러웠던 지난해 글쓰기는 나를 영원히 떠나버린 것처럼 느껴졌지만, 도보 여행을 하면서 그 소설이 다시 내게 돌아오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내 머릿속을 떠도는 노래의 파편과 광고 CM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날 아침 올드 스테이션에서 … 나는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다. -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Wild)》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힘든 하이킹 코스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까지 2,650마일에 달하며, 미국의 서해안과 지극히 건조한 내륙 지.. 2022. 4. 29.
08. 아나이스 닌 어제 나는 내 글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은 이대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공상과 창조의 문은 닫힌 것처럼 보인다. 나는 가끔 몇 페이지씩 썼다. 오늘 아침은 심각하고, 진지하고, 단호하고, 금욕적인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오전 내내 아빠의 책에 대한 작업을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에 센강을 따라 걸었다. 강 가까이 있으니 아주 행복했다. 심부름, 카페, 화려함, 생의 이 모든 움직임과 콧노래와 색채에 흠뻑 취해 걸었다. 이런 것들은 크나큰 갈망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어떤 해답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열병이자 마약 같다. 샹젤리제 대로가 날 흔들어 놓는다. 기다리는 남자들, 바라보는 남자들. 따라오는 남자들. 하지만 나는 금욕적이고, 슬프고, 내성적이며, 걸으면서 책을 쓴다. - 아나이.. 2022. 4. 28.
07. 낸 셰퍼드 하지만 산을 오르면서 생각의 황홀경에 잠기고, 완등하기 전에, 최후의 정상에 오르기 전에, 시간은 이렇게 빨리 흐른다. 길고 좁은 길 뒤에, 가파른 바윗길을 따라, 뾰족한 처마돌림띠를 두른 것 같은 눈 덮인 동굴 밑에서 얼음처럼 찬물이 굴러 떨어진다. 이제, 이 산중턱의 동굴에서, 정상도 아닌 곳에서, 새파란 세상도 보이지 않고, 멀리, 도달할 수 없지만, 하지만 이 회색 고원, 바위가 흩어져 있는, 거대하고, 조용한 곳, 그 어두운 호수, 그 고생스러운 험준한 바위들, 그 눈. 산은 그 안에서 문을 닫아버리지만, 그것은 하나의 세상. 그토록 광대한 세상. 그래서 아마도 마음은 이루리라, 크나큰 고생,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 허나 그것의 공포와 영광과 힘에 대한 거대하고, 어둡고, 불가사의한 느낌을. .. 2022. 4. 27.
06. 버니지아 울프 어느 날 타비스톡 광장을 걷다가 가끔 글을 쓸 때 그런 것처럼 《등대로》를 마음속에서 썼다. 그 이야기는 무의식 속에서 급류처럼 세차고 격렬하게 쏟아져 나왔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터져 나오면서 곧바로 다른 아이디어를 낳았다. 마치 관으로 비누 거품을 부는 것처럼 수많은 아이디어와 장면이 내 마음속에서 쏜살같이 흘러나왔다. 걸어가는 동안 내 입술이 저절로 말을 뱉어내는 것 같았다. 대체 무엇이 그런 비눗방울을 불었을까? 하필 왜 그때였을까? 나도 정말 모르겠다. - 버지니아 울프, 《존재의 순간들》 나무가 줄줄이 늘어선 블룸즈베리 광장을 거니는 버지니아 울프는 그 순간 아주 거대한 창조력을 전달하는 수동적인 도구가 된다. 그 창조력은 그녀의 발자국이 빚어내는 리듬 속에 살고 있고, 《등대로》는 일종의 ‘자.. 2022. 4. 26.
05. 해리엇 마티노 나는 생애 최초로 자유롭게 마음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기 사는 것이 좋습니다. 다년간 무기력하게 질병에 시달린 후 이제 내 인생은 (이 계절에) 거칠 것 없이 방랑하는 인생이 됐죠. 나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경계 지방에 사는 사람처럼 말을 타고 도붓장수처럼 걷고 등산가처럼 산을 오르고 가끔은 친절하고 유쾌한 이웃들과 짧은 소풍을 가고 가끔은 하루 내내 산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 해리엇 마티노가 랄프 왈도 에머슨에게, 1845년 7월 2일 해리엇 마티노는 노퍽에서 유니테리언 교파 목사와 그의 아내가 낳은 여덟 자식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15년에 걸친 문학적, 지적경력을 통해 마티노는 사회학자, 노예 폐지론자, 소설가, 여성과 빈민을 위한 활동가로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또한 .. 2022. 4. 24.
04. 사라 스토다트 해즐릿 그들은 호기심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 특히 하일랜드 사람들이 더 그랬다. 그리고 그들은 질문을 던지기 전에 대개 이런 식으로 말문을 뗐다. “오늘은 무지 덥지요.” “아, 정말 덥네요.” “오늘 얼마나 멀리 나왔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저는 크리프와 C를 거쳐서 왔어요.” “와! 진짜 무지하게 피곤하겄어요. 그래서 어데로가요” “스털링이요.” “아이구, 거긴 아주 먼디. 밤에나 도착하겄어요.” “아, 전 아주 잘 걸어요. 3주 전에는 170마일이나 걸었어요.” “맙소사! 그럼 당신은 크리프 사람이 아니구먼요” - 사라 스토다트 해즐릿, 1822년 6월 1일 일기 1822년 4월 21일 리스 스맥 수퍼브호를 타고 에든버러에 도착한 사라 스토다트 해즐릿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2022. 4. 22.
03. 엘렌 위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가이드와 함께 내려오는 신사 한 명을 봤다. 그들도 나를 봤다. 나는 사람들이 평소 다니는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내 갈망을 채우기 해서 그랬던 것인데, 이제는 거기서 더 멀어지게 됐다. 그들이 혹시라도 나를 다른 곳에서 볼 때 아까 본 사람이란 걸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내 옷이나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다. 길을 가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킬까 두렵다. “저 여자가 바로 스노든산을 내려올 때 봤던 그 사람이야. 여자 혼자서 내려오더라고!” - 엘렌 위튼, 가정교사 잡지 1825년 6월 중순의 어느 화창한 날 랭커셔에 사는 48세의 가정교사 엘렌 위튼은 웨일스 지방을 여행하다가 혼자서 스노든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감에.. 2022. 4. 21.
02. 도로시 워즈워스 나는 매일 아침 6시 정도에 일어나. 같이 걸을 사람이 없으니까 8시 반까지 책을 들고 걸어. 날씨가 좋으면 … 가끔 우리는 아침에 걸어. … 차를 마신 후에 다 같이 8시까지 걷지. 그러고 나서 정원에서 혼자 오랫동안 걸어. 특히 달빛을 받으며 걷거나, 황혼이 질 무렵 걷는 게 좋아. 이럴 때 곁에 없는 친구들을 생각해. - 도로시 워즈워스가 제인 폴라드에게, 1791년 3월 23일 1799년 12월 도로시 워즈워스는 오빠인 윌리엄과 함께 더럼주의 삭번에서 출발해 웨스트모어랜드에 있는 켄달까지 70마일을 걸었다. 둘은 그들이 태어난 고향인 레이크 지역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1783년 고아가 된 후로 도로시는 형제자매들을 떠나 오랫동안 다른 곳에서 살았다. 울퉁불퉁한 길과 산길을 거쳐서 윌리엄과 도로시.. 2022. 4. 20.
01. 엘리자베스 카터 당신이 내 인생 전체와 내가 나눈 대화를 모두 담은 진실한 이야기를 바란다면, 우선 아침에 나의 잠을 깨워주는 독특한 장치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내 침대 머리맡에는 벨이 하나 있고, 그것에는 노끈과 납 조각이 하나 달려 있다. 내가 부서진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산들바람 소리에 깨어 있을 때, 그 노끈은 유리창의 갈라진 틈을 통해 밑에 있는 정원으로 내려가 섹스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섹스톤은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나 마치 내 머리맡에 있는 종을 치는 것처럼 있는 힘껏 그 노끈을 잡아당긴다. 이렇게 아주 기이한 발명품 덕분에 나는 간신히 일어나게 되고 … 아침 6시에 대체로 내가 하는 일은 내 지팡이를 집어 들고 걷는 것이다. 가끔은 혼자 걷고, 또 가끔은 동행과 같이 걷기도 한다. 가.. 2022. 4. 19.
00. <자기만의 산책> 연재 예고 걷기를 열망하고 글쓰기를 갈망한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을 만나다! 낯설고 불친절한 세상을 향해, 단단한 발걸음을 내디딘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금 기록한 책! 우리는 걷기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로 규정된다. 우리는 걷고 말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대개는 언어로 생각한다. 우리의 걷는 리듬과 생각하는 리듬은 일치한다. 장자크 루소는 “걸어야만 명상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고, 윌리엄 워즈워스는 “우리에게 너무한 세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걷는다”라고 했다. 당시 남성 작가들에게 걷기란 당당한 욕구이자 당연한 권리이자 재능의 발현이었다. 그렇다면 여성 작가들은 어땠을까? 물론 여자들도 걸었다. 그리고 자신의 걷기와 생각에 관해 글을 썼고 수 세기 동안 그렇게 해왔다. 비록 인정받는 수필가인 남편.. 2022.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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