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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바다 인문학>11

10. 신에게 바치는 생선 '옥돔' (마지막 회) 신에게 바치는 생선 옥돔은 신에게 바치는 생선이다. 옥돔을 가장 많이 본 곳은 구좌읍 송당 본향당과 조천읍 와흘 본향당이다. 제주도는 1만 8,000여 신이 사는 신들의 고향이다. 제주 신은 대부분 마을신으로 자리 잡았고, 그 내력은 마을설화로 이어지며 이를 ‘본풀이’라고 한다. 매년 마을 단위로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곳이 본향당이다. 본향당은 제주도 사람들에게 뿌리와 같은 곳이므로 이곳에 제주 바다 최고 생선인 옥돔을 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제주 신은 풍년과 풍어 등 생산 활동과 살림살이, 심지어 죽음까지 관장했다. 본향당에 삼색(三色)의 지전(紙錢: 저승의 돈)과 물색(物色: 신에게 바치는 옷감), 실타래(명命실) 등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본향당에서는 정월에 본향신에게 드리는 새.. 2022. 4. 15.
09. 방어, 먹성이 좋은 바다 돼지 먹성이 좋은 바다 돼지 모슬포항에서 출항한 방어잡이 배들은 마라도 서남쪽에서 주로 방어를 잡는다. 아침부터 50~60척의 방어잡이 배가 모여들자 해경이 보호하고 나섰다. 우리 국토 끝 섬인 탓이다. 이곳이 제주도에서 소문난 방어 어장인 ‘신알목’이다. ‘새로 찾아낸 마라도 아래쪽 물목’이라는 의미다. 방어는 살아 있는 자리돔을 미끼로 해서 잡는다. 그래서 방어잡이를 하려면 새벽에 나와 들망으로 자리돔을 떠야 한다. 그런데 자리돔은 보통 동이 터야 움직이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잡아 자리밧(자리돔이 많이 서식하는 바다)에서 자리돔을 먼저 잡아야 한다. 큰 모선(母船)에 딸린 작은 배 2척이 그물을 끌고 가서 자리돔이 지날 만한 곳에 그물을 내리고 있다가 떠서 잡는다. 그래서 배 3척이 그물을 떠서 ‘삼척 들.. 2022. 4. 14.
08. 서대는 소의 혀와 비슷하다. 서대는 소의 혀와 비슷하다 서대는 서해와 남해에 많이 서식한다. 어획량을 봐도 여수, 목포 등 전남에서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며 이어서 인천과 전북순이다. 서대 어획량은 1990년대 3,000~4,000톤이었으나 최근에는 절반으로 줄었다. 반면에 한강 상류인 행주대교에서 전어와 함께 서대가 그물에 종종 잡히는 일도 있다. 서해와 한강의 경계 지점인 김포시 용강리 유도를 기점으로 무려 약 35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서대를 잡을 때는 저인망 그물을 이용한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기 때문이다. 보통 20미터가 되지 않는 그물을 300~400개씩 가지고 나가 그물을 펼친다. 7월 금어기를 제외하고 6월부터 10월까지 조업을 한다. 사리에 물길을 따라 그물을 내리고 물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낮에 내린 그물은 어.. 2022. 4. 13.
07. 대구는 일찍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다. 수산왕 가시이 겐타로, 바다를 점령하다 대구를 잡는 전통 어법은 어전이었다. 어전은 조기, 대구, 청어처럼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무리를 이루어 이동하는 어류를 포획하는 어법이다. 지역에 따라 어살 혹은 방렴이라고도 한다. 남해와 사천의 죽방렴도 원래 이름은 ‘경상도 방렴’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처럼 멸치가 아니라 대구나 청어 등을 잡았다. 조선시대에 대구는 거제도 특산물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거제현」에 “토공(土貢: 공물)은 대구어·문어·생포(生鮑: 전복) ·미역·우무(牛毛)·표고버섯·세모(細毛)”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대구 어장은 백성들이 소유할 수 없었다. 1906년 ‘칙지(勅旨: 대한제국에서 내리는 문서)’를 보면, 거제도·가덕도· 가조도 등 ‘어기(漁基: 어장)’를 의친왕부(義親.. 2022. 4. 12.
06.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바닷물고기 '숭어'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바닷물고기 『해동역사』를 보면, 발해에서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할 때 외교 선물로 숭어를 준비했다고 한다. 또 숭어는 조선시대에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이유로 숭어(崇漁)라고도 불렸다. 조선시대에 숭어 중에서 평양의 대동강에서 잡은 동숭어를 으뜸으로 쳤다. 『승정원일기』 1886년(고종 23) 10월 22일에는 고종 때 대왕대비의 생일잔치에 동숭어회를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평양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냉면과 함께 대동강 숭엇국이 꼽힌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이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에게 보낸 편지에도 동숭어를 선물로 보내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 달라고 기록되어 있다. 허균이 지은 『성소부부고』의 「도문대작」에는 “수어는 서해에.. 2022. 4. 11.
05. 관리들이 웅어를 빼앗는다. 물고기마저 의리를 지키려고 사라졌구나 웅어는 청어목 멸칫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비늘이 잘고 몸은 은백색이다. 전남 신안, 무안, 영광 등에서는 웅에· 우어, 충청도 바닷가에서는 우여 ·위여 ·우어 등으로 불린다. 강화도에서는 ‘깨나리’, 해주에서는 ‘차나리’라고도 한다. 비슷한 어류 중에 ‘싱어’가 있어 이름이 헷갈린다. 가장 생소한 이름은 ‘충어(忠魚)’다. 당나라 소정방(蘇定方, 592~667)이 백제와 싸울 때 백마강에서 웅어를 찾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물고기마저 의리를 지키려고 모두 사라졌구나”라며 웅어를 충어라고 불렀다고 한다. 웅어는 바다에 살다가 봄이면 갈대가 많은 하구로 올라와 알을 낳고 가을이면 다시 바다로 내려가 겨울을 난다. 그리고 단오 무렵 강어귀로 올라오.. 2022. 4. 10.
04. 조선 시대에는 세금을 조기로 납부했다? 조기로 세금을 납부하다 『세종실록지리지』 「나주목 영광군」에 “석수어(石首魚)는 군의 서쪽 파시평(波市坪)에서 난다. 봄· 여름 사이에 여러 곳의 어선이 모두 이곳에 모여 그물로 잡는데, 관청에서 그 세금을 받아서 국용(國用)에 이바지한다”고 했다. 파시평은 칠산 바다를 말한다. 또 『세종실록지리지』 「황해도 해주목」에도 “토산(土産, 토산물)은 석수어가 주의 남쪽 연평평(延平坪)에서 나고”라고 되어 있어 장소만 ‘연평평(연평도)’이라고 바뀔 뿐 같은 내용이 소개되었다. 두 곳 모두 조기의 주산지였다. 조선시대에 조기는 제수용품, 진상품, 하사품, 약재, 장류, 조세 물품 등 다양한 쓰임새로 나타난다. 『태조실록』 1397년(태조 6) 4월 1일에 “새로 난 석수어를 종묘(宗廟)에 천신(薦新)했다”고 기.. 2022. 4. 8.
03. 일본의 고등어 공급 기지로 전락한 어장 일본의 고등어 공급 기지로 전락한 어장 쓰시마섬을 근거지로 고등어잡이를 하던 일본 어민들은 봄부터 여름 사이에 부산이나 거제도 바다에서 밤에 불을 밝히고 고등어를 잡았다. 이들 중에는 부산이나 마산 객주에게 고등어를 팔기도 했다. 마침내 일본이 부산에 ‘부산수산주식회사’를 설립해 이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직접 고등어 염장을 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남 거제도 장승포, 울산 방어진, 경주 감포, 포항 구룡포, 전남 여수 거문도 등 조선의 연안에 일본인 어촌을 건설해 고등어를 잡아갔다. 이들 지역에 등대가 세워진 것도 이 무렵이다. 통영의 욕지도, 여수의 안도, 고흥의 나로도 등에도 건착망(巾着網: 자루그물 없는 긴 그물로 어군을 포위해 발아래 조임줄을 조여서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잡는 .. 2022. 4. 7.
02. 과메기의 원조는 청어다! 일본의 니신소바와 독일의 청어버거 일본에는 청어 음식으로 니신소바(にしんそば)가 있다. 사실 우리도 해산물을 넣어 국물을 만들거나 직접 해산물을 넣어 먹는 국수나 칼국수가 있기에 놀랄 일도 아니다. 생선은 비리다는 선입관에서 비롯된 오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청어 국수를 맛볼 수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니신소바는 달콤하게 조린 청어와 메밀국수의 조합이다. 에도시대에 많이 잡은 청어를 말려서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의 과메기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일본을 대표하는 소바(そば)가 더해진 점이 흥미롭다. 일본 도쿄 곳곳에는 절인 청어와 생메밀 면을 파는 곳이 많다. 청어조림, 청어알 스시, 청어 알젓도 시장에서 볼 수 있다. 새해 첫날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오세치(おせち) 요리에도.. 2022. 4. 6.
01. 명천의 태씨가 잡았으니 명태라고 하다? 명천의 태씨가 잡았으니 명태라고 하다 명태는 명실공히 조선의 물고기다. 중국에서는 명태가 잡히지 않았고, 일본에서도 명란을 만들기 전까지 명태에 관심이 없었다. 중국어 밍타이(明太)나 일본어 멘타이(めんたい) 모두 조선의 명태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명태라는 이름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다. 울산 출신 박계숙(朴繼叔, 1569~1646) ·박취문(朴就文, 1617~1690) 부자가 함경도 회령에서 근무한 것을 정리한 『부북일기(赴北日記)』의 1645년(인조 23) 4월 20일 일기에 ‘생명태(生明太)’가 등장하지만, 공식적인 것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652년(효종 3) 9월 10일의 기록이다. 이 기록에는 “강원도에서 대구 알젓 대신 명태 알젓이 왔으니 관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2022. 4. 5.
00. <바다 인문학> 연재 예고 동해 서해 남해 제주도에서 건져 올린 바닷물고기 이야기 바다 인문학을 위해 바다는 해양생물이 생활하는 삶터로 조석, 조류, 파랑, 해류, 수온 등의 영향을 받는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해·서해· 남해는 방향에 따른 바다 이름이지만, 특성을 보면 뚜렷한 차이가 있다. 동해는 수심이 깊고 대륙붕이 발달하지 않아 조석보다 해류 영향이 크다. 서해는 수심이 얕고 대륙붕이 발달해 해류보다 조석과 조류 영향이 크다. 여기에 임진강·한강·금강· 영산강 등 서해로 흐르는 큰 강이 많고, 섬이 모여 있어 주변에 갯벌이 발달했다. 남해는 내만이 발달하고 섬이 많으며, 역시 조석과 조류 영향을 받는다. 또 조류를 보면 동해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며, 남해와 제주도는 태평양과 동중국해를 통해 올라온 높은 온도와 염도의 영향을 ..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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