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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바다 인문학>

10. 신에게 바치는 생선 '옥돔'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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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돔마을로 유명한 서귀포 남원읍 태흥리에서는 당일 잡은 옥돔을 그날 마을의 위판장에서 경매를 한다. 남원읍 태흥2리 포구.
 



신에게
바치는
생선

옥돔은 신에게 바치는 생선이다. 옥돔을 가장 많이 본 곳은 구좌읍 송당 본향당과 조천읍 와흘 본향당이다. 제주도는 1만 8,000여 신이 사는 신들의 고향이다. 제주 신은 대부분 마을신으로 자리 잡았고, 그 내력은 마을설화로 이어지며 이를 ‘본풀이’라고 한다. 매년 마을 단위로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곳이 본향당이다.

구좌읍 송당마을 본향당에 제물로 꼭 챙겨야 할 생선은 옥돔이다. 바구니마다 옥돔, 과일, 빙떡, 멧밥 등이 올려졌다.
 

본향당은 제주도 사람들에게 뿌리와 같은 곳이므로 이곳에 제주 바다 최고 생선인 옥돔을 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제주 신은 풍년과 풍어 등 생산 활동과 살림살이, 심지어 죽음까지 관장했다. 본향당에 삼색(三色)의 지전(紙錢: 저승의 돈)과 물색(物色: 신에게 바치는 옷감), 실타래(명命실) 등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본향당에서는 정월에 본향신에게 드리는 새해 인사인 신과세제(新過歲祭), 2월 초하루 제주도에 들어와 보름에 나가는 영등신을 위한 영등굿, 여름 장마철 습기와 곰팡이를 불고 떨고 푸는 마불림제, 가을 곡식을 거두어들인 다음에 하는 신만곡대제(新萬穀大祭)를 지낸다.

몇 년 전 구좌읍 송당마을 본향당에 갔을 때 사과, 배, 한라봉, 초코파이, 마른 옥돔 찐 것, 나물과 삶은 달걀, 빙떡 등이 있었다. 본향당에는 밥 세 공기, 물 세 그릇, 소주 한 병, 쌀 세 봉지가 놓여 있었다. 400여 년을 자랑하는 팽나무를 신목(神木)으로 모시는 조천읍 와흘마을 본향당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제사 때나 꿈자리가 사납거나 큰일을 치러야 하거나 물질을 하러 갈 때도 본향당 아니면 해신당(海神堂)에 가서 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빌었다. 이럴 때도 여유가 있으면 옥돔을 올렸다. 신에게뿐만 아니라 조상신에게 올리는 제사상에도 옥돔은 빠지지 않는다.

신이나 인간이나 산 자나 죽은 자나 옥돔을 즐겼다. 조선시대에 옥돔은 제주도의 진상품이었다. 일본의 판화가 안도 히로시게의 물고기 연작 중 <큰 물고기>는 붉은 옥돔과 검은 옥돔을 그린 그림이다.
 

제사에 탕 대신에 올리는 것을 갱국이라고 하다. 갱국도 제주도 동쪽에서는 미역을 넣어 끓였지만, 서쪽에서는 물을 넣어 끓였다. 옥돔이 많이 나오는 가을과 겨울에 어머니들은 미리 옥돔을 구입해 제숙(생선적生鮮炙)으로 준비해두었다.

신이나 인간이나 산 자나 죽은 자나 옥돔을 귀하게 여기며 그 맛을 즐기는 것은 같다. 조선시대에 옥돔은 전복, 해삼, 미역과 함께 제주도의 진상품이었다. 본래 해산물은 잠녀(潛女: 해녀)와 포작인(浦作人: 남성)이 함께 채취했다. 특히 미역이나 해조는 여자, 해삼이나 전복은 남자가 주로 채취했다. 그런데 제주도 남자는 공물 진상은 말할 것도 없고 관아 물품 담당, 수령과 토호의 수탈, 노역 징발에 잦은 왜구 침입으로 군역까지 부담하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많은 제주도 남자가 15세에 섬을 떠나 유랑한 이유다. 제주도 해녀가 본격적으로 바다에서 물질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다.


도미의
여왕


옥돔은 이름만큼이나 맛이 있고 비싸다. 그래서 귀한 손님, 조상님, 신에게 올리는 생선이다. 조천읍 와흘마을 본향당 중심에 자리 잡지 못하고 동쪽 구석에 있는 여신(女神)인 서정승따님도 옥돔을 받는다. 와흘 ‘아지망(아주머니)’들은 사냥을 관장하는 본향당 백조도령보다는 생업과 산육(産育: 아이를 낳아서 기름)에 치병(治病)을 관장하는 서정승따님 애기씨에게 제물을 더 자주 올린다.

옥돔은 다른 생선과 마찬가지로 비늘이 선명하고 몸에 탄력이 있는 것이 좋다. 또 눈이 맑은 것이 좋다. 대개 냉동 건조시켜 제주도 특산물로 유통한다. 특히 옥돔구이와 옥돔미역국이 유명하다. 옥돔구이는 흰 속살에 굵은소금을 흩뿌리고 해풍에 꾸덕꾸덕 말린다. 강정마을 구럼비야말로 옥돔을 말리기 좋은 곳이다. 해풍에 말린 생선은 기름이 겉으로 나와서 피막(被膜)을 형성해 안에서 수분과 영양소가 잘 유지된다. 석쇠나 불판을 달군 다음 말린 옥돔을 구우면 아주 담백하고 고소하다(제주도에서는 숯불에 구워 먹는다). 비린내가 없으니 맛이 더욱 좋다.

조기와 가깝고, 농어와 사촌인 데다 도미의 여왕이라 불리니 그 맛을 더 말해 무엇하랴. 생물로 구울 때는 소금을 뿌려 간이 배게 하고 이때 칼집을 내면 좋다. 30분 정도 밑간이 들도록 기다린 다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앞뒤로 굽는다. 살이 있는 쪽부터 구우면 오롯이 잘 구워진다. 어느 생선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옥돔은 큰 것이 더 맛있다.

제주도에서는 산모에게 꼭 끓여주는 것이 옥돔미역국이다. 몸조리에 좋고 젖도 잘 나오고 단맛까지 나니 잘 먹을 수밖에 없다. 옥돔미역국도 일반 미역국을 끓일 때와 마찬가지로 다진 마늘과 미역을 넣고 볶다가 국물을 넣어 다시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갈무리해 놓은 옥돔을 넣고 한 번 더 끓이고 나서 정종, 국간장, 소금으로 간을 한다. 국물을 진하게 하려면 옥돔을 넣어 육수를 만든 다음 볶은 미역과 옥돔을 넣어 끓이기도 한다. 미역을 넣지 않고 옥돔으로 끓인 맑은탕도 좋다.

어죽은 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바닷가는 물론 강과 하천 주변 마을에서는 여름이나 몸이 허하거나 수술을 하고 난 뒤에 어죽으로 보양을 했다. 어죽에 쓰는 민물고기로는 붕어, 바닷물고기로는 도미나 옥돔이 있다. 제주도에서는 어죽도 역시 옥돔이 으뜸이다.

강정마을 구럼비는 옥돔을 말리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마을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먼저 비늘과 내장을 제거한 후 옥돔을 통째로 넣고 푹 삶는다. 이때 양념이나 간은 하지 않는다. 머리를 채에 받쳐 육즙이 잘 빠지도록 하며 옥돔을 건져내고 살을 발라낸다. 이렇게 모은 육수와 발라낸 살에 불린 쌀을 넣고 끓인다. 이때도 소금 간만 한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뭐라고 해도 옥돔은 뭇국이다. 옥돔뭇국은 제사상에도 올렸다. 살이 쉬 익기에 무를 가늘게 채 썰어 팔팔 끓을 때 옥돔을 넣는다. 소금 간만 해도 제주도 무의 시원함과 옥돔의 깊은 맛이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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