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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14

12. 큰 칼을 든 관우가 적장 손을 꽉 잡아 (마지막 회) 관우, 칼 한 자루 들고 모임에 가다 3 (마지막 회) 사자가 돌아가 관우가 쾌히 승낙하더라고 전하자 여몽이 나섰다. “그가 군사를 데리고 오면 저와 감녕이 군사를 매복해 뛰어나가 싸우겠습니다. 군사가 없으면 울안에 칼잡이 50명을 숨겨 잔칫상에서 죽이십시오.” 이튿날 노숙이 나루를 바라보니 물 위에 배 한 척이 다가오는데 사공은 몇 사람뿐이고 붉은 깃발 한 폭이 바람에 나부끼면서 눈같이 희고 큼직한 ‘관’자를 드러냈다. 배가 가까워지자 관우는 푸른 두건에 녹색 전포를 입고 배 위에 앉았고, 곁에 주창이 큰 칼을 들고 섰으며, 덩치 큰 사나이 8~9명이 허리에 요도 한 자루씩만 차고 둘러서 있었다. 노숙이 놀랍고도 의심스러워 관우를 정자로 맞아들여 인사를 마치고 술을 마셨다. 잔을 들어 권하는 노숙은 감.. 2022. 11. 12.
11. 칼 한 자루 들고 쪽배 몰아 적진으로 관우, 칼 한 자루 들고 모임에 가다 2 제갈근은 낭패한 기색이 가득해 다시 배에 올라 급히 제갈량을 찾아 서천으로 갔다. 제갈량이 마침 바깥 군들을 돌아보러 나가고 없어서 부득이 다시 유비를 찾아가 울면서 관우가 자기를 죽이려 한 일을 하소연했다. “아우는 성질이 급해 그와 말하기가 지극히 어렵소. 자유는 먼저 돌아가시오. 내가 곧 동천과 한중 여러 군을 얻어 운장을 그쪽으로 옮겨 지키게 할 테니 그때는 형주를 내줄 수 있소.” 유비의 대답을 듣고 제갈근이 오로 돌아가 상세히 이야기하자 손권은 크게 노했다. “자유가 이번에 거듭 뛰어다녔는데 혹시 모두 아우의 계책이 아니오?” “아닙니다. 아우도 울면서 현덕에게 부탁해 겨우 세 군을 먼저 돌려준다는 허락을 받았는데 운장이 억지를 부리면서 내주지 않았습니.. 2022. 11. 11.
10. 관우는 제갈량의 형님에게 검을 뽑아 들어 관우, 칼 한 자루 들고 모임에 가다 1 오나라 주인 손권은 유비가 서천을 차지하고 성주 유장을 공안으로 내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장소와 고옹을 불러 상의했다. “애초에 유비가 형주를 빌릴 때, 서천을 얻으면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소. 이제 그가 파촉 41개 고을을 얻었으니 내가 형주의 여러 군을 찾아와야 하겠소. 만약 돌려주지 않으면 창칼을 움직일 것이오.” 장소가 대답했다. “오 땅이 이제 막 안정되었으니 군사를 움직여서는 아니 됩니다. 이 소에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유비가 형주를 두 손으로 받들어 주공께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장소가 계책을 올렸다. “유비가 믿는 자는 제갈량인데 그의 형 제갈근이 오에서 벼슬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제갈근의 식솔을 잡아들이고 그를 서천으로 보내 아우에게 청.. 2022. 11. 10.
10. 자신만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떠나 버린 아버지에게 등을 보이는 것..(마지막 회)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다케이 미도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여는 순간 통곡이 터져 나올 게 뻔했고 그 이전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유일하게 떠오르는 건 사과의 말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으킨 일 때문에 남편에게까지 이런 고통과 불명예를 맛보게 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이 뜨겁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사과해 버리면 아버지가 너무 가여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면─. 다시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쉰두 살 나이인 지금까지도 부모님을 늘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미도리는 생각한다. 왜냐면, 그래서는 마치 아빠가 나쁜 짓을 저지른 것 같잖아─. 아니면 나쁜 짓을 저지른 게 맞는 걸까?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 판단도 서지 않는다. 줄곧 입을 막고 있던 손수건을 한순간이라도 입에.. 2022. 10. 1.
09. 이미 충분히 살았습니다. 이미 충분히 살았습니다. 유서 속의 그 한 문장이 도우코의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게다가 그 글씨─. 유서는 블루블랙 만년필로 쓰여 있었다. 도우코가 어릴 적부터 받아 온 많은 편지도 그러했다. 굵직굵직하면서도 특유의 둥그스름한 느낌이 나는 부드러운 그 글씨. 두 번 확인할 것도 없이 도우코가 아는 치사코 씨 그 자체여서 치사코의 인품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다 거의 체온과 육성까지 동반하여 도우코를 동요하게 만들었다. 고인과 마지막으로 만난 때가 언제이며 전화 통화 외에 마지막으로 이야기 나눈 게 언제인지, 어떤 내용의 이야기였는지, 최근 들어 달라진 점은 없었는지, 고인과는 친했는지, 다른 두 사람에 대해 뭔가 들은 이야기가 있는지─. 이런 경우, 경찰에는 질문의 수순이란 것이 있을 테니 어쩔 수 없.. 2022. 9. 30.
09. 충신이 어찌 두 주인을 섬기느냐? 장비도 알고 보면 매우 지혜로워 4 (마지막 회) 장임이 두 장수를 잃고 근심에 싸여 있는데 오의가 주장했다. “형세가 위급하니 죽기로써 한번 싸우지 않고 어찌 적을 물리치겠소? 사람을 성도로 보내 주공께 위급을 알리고 계책을 써서 맞서야 하오.” 장임이 대답했다. “내가 내일 군사 한 대를 이끌고 싸움을 걸어 적을 성의 북쪽으로 유인하겠습니다. 그때 성안에서 군사가 뛰어나가 중간을 끊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이튿날 장임이 수천 군사를 이끌어 깃발을 휘두르고 고함치며 성을 나가 싸움을 걸었다. 장비가 맞이해 말도 걸지 않고 두 장수가 맞붙어 10여 합이나 싸웠을까, 장임이 못 견디는 척 성을 돌아 달아나자 장비가 힘을 떨쳐 쫓아가니 오의가 성에서 뛰쳐나와 뒷길을 막아버렸다. 장임도 군사를 되돌려 장비를.. 2022. 9. 29.
08. 이런 사건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남은 생이 그리 길지는 않았을 터이다. 시노다 도요로서는 믿기 어렵게도 아버지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아키타 집은 팔아 버리고, 장서는 대부분 도서관에 기증하고(나머지는 유학 중인 손녀에게 물려준다고 유서에 쓰여 있고, 그 책들은 배편으로 이미 발송을 마쳤다), 가재도구 외 개인 물품도 전부 처분되고(평소 그릇에 꽂혀 있었고, 구식 카메라를 즐겨 수집하기도 하고 상당수의 음반도 갖고 있었을 터인데 그것들을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처분했는지 도요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통장이며 보험 증서, 연금 수첩, 집 매매 계약서와 같은 중요 서류는 물론이고 배편으로 손녀에게 보낸 짐의 부본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정리해 가방에 넣어 두었다. 확실히 충동적인 자살은 아니고, 그만한 준비를 가족에게 일절 알리지 않고 전부 혼자서 진행해 왔다는 사.. 2022. 9. 29.
07. 대체 왜, 엄마의 엄마라는 사람은 하필이면 섣달 그믐날 자살 따위를 했을까. 100엔 숍에서 산 보풀 제거기는 성능이 꽤 우수해서 본체가 작은 것을 감안하면 의외일 만큼 큰 모터 소리와 함께 적확하게 보풀을 빨아들인다. 스웨터 두 장과 코트 한 벌의 보풀을 제거한 후, 나는 아내에게 보풀이 생긴 옷가지가 없냐고 물었다. 가능하면 코트처럼 큰 게 좋겠다고 덧붙인 까닭은 단순 작업에 몰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명서에 따르면 털이 짧은 카펫의 보풀도 제거할 수 있는 모양인데 우리 집에 카펫 같은 건(털이 길든 짧든) 한 장도 깔려 있지 않다. “갔으면 좋았을걸.” 내 질문을 무시하고 아내는 말했다. “가지 않고서 심란하고, 그래서 보풀 따위 제거하고 있을 바엔 차라리 갔으면 좋았을걸.” 라고. 이번엔 내가 그 말을 무시한다. 남향의 거실은 밝은 데다 기름 난로 덕에 따뜻하다. 어젯밤.. 2022. 9. 28.
08. 적장 도움으로 적진 빠르게 달려가 장비도 알고 보면 매우 지혜로워 3 장비가 술을 올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니 엄안은 장비의 의로움에 감동해 항복하고 말았다. 장비가 서천으로 들어갈 계책을 묻자 엄안이 먼저 제안했다. “싸움에 진 장수가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나 보답할 길이 없으니 개와 말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까 하오. 칼 한 자루, 활 한 장 쓰지 않고 곧장 성도를 손에 넣을 수 있소.” 장비가 계책을 묻자 엄안이 알려주었다. “여기부터 낙성까지 관과 요충지를 모두 내가 맡아 군사를 관리하오. 장군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으니 이 늙은이가 앞장서서 가는 곳마다 모두 불러 항복하게 하겠소. 장군은 창칼을 놀릴 필요가 없소.” 장비는 너무나 고마워 거듭 인사했다. 엄안이 앞에 서고 장비는 뒤를 따르는데, 가는 곳마다 엄안이 지키는 자들을 불러.. 2022. 9. 28.
07. 꾀로 적장 사로잡고 그 앞에 무릎 꿇어 장비도 알고 보면 매우 지혜로워 2 파군은 산성이라 주위에 산이 많았다. 장비가 말을 타고 산에 올라 성안을 굽어보니 군사들은 투구 쓰고 갑옷 입고 대오를 지어 매복하고, 백성들이 분주히 오가며 벽돌을 나르고 돌을 굴려 성을 지켰다. 장비는 기병은 말에서 내리게 하고, 보병은 땅에 앉혀 모두 옷을 풀어헤치고 엄안이 나와 싸우도록 꾀었으나 성안에서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또 종일 욕만 퍼붓다 허탕 치고 돌아간 장비는 불현듯 계책을 하나 짜내고 장졸들에게 모두 싸울 채비를 단단히 한 채 영채에서 기다리게 하고는 30여 명 군사만 성 아래로 보내 욕을 퍼붓게 했다. 엄안의 군사를 꾀어내기만 하면 곧바로 뛰어나가 싸울 생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는 손바닥을 썩썩 비비면서 군사가 나오기만 기다렸다. 사흘이나 .. 2022. 9. 27.
06.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뼛속 깊이 스며드는 맛과 차가움. 낮에 경찰서에는 쥰이치 외에 시노다 간지의 유족과 미야시타 치사코의 유족이 와 있었다(사정 정취는 따로따로 받았지만, 첫 설명은 한방에 모여 다 같이 들었다). 유족도 아닌 쥰이치가 불려 간 까닭은 그렇게 하도록 유서와 함께 쥰이치의 연락처가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며 경찰의 설명에 따르면 츠토무에게는 일가친척이 없는 듯하다. 확실히 줄곧 독신을 유지해 왔고 외동이라서 형제자매도 없고 양친은 이미 타계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친척도 없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쥰이치는 알 수 없었다. 사촌이든 육촌이든, 그 자녀든 손주든 누군가는 있지 않을까. 아니면 츠토무 자신의 숨겨 둔 자식이라든지? 쥰이치가 아는 것만 해도 츠토무에게는 여자가 몇 명인가 있었다. 여자뿐만이 아니다. 츠토무에게는 친구도 아주 많았.. 2022. 9. 27.
06. 투구에 화살 맞고도 꾹 참은 장비 장비도 알고 보면 매우 지혜로워 1 형주를 지키는 제갈량이 명절인 칠석을 맞아 밤에 사람을 모아 잔치를 베풀며 서천 일을 이야기하는데, 별안간 서쪽 하늘에서 곡식을 되는 말만큼이나 큰 별이 하나 나타나더니 곧바로 떨어져 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갈량은 깜짝 놀라 잔을 던지고는 얼굴을 감싸 쥐고 울었다. “슬프도다! 아프도다!” 사람들이 놀라 까닭을 묻자 제갈량이 대답했다. “내가 일전에 하늘의 별을 살펴보니 우리 군사에게 매우 불리해서, 서천에 가신 주공께 글을 올려 조심해서 대비하시라고 전했소. 그런데 오늘 밤 서쪽 하늘에서 별이 떨어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틀림없이 방사원(방통)의 목숨이 끝장난 것이오!” 말을 마치고 제갈량은 목 놓아 울었다. “이제 우리 주공께서 한쪽 팔을 잃으셨소!” 사람들은.. 2022. 9. 26.
05. 이곳에는 일상이 있고 세상은 여느 때처럼 움직이고. 새해 첫날 밤부터 문을 여는 바(Bar)를 가와이 쥰이치는 한 곳밖에 알지 못한다. 도저히 바로 집에 들어갈 기분이 아니어서 집에선 더 멀어지지만 전철을 타고서 강변에 오도카니 자리한 그 가게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카운터석에 앉아 위스키를 주문한다. 정월 초하룻날부터 밖에서 술을 마시는 인간이 그리 흔할까 싶었는데 예상은 빗나가고 좁은 가게 안은 손님들로 복작였다. 하지만 쥰이치에게는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다. 적어도 이곳에는 일상이 있고 세상은 여느 때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어쩐 일로 혼자시네요.” 젊은 바텐더의 그 말에, “응. 뭐.” 라고 대답은 했지만 실은 혼자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혼자로 보이겠지만 츠토무라는 남자와 함께라고. 술잔을 아주 살짝 들어 올렸다. 헌배가 아니라 건.. 2022. 9. 26.
04. 치사코 씨가 떠나 버렸다. 도우코가 알게 된 것은 그게 다였다. 점심상은 호화로웠다. 떡국과 설음식 외에 고기 요리 두 종류와 샐러드 두 종류가 올라오고, 동글동글한 방울 초밥까지 나왔다(“많이 만들어 놨으니까 괜찮으면 나중에 싸 갖고 가게나.”). 별로 잘하지 못하는 술을 마시면서 나는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누님 또 책 나왔던데.” 장모가 불쑥 말했다. “그렇습니까?” 누나하곤 십 년 넘게 얼굴을 못 봤고 그럭저럭 이름이 알려진 작가인 듯한 누나의 저서도 나는 읽어 본 적이 없다. “신문에 광고가 났더라고. 얼굴 사진까지 넣어서.” “네에.” 나는 짧게 대답했다. 식사를 마치고 장인이 TV를 켜자 갑자기 끔찍한 뉴스 속보가 자막으로 흘러나왔다. 도내 호텔에서 노인 셋이 엽총으로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뭐야. 무서워.” 리호가 말했다. 자막은 짧고.. 2022. 9. 25.
03. 이미 우리 가족은 와해되고 말았다. 아내가 검정 레이스 속옷(이란 요컨대 브래지어와 쇼츠)만 걸친 모습으로 커다란 코끼리를 타고 앉아 뒤에 많은 늑대를 거느린 채 거리를 행진하면서 길가의 나를 내려다보며 우아하게 미소 짓는다. 그와 같은 기묘한 꿈을 꾸고 눈을 뜨자 곁에 아내의 모습은 없고 시트와 베개만 놓여 있었다. 창밖은 이미 해가 떠올라 밝다. 아내는 거실에 있었다. 제대로 옷을 갈아입고서(나로 말할 것 같으면 파자마에 플리스를 걸쳤을 뿐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잘 잤어? 새해 복 많이 받아.” 지난밤, 날짜가 바뀐 순간에 TV(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은 TV도쿄를 보며 맞이하는 것으로 정해 놓았다. 화려한 악기 소리가 좋다)를 보면서 건배하고 새해 인사도 입에 올렸지만 더욱 확실히 다지기 위해 다시 한번 말했다. “맥주.. 2022. 9. 23.
02. 가 본 적이 없으니, 그리워한다는 게 이상하지만. 세 사람은 1950년대 말에 처음 만났다. 미술 관련 서적을 다루는 작은 출판사에 먼저 간지가, 몇 년 늦게 치사코와 츠토무가 입사했던 것. 출판업계 전체가 잘나가던 시절이어서 날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즐겁기도 했다. 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도 있었지만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한 사람씩 빠져나갔다)은 죽이 잘 맞아서 공부 모임이라 칭하며 연극이니 영화니 콘서트를 보러 다니기도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뜨겁게 예술론을 벌이기도 했다. 세 사람 사이는 츠토무가 이직해도 간지가 이직해도 변함이 없었다. 마침내 회사가 망한 후에도 공부 모임(이라는 이름의 모임)은 남았다. 각자의 인생이 있다 보니 만나는 빈도가 떨어지는 시기도 있었지만 끊긴 적은 없고, 10년 전에 느닷없이 간지가 아키타현으로 이.. 2022. 9. 22.
01. 아무도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 라운지에는 피아노가 있고 촉촉한 곡이 연주되고 있다. 부스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세 사람은 각자 마실 거리를 주문했다. 여위고 키가 크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시노다 간지는 여든여섯 살, 대머리에 몸집이 작은 시게모리 츠토무가 여든 살이고, 축 늘어진 뺨이 불도그를 연상시키는 데다 숏 보브 스타일의 백발이 남의 이목을 끄는 미야시타 치사코는 여든두 살이었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두 달 만으로, 그전에도 그다지 띄엄띄엄 만나지는 않았기에 예전과 같다고 세 사람 다 느끼고 있었다. 어쩐지 간단히 옛날로 돌아와 버린 것 같다고. 실제로는 아무도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절엔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치사코가 그렇게 말하고 건배하듯 맥주잔을 살짝 들어 보인다.. 2022. 9. 21.
00.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연재 예고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수많은 작품으로 국내 480만 독자에게 사랑받은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 장편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도쿄 타워』 등 수많은 작품으로 국내 480만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저자 에쿠니 가오리가 신간 장편 소설로 찾아왔다.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분위기의 신간으로 돌아온 에쿠니 가오리는, 유려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잔잔한 매력을 선사한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발생하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치밀하게 엮어 전개한다.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를 통해 여러 인물들의 삶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특히 이번 신간은 팬데믹 시대를 반영함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 2022. 9. 20.
05. 거슬러서 차지하고 부드럽게 지킨다 조조에게 가려던 촉나라, 유비에게 가다 5 (마지막 회) 유장이 황권과 왕루를 물리치고 떠나보내니 법정은 형주로 가서 유비에게 글을 올렸다. ‘집안 아우 유장은 두 번 절하고 종친 형님 현덕 장군 휘하에 글을 올립니다. 높으신 성함을 들어 모신 지 오래이나 촉의 길이 험해 미처 선물을 보내지 못해 몹시 황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이 장이 들은 바로는 친구는 길흉을 만나면 서로 구하고, 환난을 겪으면 서로 돕는다고 했으니 하물며 종친끼리는 어떠하겠습니까? 장로가 북쪽에서 아침저녁으로 군사를 일으켜 경계를 침범하려 하니 이 장은 몹시 불안합니다. 삼가 글을 올려 귀한 귀에 사연이 들어가게 하니 만약 종친의 정을 생각하시고, 형제의 의리를 온전하게 하시려면 바로 군사를 일으켜 적을 쓸어 없애주시기 바랍니다. 영원.. 2022. 9. 8.
04. “그를 불러오면 서천은 끝장납니다!” 조조에게 가려던 촉나라, 유비에게 가다 4 익주로 돌아온 장송은 먼저 친구 법정을 찾아갔다. 법정의 자는 효직(孝直)으로 현명한 선비 법진의 아들이었다. “조조는 현명한 이를 푸대접하고 재주 있는 선비를 거만하게 대하니 함께 근심할 수는 있어도 같이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는 자요. 내가 이미 익주를 유황숙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오로지 형과 더불어 의논하려 하오.” 법정도 찬성했다. “나도 유장이 무능한 것을 헤아려 유황숙을 뵐 마음을 먹은 지 오래요. 우리 두 사람 마음이 같으니 달리 의심할 게 있겠소?” 이윽고 맹달이 왔다. 그의 자는 자경(子慶)으로 법정의 고향 친구였다. 법정이 장송과 가만히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그가 말했다. “내가 벌써 두 분 뜻을 알았소. 익주를 바치려는 게 아니오?” 장송이.. 2022. 9. 7.
03. 장송은 유비에게 서천 지도를 바치다 조조에게 가려던 촉나라, 유비에게 가다 3 그가 말을 타고 시종을 이끌어 형주 경계에 이르자 별안간 500여 명 기병이 나타나더니 갑옷을 벗은 가벼운 차림의 대장이 말을 몰고 나와 물었다. “오시는 분은 혹시 장 별가가 아니십니까?” “그렇소.” 대답을 듣자 대장은 황급히 말에서 내려 인사했다. “조운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랩니다.” 장송도 말에서 내려 답례했다. “혹시 상산의 조자룡이 아니시오?” “그렇습니다. 주공 유현덕의 명을 받들었습니다. 대부께서 먼 길을 말달려 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특별히 이 운에게 변변찮으나마 술과 음식을 올리게 하셨습니다.” 군졸들이 땅에 무릎을 꿇고 술과 음식을 올리자 조운이 공손하게 권했다. ‘유현덕은 너그럽고 어질며 손님을 좋아한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장송은 조운과 .. 2022. 9. 6.
02. 나라 바치려던 사신이 매만 맞고 쫓겨나 조조에게 가려던 촉나라, 유비에게 가다 2 양수가 또 물었다. “촉의 인물은 어떠하오?” “문장으로는 상여(相如)의 부(賦)가 있고, 무예로는 복파(伏波)의 재주가 있으며, 의술로는 중경(仲景)의 재능이 있고, 점술로는 군평(君平)의 비결이 있소. 구류삼교(九流三敎)에 빼어나고 뛰어난 자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니 어찌 말할 수 있겠소?” 【사마상여는 전한의 이름난 문학가로 그 시대에 유행했던 문체인 부의 대가였다. 복파는 바로 마초의 선조인 복파장군 마원으로 후한의 개국공신이자 명장이었다. 중경은 이름이 장기(張機)이며 후한 말년 명의로 후세에 ‘한의의 아성’으로 불렸다. 또 군평은 전한 말년 촉군 사람 엄준의 자로,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점술로 살았다. 마원과 장중경은 서천 사람이 아니나 장송의.. 2022. 9. 5.
01. 돌 소가 금 똥을 싼다는 소문에 길이 뚫려 조조에게 가려던 촉나라, 유비에게 가다 1 조조가 농서의 서량 무리를 깨뜨려 위엄이 천하를 울린다는 소식을 듣자 인근의 한중을 다스리는 장로는 사람들을 모아 상의했다. “서량의 마등이 죽고 마초가 패했으니 조조는 반드시 우리 한중을 침범할 것이오. 나 스스로 한녕왕으로 일컫고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막을까 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하오?” 파서 사람 염포가 나섰다. “한중은 백성이 10만이 넘는데, 사람은 부유하고 식량은 넉넉하며 사방이 험하고 튼튼합니다. 지금 마초가 패해 서량 백성 중에 자오곡을 통해 한중으로 들어온 자들이 몇만을 넘습니다. 지금 바로 이웃인 서천의 유장이 어리석고 나약하니, 먼저 서천의 41개 고을을 빼앗아 근거지로 삼고, 그다음에 왕으로 일컬으셔도 늦지 않습니다.” 장로는 크게 기뻐.. 2022. 9. 2.
00. <본삼국지 3> 연재 예고 천하 셋으로 나누다, 중국 12판본 아우른 세계최고원본!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가 함께 읽는 ‘3대 삼국지’ 드디어 등장 ‘일생에 세 번은 반드시 삼국지를 읽어야 한다.’ 예로부터 내려온 말이다. 청소년 때에 한 번, 성인이 되어 한 번, 나이가 들어서 한 번은 읽어야 삼국지의 참된 교훈을 배워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에는 삼국지를 일생에 열 번 이상 읽은 애독자도 참으로 많다. 삼국지는 재미와 교훈과 감동이 넘쳐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생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는 지금까지 이렇게 여러 번 읽을 만한 충실한 삼국지가 없었다. 50종이 넘는 삼국지가 쏟아져 나왔으나 오래 간직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볼 만큼 제대로 옮겨진 책이 없었다. 1.. 2022. 9. 1.
16. 옛 맹세 지키려는 사나이의 뜨거운 의리 (마지막 회) 【알고 보면 더 재미있어】 옛 맹세 지키려는 사나이의 뜨거운 의리 관우가 유비를 찾아 떠나는 대목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조조에게 붙으면 보장된 인생을 누릴 수 있지만,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기어이 옛 맹세를 지키러 떠나는 사나이의 의리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때 유비는 남에게 얹혀사는 신세였으니 관우가 찾아간다 해서 얻을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관우를 지극히 숭배하는 모종강은 이렇게 평했다. ‘사내들 욕심을 살펴보면 재물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다. 재물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작위와 녹봉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 자는 없다. 작위와 녹봉을 무겁게 여기지 않더라도 남이 마음을 터놓고 자신을 낮추면서 존경하는 행위를 무겁게 알지 않는 자는 없다. 조조가 뛰어난 인재를 다루고 빼어.. 2022. 7. 19.
15. “운장이 갔구려!” 부하들은 수레를 호위해 큰길로 나아갔다. 이때 조조는 관우의 일을 의논하며 어찌해야 할지 결정짓지 못하는데 사람들이 관우의 글을 올리니 소스라쳐 놀랐다. “운장이 갔구려!” 북문을 지키는 장수가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관 공이 문을 박차고 나갔는데, 수레에 앉은 사람에 말 탄 사람까지 20여 명이 북쪽을 향해 갔습니다.” 또 관우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아뢰었다. “관 공은 승상께서 내리신 금과 은 따위는 죄다 창고에 봉하고, 미녀 열 명은 따로 안방에 들게 하며, 한수정후 도장은 대청에 높이 걸었습니다. 승상께서 보내신 일꾼들은 다 그대로 두고 원래 따르던 자들만 데리고 몸에 지닐 만한 짐들만 지녀 북문으로 나갔습니다.” 모두 놀라는데 한 장수가 선뜻 나섰다. “제가 철갑기병 3000명을 거느리고 달.. 2022. 7. 18.
14. “죽을지언정 여기 오래 머무를 리 있겠소?” 관우가 이모저모 궁리하는데 옛 친구가 찾아왔다고 하여 청해 들이고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공은 어떤 분이시오?” “저는 원소 아래에 있는 남양 사람 진진입니다.” 관우는 깜짝 놀라 급히 좌우를 물리쳤다. “선생께서는 반드시 무언가 큰일을 하러 오셨겠지요?” 진진이 편지 한 통을 주어 받아보니 유비의 글이었다. ‘이 유비는 그대와 복숭아 뜰에서 결의할 때부터 함께 살고 함께 죽기를 다짐했는데, 어찌 중도에서 맹세를 저버리고 의리를 끊으시오? 그대가 기어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려 부귀를 꿈꾼다면 내 머리를 바쳐 그 공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겠소. 글로는 말을 다 하지 못하니 오로지 그대의 명을 기다릴 뿐이오.’ 관우는 편지를 읽고 목 놓아 울었다. “제가 형님을 찾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디 계신지.. 2022. 7. 15.
13. “이번에 공을 세우면 다시는 내보내지 않겠소.” 원소는 관도 북쪽 양무현으로 군사를 물려 영채를 쌓고 움직이지 않았다. 원소가 물러서자 조조도 하후돈에게 관도의 요충지들을 지키게 하고 허도로 돌아가 문관과 무장들을 모아 큰 잔치를 베풀고 관우의 공로를 치하했다. 술자리에서 조조가 여건에게 설명했다. “전날 내가 군량과 말먹이 풀을 앞세운 것은 그것을 미끼로 적을 꾀려는 계책이었는데, 유독 순공달(순유)만이 내 마음을 알더군.” 사람들은 모두 탄복했다. 흥겹게 술을 마시는 중에 갑자기 보고가 들어왔다. 여남의 황건적 잔당 유벽과 공도가 거세게 날뛰는데 조홍이 여러 번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니 군사를 보내 구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관우가 얼른 나섰다. “관 아무개가 개와 말의 힘을 다해 여남의 도적 무리를 무찌르고 싶습니다.” “운장이 세운 큰 공로를 갚.. 2022. 7. 14.
12. ‘내 아우가 과연 조조한테 있었구나!’ 조조는 관우가 안량을 벤 것을 보고 한층 우러르고 존경하면서, 조정에 표문을 올려 한수정후(漢壽亭侯)에 봉하고 도장을 만들어 주었다. 조조에게 불현듯 새로운 보고가 들어왔다. 원소가 대장 문추에게 황하를 건너게 하여 연진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연진은 백마 서남쪽에 있는 황하 나루였다. 조조는 백마의 백성을 서하로 옮기게 하고,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면서 명령을 내렸다. “후군을 전군으로 바꾸고, 전군을 후군으로 삼아라. 군량과 말먹이 풀이 앞서고 군사는 뒤를 따른다!” 이상한 명령이라 여건이 물었다. “군량과 말먹이 풀을 앞에 세우고 군사를 뒤에 따르게 하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군량과 말먹이 풀을 뒤에 세웠다가 노략질을 당해 앞세우라고 한 걸세.” 조조의 대답에 여건은 의문을 내놓았다. “적.. 2022. 7. 13.
11. “운장이 아니면 아니 됩니다.” 조조가 허락해 위속이 긴 창을 들고 달려나가 욕을 퍼붓자 안량은 대꾸도 하지 않고 달려와 한칼 내려찍었다. 위속이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말 아래로 떨어지니 조조가 장수들에게 물었다. “누가 감히 맞서겠는가?” 서황이 달려나갔으나 20합을 싸우고는 견디지 못해 진으로 돌아오니 장수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조조가 첫 싸움에 패하고 군사를 거두자 안량도 군사를 물렸다. 장수를 둘이나 잃은 조조가 울적해지자 정욱이 귀띔했다. “안량을 이길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인가?” “운장이 아니면 아니 됩니다.” “그가 공을 세우면 떠날까 걱정일세.” 정욱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승상께서는 운장을 사랑하시면서 한편으로는 의심도 하십니다. 그러니 여기로 불러 강자와 한번 싸우게 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기면 중용하.. 2022.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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