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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3>

02. 나라 바치려던 사신이 매만 맞고 쫓겨나

by BOOKCAST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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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에게 가려던 촉나라, 
유비에게 가다 2

 

양수가 또 물었다.
“촉의 인물은 어떠하오?”

“문장으로는 상여(相如)의 부(賦)가 있고, 무예로는 복파(伏波)의 재주가 있으며, 의술로는 중경(仲景)의 재능이 있고, 점술로는 군평(君平)의 비결이 있소. 구류삼교(九流三敎)에 빼어나고 뛰어난 자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니 어찌 말할 수 있겠소?”

【사마상여는 전한의 이름난 문학가로 그 시대에 유행했던 문체인 부의 대가였다. 복파는 바로 마초의 선조인 복파장군 마원으로 후한의 개국공신이자 명장이었다. 중경은 이름이 장기(張機)이며 후한 말년 명의로 후세에 ‘한의의 아성’으로 불렸다. 또 군평은 전한 말년 촉군 사람 엄준의 자로,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점술로 살았다. 마원과 장중경은 서천 사람이 아니나 장송의 말이 하도 거침없는 데다 명사의 후광을 빌린 것이라 흠을 잡을 수 없었다. 구류삼교는 전국시대 아홉 가지 학술 유파와 유교, 불교, 도교를 합친 말로 모든 부류의 학문을 아울러 가리켰다.】

양수가 계속 물었다.
“지금 유계옥 수하에 공과 같은 사람은 몇이나 되오?”

장송의 자랑거리는 많기도 했다.
“문무를 두루 갖추고 슬기와 용맹을 넉넉히 지녔으며, 충성스럽고 의로우며 의기가 북받치는 이들은 100을 헤아리오. 이 송 같이 재주 없는 무리는 수레에 싣고 곡식을 되는 말로 되어야 하니[車載斗量거제두량]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소.”

“공은 근래에 어떤 벼슬을 하시오?”

“재주도 없으면서 별가 소임을 맡고 있으니 매우 어울리지 못하오.”

장송은 겸손하게 대답하더니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감히 묻겠는데 공은 조정에서 어떤 벼슬을 하시오?”


양수가 대답했다.
“승상부에서 주부로 있소.”

조정에서 맡은 벼슬을 물었는데, 조조 개인 비서라니 한껏 비꼬았다.
“오랫동안 들은 바로는 공은 대대로 비녀를 꽂고 갓끈을 매어 관을 쓰던 귀한 가문에서 나왔다 하오. 그런데 어찌 묘당에 서서 천자를 보좌하지 않고 한낱 승상부의 아전 노릇이나 하시오?”

양수는 부끄러운 기색이 가득해 억지로 변명했다.
“이 몸은 비록 낮은 자리에 있으나 승상께서 군사행정과 물자, 식량을 다루는 무거운 일을 맡기셨소. 아침저녁으로 승상의 가르침을 받아 깨우치는 바가 지극히 많으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오.”

장송이 웃으며 빈정거렸다.
“듣자니 조 승상은 글로는 공자와 맹자의 바른 도에 밝지 못하고, 군사로는 손무와 오기의 묘한 꾀에 통달하지 못하면서도 힘만 믿는 패자의 수단으로 높은 자리에 앉았다던데 어찌 명공을 가르쳐 깨우쳐드릴 수 있겠소?”

“변경 한구석에 사시는 공이 어찌 승상의 큰 재주를 알겠소? 내가 보여드리리다.”

양수는 작은 상자에서 글 한 두루마리를 꺼내 보여주었다. 장송이 제목을 보니 조조가 새로 쓴 책이라는 뜻으로 《맹덕신서》라 했다. 전부 13편인데 군사를 부리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장송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 번 읽어보고 물었다.
“공은 이게 무슨 책이라고 생각하시오?”

“이는 승상께서 옛날 일을 가려 뽑으시고 지금의 상황에 비추어 ‘손자 13편(손자병법)’을 본받아 쓰신 책이오. 공은 승상께서 재주가 없다고 깔보았는데, 이 책이 후세에 전할 만하지 않소?”

장송은 껄껄 웃어댔다.
“이 책은 우리 촉 땅에서는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도 암송할 수 있는데 어찌 새 책이라 하오? 전국시대 이름 없는 이가 지은 책을 승상이 훔쳐 자기 재주인 양 자랑하는 것이니 그대나 속일 수 있을 뿐이오!”

양수는 믿을 수 없었다.
“이것은 승상께서 비밀히 감추어두신 글이라, 책이 지어졌으나 아직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소. 어찌 촉의 어린아이들이 물 흐르듯 외울 수 있겠소?”

“공이 믿지 못하겠으면 내가 한번 외워보리다.”

장송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낭랑하게 외우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아 양수는 깜짝 놀랐다.
“공은 한 번만 보면 잊지 않으니 참으로 천하의 기재요!”

장송이 인사하고 서천으로 돌아가려 하자 양수가 말렸다.
“공은 잠시 역관에 머물러주시오. 다시 승상께 아뢰어 공이 천자를 뵐 수 있도록 하겠소.”

장송은 역관에 들고 양수는 승상부로 가서 조조를 뵈었다.
“아까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장송을 푸대접하셨습니까?”

“생김새가 볼품없고 말이 불손해서 그랬네.”

“생김새로 사람을 고르시면 천하의 재사들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승상께서는 예형까지 용납하셨는데 어찌 장송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까?”

“예형의 문장은 당대에 널리 퍼져 있어 내가 차마 죽이지 못했는데 장송이야 무슨 재주가 있겠나?”

조조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양수가 장송의 재능을 소개했다.
“그 말이 강물 흐르듯 거침없고, 얼음에 박 밀 듯 막힘없는 것은 둘째치고 머리가 대단합니다. 이 수가 승상께서 지으신 《맹덕신서》를 보여주었더니 딱 한 번 읽고 전부 외웠습니다. 이처럼 들은 것이 많고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세상에 보기 드뭅니다. 장송은 이 책이 전국시대 이름 없는 사람이 지은 책인데 촉의 어린아이들도 안다고 했습니다.”

“혹시 옛날 사람이 나하고 우연히 일치한 것은 아닐까?”

조조가 그 책을 불태우게 하니, 양수가 다시 아뢰었다.
“이 사람은 천자를 만나도록 하여 조정의 기상을 보여줄 만합니다.”

조조가 분부를 내렸다.
“그는 내가 군사를 부리는 법을 모를 걸세. 내가 내일 서쪽 교련장에서 군사를 점검하니 그곳으로 데려오게. 그에게 내 군사의 성대한 모습을 보여주어 서천으로 돌아가 말을 전하게 해야지. 내가 곧 강남을 차지하고 서천을 거두러 간다고 말일세.”

양수는 명령을 받들고 이튿날 장송과 함께 서쪽 교련장으로 갔다. 조조가 호위군의 강한 장졸 5만 명을 벌려 세우니 과연 투구와 갑옷은 번쩍거리고, 옷과 전포는 울긋불긋하며, 징과 북이 하늘을 울리고, 과와 창이 햇빛에 번뜩였다.

사면팔방에 각기 대오를 지었는데, 깃발은 바람 따라 나부끼고 사람은 말과 더불어 힘차게 뛰어올랐다. 그런데도 장송은 시답잖은 듯 그저 흘겨보기만 하니 조조가 불러 군사를 가리키며 물었다.
“자네 촉 땅에서 이런 영웅들을 보았는가?”

장송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우리 촉에는 이런 군사는 볼 수 없고 어질고 의로움만 있을 뿐입니다.”

조조는 낯빛이 변해 장송을 노려보았다. 장송은 겁내는 기색이 전혀 없어서 양수가 자꾸 눈짓했으나 소용없었다. 조조가 또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천하의 쥐새끼 같은 무리를 지푸라기쯤으로 아네. 대군이 이르는 곳마다 싸우면 이기지 못할 때가 없고 들이치면 차지하지 못하는 곳이 없으니, 나를 따르는 자는 살고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승상께서 군사를 휘몰아 가는 곳마다 싸우면 반드시 이기시고, 들이치면 반드시 차지하심을 이 송도 예전부터 잘 압니다. 옛날 복양에서 여포를 들이치실 때, 완성에서 장수와 싸우시던 날, 적벽에서 주랑을 만나신 일, 화용도에서 관우와 부딪친 순간, 동관에서 수염을 베고 전포를 버리신 때와 배를 빼앗아 위수에서 화살을 피하시던 날, 이 모두가 천하에 적수가 없으시다 하겠습니다!”

조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 되어 먹지 못한 서생 녀석이 감히 내 흠을 잡다니, 이놈을 끌어내 목을 쳐라!”

양수가 말렸다.
“장송은 비록 목을 베일 죄를 지었습니다만 촉에서 공물을 바치러 온 사자이니, 그를 죽이면 먼 곳에 있는 자들의 마음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성이 날 대로 난 조조가 그 한마디에 화가 삭을 리 없었다. 순욱도 충고를 해서 조조는 겨우 목숨을 살려주었으나 어지러이 몽둥이찜질을 해 쫓아내게 했다.
장송은 그날 밤으로 성을 나가 대충 가다듬고 서천으로 돌아갈 일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내가 원래 서천의 주와 군들을 조조에게 바치려고 했는데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이야! 떠날 때 유장 앞에서 큰소리쳤으니 내가 풀이 죽어 빈손으로 돌아가면 촉 사람들은 반드시 비웃을 것이다. 형주의 유현덕은 어질고 의로움이 널리 퍼진지 오래라는데 차라리 그쪽으로 돌아서 가야겠다. 그가 사람이 어떤지 살펴보면 내가 마땅히 판단이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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