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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방은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되었나?>11

10. 돈이 굴러 들어오는 비만 장사, 건강식품 운동과 손잡은 의료산업 (마지막 회) 이제 지방은 개인의 나태함이나 수치스러움의 원천을 넘어 공중 보건의 골칫거리로 부상했다. 게다가 적절한 공중위생으로 막을 수 있는 콜레라나 백신으로 예방되는 홍역과 달리, 몸에 축적되는 지방을 몰아내는 일은 오직 개인들의 노력에 달린 난제가 되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급성장한 경제와 자본주의자들의 창의성은 지방과의 전쟁에서 새로운 전선을 만들었다. 바로 체중 감량 산업이었다. 비만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개인 문제로 강조하는 풍조는 날로 높아지는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돈이 되는 신산업으로 만개했다. 체중 감량 서적이 쏟아지고 상담원들의 조언이 불을 뿜었다. 이들 전문가들(대다수는 적절한 자격도 없었다)은 신체적으로 우월하고 미학적으로 설득력 얻을 수 있는 몸매를 만드는 비법에 대해 열변을 .. 2022. 4. 8.
09. 엘리트 백인 남성들, 인종주의적 청교도 정신에 사로잡히다. 노예화는 부를 낳았고,그렇게 축적한 부는 미국 백인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안겼다.교육과 건축,예술장려,자선 활동,사회적 연결망,윤택한 생활,문화적인 교양….이 모든 것은 우리의 기독교 중심 자본주의와 유럽 중심 문화의 힘과 지성,선량함을 보여주는 것들이다.스트링스의 주장에 따르면,흑인의 몸을 혹사해 부를 축적한18세기와19세기 초반 대서양 양쪽의 백인 문화는,특히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이성과 철저한 청교도적 신앙심은 이런 덕목들을 미학적으로 발달시켰다. 이제 사람들은 이성과 분별력,기독교 교리에 맞는 절제력 같은 것들을 육체적 욕망에 적용시키면 마르고 가느다란 체형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살집 없는 몸매는 덕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이런 가치관은 불운하게도 여성들에게 더 강력하게 적용되었다.덕을.. 2022. 4. 7.
08. 기독교의 금욕주의, 금식을 성스러운 행위로 찬양하다. 같은 시기, 대부분의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는 지방이 다른 종류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 이후로 몸과 몸의 욕구는 기껏해야 용의자, 나쁘면 악당 취급을 받았다. 음식, 술, 섹스, 그리고 모든 감각적인 쾌락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신과의 관계를 우선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원흉이었다. 더욱이 신이 깃들어 있는 신체를 순결하게 지키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애물이었다. 교회는 금욕 주간과 더불어 몇 개의 축일을 의례로 만들기 위해 이내 달력을 개발했다.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살을 빼는 것은 덕을 쌓는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루돌프 벨(Rudolf Bell)이나 캐롤린 워커 바이넘(Caroline Walker Bynum), 존 브럼버그(Joan Brumberg) 같은 역사가들이 자세하게 분석해온 패턴이.. 2022. 4. 6.
07. 우리 생명의 필수요소가 악의 메타포로 전락하기까지 건강과 신체에 대한 의술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의학서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던 소위 ‘중세’의 페르시아 의사들은 우리에게는 최고 자산이다. 그들은 비교적 문명화된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고전적 유산을 그대로 방치하던 시기에 그것을 보존했다. 알 라지AlRhazi(9세기 아바스 왕조의 대학자, 의학과 화학, 철학 분야에서 활약했는데 특히 의술 분야로 명성을 떨쳤다. 수두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말년에 그가 남긴 총서(아랍어로 Al-Kitab al-Hawi, 라틴어로 Liber Continens는 13세기에 완역된 이후서구권에서 가장 널리 쓰인 의서 중 하나가 되었다)와 이븐 시나Ibn Sina(980~1037년, 중세 이슬람의 철학자이자 의사. 당시의 문명 수준으로 감히 견줄 만한 것이 없는 의학서 《의.. 2022. 4. 5.
06. 더 이상 나의 공간과 권리를 양보하지 않겠다. 나는 학창시절 오페라 리허설 때 한 음악학교 오페라 감독이 객석 3열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며 소리쳤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의 얼굴은 격앙되어 납빛이었다. “오 맙소사! 네가 뚱뚱한 게 뭐가 중요해. 관객은 너를 보려고 돈을 내고 왔어! 당당하게 움직이라고! 당당하게! 정기 원양선처럼! 제발! 넌 퀸메리 호야! 빌어먹을 쪽배가 아니라고!” 나는 지적을 받아서 놀랐고, 하찮은 쪽배와 거대하고 육중한 원양어선 모두에 비유를 당해서 모욕감을 느꼈다. 아마도 나는 우스갯소리 속 뚱뚱한 여자가수를 떠올렸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바그너 풍의 투창과 가슴받이, 뾰족한 투구를 들고 있지 않았다. 만약 그런 차림이었다면 어느 모로 보든 그저 던지는 상투적인 말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감독의 지시를 따랐다.. 2022. 4. 4.
05. 뚱뚱한 몸들이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현실 기억하는 한 나는 예전에도 뚱뚱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지닌 어떤 실체보다도 지방과 오랜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복잡한 관계가 아니라거나, 절대로 지방과 싸운 적이 없다거나, 만약 이런 실체를 버리고 다른 어떤 것을 경험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오래되고 친숙한 관계의 본질에 대해 자신을 속이지 말자!). 나아가 내가 지방과 맺는 관계가 다른 사람들과 같거나, 다른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경험과 이해를 해야 한다고 상기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그동안 지방과 맺어온 다양한 경험과 그 결과들이 지방을 친근하게 여길 수 있게 만들어줬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지방은 우리에게 구체적이.. 2022. 4. 2.
04. 과학에 대한 맹신이 불러온, 어이없는 참극 때로 과학은 인간의 삶을 망치기도 했다. 일례로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의 일화는, (만약 언어 유희가허용된다면) 한 박자도 틀리지 않은 경고성 레퀴엠이다.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던 슈만은 피아노를 더 잘 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바꾸려던 욕망에 희생되고 말았다. 불과 20대의 나이에 말이다. 그에게 피아노라는 기계를 연주하는 것은 필생의 과업이었다. 피아노 교사이자 멘토였던 요제프 비에크(Josef Wieck, 훗날 슈만의 아내가 된 유명한 콘서트 피아니스트클라라 비에크의 아버지기도 하다)의 증언에 따르면 젊은 슈만은 손가락 힘을 기르는 기계(홈메이드일 가능성이 있다)를 사용하다 오른손에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다. 상업적으로 제작되어 ‘댁타일리온(Dactylion)’이라는 이름으로 .. 2022. 4. 1.
03. ‘정상적 시민의 몸’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공상이 현실화될 때… ‘정상적 시민의 몸’에 대한 지적인 유혹은 아돌프 케틀레(Adolphe Quetelet, 1796~1874. 벨기에의 과학자. 천문학, 수학, 통계학, 사회학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라는 통계학자의 논문에 처음 등장했다. 벨기에 출신인 그는 건강하고, 특별히 생산적인 시민에 어울리게 만들어진 몸에 대한 신체적인 매개변수, 공통분모로서 ‘평균적인 인간’에 대한 개념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1845년에 출간된 그의 논문 〈인간과 인간의 능력 개발에 관한 논의, 사회물리학 시론(Sur l’omme et le développement de ses facultés, essai d’une physique sociale)〉은 마침 도처에 생겨난 사업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물건의 치수가 규격화된다면 어떨까? 특정 소비자.. 2022. 3. 31.
02. ‘비만 낙인’ 살찐 사람들은 병원 치료에서도 차별당한다. 비만인이 겪는 건강상 문제의 원인을 오직 비만 탓으로만 돌린 결과 발생한 의료진의 오진에 관한 일화는 무수하다. 2018년 캐나다 출신의 뚱뚱한 의상디자이너 앨런 모드 베닛은 암 진단을 너무 늦게 받는 바람에 수술 한 번 못한 채 사망했다. 그녀는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살 빼라는 의사의 잔소리만 들으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매우 슬펐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나 역시 20대 후반에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상복부 통증으로 8개월이나 고통을 겪었다. 통증 때문에 음식을 적게 먹었고 갑자기 체중이 줄었다. 그러자 어지럼증과 구토가 자주 찾아왔다. 당시 나의 주치의는 복통이 ‘아마도 젖당 불내성 때문인 듯하다’고 간단히 치부했다. 덧붙여 체중이 줄었다며 나를 칭찬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2022. 3. 30.
01. 우리는 지방을 너무 모른다. 우리는 지방을 너무 모른다 우리의 상상 속에서 지방은 신기한 메커니즘을 통해 흰가루병 곰팡이처럼 구체화되고, 바퀴벌레처럼 지독히 퇴치되지 않는 골칫거리로 자리 잡았다.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미국 영화 제작자이자 기업가. 〈스타워즈〉와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로 유명하다)는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Star Wars: Return of the Jedi)〉에서 영웅들을 위협하며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은하계의 갱스터가 필요했을 때, 민달팽이처럼 생긴 데다 인간의 젖가슴과 뚱뚱한 배를 가진 엄청나게 살찐 악당 자바 더 헛(jabbathe Hutt)을 창조했다. 하지만 지방이 없었다면 〈스타워즈〉도, 무엇보다 조지 루카스도 없었을 것이다. 지방은 말 그대로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 지방은 우리 세.. 2022. 3. 29.
00. <지방은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되었나?> 연재 예고 생명 유지의 핵심요소인 지방은 어쩌다 타락의 증거이자 공공의 적으로 몰리게 되었나? 우리 문화는 지방을 추하고 나쁘고 온갖 병을 일으키는 살인자라고 가르친다. 비만은 자기 절제력 부족의 증거이며 탐욕과 방종, 인지능력 결여를 드러낸다고 세뇌한다. 하지만 지방이 없다면 우리 삶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지방이 없었다면, 단세포 단위의 미생물조차 만들어질 수 없었다. 인류가 그토록 자랑해마지않는 뇌 기능 역시 지방이 없다면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이토록 중요한 지방이 어쩌다 악의 메타포로 내몰리기 시작한 것일까? 이 책 『지방은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되었나?(원제: FAT)』는 우리 곁의 친근한 물질이자 생명 유지의 필수요소인 지방(FAT)의 실체 및 지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리 일상의 갖가지 블랙코.. 2022.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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