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기, 대부분의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는 지방이 다른 종류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 이후로 몸과 몸의 욕구는 기껏해야 용의자, 나쁘면 악당 취급을 받았다. 음식, 술, 섹스, 그리고 모든 감각적인 쾌락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신과의 관계를 우선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원흉이었다. 더욱이 신이 깃들어 있는 신체를 순결하게 지키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애물이었다.
교회는 금욕 주간과 더불어 몇 개의 축일을 의례로 만들기 위해 이내 달력을 개발했다.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살을 빼는 것은 덕을 쌓는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루돌프 벨(Rudolf Bell)이나 캐롤린 워커 바이넘(Caroline Walker Bynum), 존 브럼버그(Joan Brumberg) 같은 역사가들이 자세하게 분석해온 패턴이다.
특히 여성 신자들은 남성 신자들과 달리 진심과 헌신의 순도를 입증할 공개적이고 과감한 선택권이 부족했다. 그 결과 우리가 지금 신경성 무식욕증(anorexia nervosa)이라고 부르는 것과 매우 비슷한 방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적으로 감화되어 먹는 것을 거부하는 일명 ‘성스러운 거식증(Anorexia mirabilis)’은 극단적이고 위험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고결한 것으로 여겨졌다.
성인들의 전기를 보면 이런 거식증이 칭송 일색으로 강조되고 있다. 매일 먹는 성찬보다 더 먹으라는 상급자의 명령을 무시한 끝에 1830년 33세로 굶어 죽은 시에나의 카타리나(Catharina de Siena, 1347~1380년, 이탈리아의 도미니코 참회 수녀회 소속 스콜라 철학자이자 기독교 신학자. 1999년 유럽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지정되었다)는 교회력에서 정한 신성한 금식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무수한 성녀 중 하나였다.
금식을 성스러운 행위로 인식하고 인간의 몸을 정화하는 것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면서 마른 몸은 점점 미덕의 상징이 되어갔다. 반면 뚱뚱함은 사악함과 탐닉의 동의어가 되었다. 부활절이 되기 전 단식과 애도, 참회의 주간인 사순절에 앞서 관례상 쾌락의 축제가 선행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Mardi Gras(참회 화요일)’ 혹은 ‘기름진 화요일’은 모두 사순절에 금지되는 기름진 음식과 관계가 있다. ‘카니발(Carnival)’(기독교의 사순절 직전, 3~7일에 걸쳐 행하는 제전)은 사순절에 지켜야 하는 덕목인 ‘고기를 치워둔다’는 의미의 라틴어(carne vale)에서 유래한다.
교회력에서 일 년 중 그리스도의 생명이 재현되는 기간의 정점, 희생과 구원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그 순간에 기독교의 교리는 신앙심이 얕디얕은 신도들조차 말 그대로 빈약한(meager: ‘마른’ 혹은 ‘수척하다’는 의미인 라틴어 macrum에서 유래한 단어다) 음식만을 먹도록 요구한다. 미덕과 마름, 성스러움과 단식, 육신의 (죽을 정도로) 고행을 통해 정화되는 몸은 유럽인의 상상력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히게 되었다. 결국 서구 세계는 뚱뚱함과 마름에 대한 자신들의 도덕률을 옆구리에 낀 채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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