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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방은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되었나?>

06. 더 이상 나의 공간과 권리를 양보하지 않겠다.

by BOOKCAST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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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시절 오페라 리허설 때 한 음악학교 오페라 감독이 객석 3열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며 소리쳤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의 얼굴은 격앙되어 납빛이었다. “오 맙소사! 네가 뚱뚱한 게 뭐가 중요해. 관객은 너를 보려고 돈을 내고 왔어! 당당하게 움직이라고! 당당하게! 정기 원양선처럼! 제발! 넌 퀸메리 호야! 빌어먹을 쪽배가 아니라고!”

나는 지적을 받아서 놀랐고, 하찮은 쪽배와 거대하고 육중한 원양어선 모두에 비유를 당해서 모욕감을 느꼈다. 아마도 나는 우스갯소리 속 뚱뚱한 여자가수를 떠올렸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바그너 풍의 투창과 가슴받이, 뾰족한 투구를 들고 있지 않았다. 만약 그런 차림이었다면 어느 모로 보든 그저 던지는 상투적인 말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감독의 지시를 따랐다. 그리고 난생처음 의도적으로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나의 뚱뚱한 몸 곳곳을 사용했다.

무대를 이리저리 누비는 동안 달라진 나를 느꼈다. 가슴이 활짝 펼쳐지고 팔이 힘차게 휘둘러졌다. 뚱뚱한 몸통을 움츠리거나 감추려 애쓰지 않았다. 걸음을 걸을 때 마치 세상이 나를 위해 길을 열어준 듯 당당하게 발을 뻗었다.

그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 감독이 소리 질러서 나에게 가르쳐준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뚱뚱함 자체는 수치스러운 게 아니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했다.
 
오페라는 내가 남 앞에 서고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즐기도록 가르쳐주었다. 내 권리를 양도하지 않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었다. 나아가 대부분의 상황에서 내가 주눅 들지 않고 권위 있게 움직인다면, 사람들도 순순히 나에게 권한을 준다는 것을 재빨리 파악했다.

내 몸에 대해 내심 미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서, 뚱뚱한 내 몸이 위협이 되거나 무언가를 강요당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도 점점 편안해졌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서 뚱뚱한 몸으로는 결코 할 수 없다고 여겨왔던 것들도 가능해졌다. 바로 유혹하고 매료시키고 현혹하기.

인정받지 못하고 폄하되고 소외당하는 몸으로 잘 살아가려면 내 몸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가끔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확신을 지녀야 한다. 내가 지금처럼 지방을 친구라고 부를 때 누군가는 속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애초에 잘못된 줄 잘 알면서 내가 그저 변명과 궤변으로 엉성하게 항변한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다. 내가 지방을 친구라고 부를 때,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한발 더 나아가 나는 지방을 멘토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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