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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5분마다>11

10. 15분마다 해야 해요. 그 시간이 지나면 안 돼요. (마지막 회) “그 강박장애에 대해 말해보렴.” 에릭은 맥스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했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었다. 진단을 내리기에 앞서 맥스의 가족력이나, 생물학적 취약점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청소년기 후반과 이른 성년기는 위험한 시기였다. 특히 남자아이들에게는. 보통 맥스 정도 되는 나이에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가 ‘최초의 발현’을 시작한다. “패리시 선생님, 약을 좀 처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조사를 해봤더니, 강박장애에는 약이 도움이 된대요.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 지금 같은 상황은 진료를 하다 보면 노상 겪는 일이었다. 약이 있으면 환자들은 약을 원한다. 에릭은 투약에 반대하는 건 아니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약을 처방하지 않았다. 특히 청소년한테는. “강박장애에는 루복스하고 팍실이 .. 2022. 5. 20.
09. 강박장애가 있어요. 다음 날 아침, 에릭이 문을 열자 맥스 자보우스키가 대기실 나무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맥스? 어서 와라.” “안녕하세요.” “찾아오는 데 힘들진 않았고?” “네. GPS를 이용했거든요.” “그랬구나. 어서 들어오렴.” 에릭이 열려 있는 상담실 문을 가리키자, 맥스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에릭은 맥스가 병원에서 봤을 때보다 고민이 더 많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맥스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잠을 별로 자지 못한 것처럼 눈 밑이 검었다. 앞머리 아래로 보이는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 있는 것이 기분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았다. “패리시 선생님, 만나주셔서 감사해요.” 상담실 가운데 멈춰 선 맥스가 말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고마워하는 눈빛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맥스의 피부는 .. 2022. 5. 19.
08. 나는 가치가 없고 나약하고 부족한 누군가를 파멸시킬 것이다. 3.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게 쉽다. 그리고 거짓말을 잘한다. 선택하시오 : 전혀 그렇지 않다 / 조금 그렇다 / 그렇다 잠이 오지 않는다. 마음이 너무 들뜬다. 나는 첫 번째, 어쩌면 가장 큰 장애물을 해결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해냈다. 적과 관계를 맺은 것이다.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는다. 스릴과 흥분을 느낀다. 너무 신이 나서 긴장될 정도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기대감에 들떠 있다. 침대 옆에 놓여 있는 시계는 새벽 3시 2분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좌우로 돌아누우며 몸을 들썩거리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에어컨을 켜고, 손잡이를 HI로 돌렸다가 이내 LO로 돌린다. 어째서 이런 것에 철자도 제대로 쓰여 있지 않는 건가? 멍청이들. 나는 온라인에 접속해 비디오 게임을 시작한다... 2022. 5. 18.
07. 가장 힘든 건, 스스로 찾아온 사람만 도와줄 수 있다는 것 “맥스.” 에릭은 자판기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맥스에게 다가갔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유리창에 비쳤다. 맥스가 돌아섰다. “어떻게 됐죠? 할머니를 도와주실 수 있겠어요? 할머니의 기분이 나아질 만한 처방을 해주셨나요?” “할머니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건 알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 “어째서요?” “진찰을 해본 결과, 네 할머니는 이런 상황임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 특별한 분이시지…….” “그럼 영양 보급관은요?” 맥스가 항의가 아닌 애원하는 듯한 눈으로 물었다. “우울증이 아니라면 어째서 영양 보급관을 거부하시는 거죠? 그걸 달지 않겠다는 건 자살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비이성적인 선택이라고만 할 수는 없단다, 맥스. 할머니와 같은 처지에.. 2022. 5. 17.
06. 선생도 아이가 있다면 알겠지만, 그 애만 괜찮으면 난 아무런 걱정이 없어요. “개인 상담을 할 수는 있습니다.” 에릭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사실 새 환자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맥스가 원한다면 시간을 내보지요.” “정말요?” 티크너 부인의 쌍꺼풀 없는 눈에 희망이 가득했다. “그래줄 수 있겠어요?” “네. 맥스가 원하면요.” “정말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티크너 부인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자 에릭의 마음도 편해졌다. “하지만 심리 치료는 아주 만만찮은 일이고, 환자 본인이 원해야만 도움이 된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맥스에게 제안은 해보겠지만 모든 건 당사자한테 달렸어요.” “그 애도 받아들일 거예요. 선생님이 내 무거운 짐을 덜어줬네요.” 티크너 부인이 휴지를 꼭 쥔 채 관절염으로 울퉁불퉁한 손을 맞잡았다. “이 세상에 그 애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오. 맥.. 2022. 5. 16.
05. 우리 손자는 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어째서 맥스에게 도움이 필요한 건지 말씀해주시죠.” “그 애는 내가 잘 먹으면 좀 더 오래 살거나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난 죽어가고 있으니까. 맥스는 그 사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요.” 티크너 부인은 눈도 깜빡하지 않은 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난 영양 보급관을 달고 싶지 않아요. 아흔 살이면 충분히 오래 살았지. 진통제 약효가 떨어지면 온몸이 아프다오. 난 집에서 자연스럽게 떠나고 싶어요.” “이해합니다.” 에릭은 자신도 이처럼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더 이상의 검사는 필요 없다고 결정했다. 티크너 부인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본인이 치료를 거부했다. 이런 상황이면 부인의 손자에 대한 걱정을 들어주는 것이 합당했다. “맥스의 부모님은 어디 있습니까?.. 2022. 5. 14.
04. 내가 떠나면 그 애는 오롯이 혼자 남게 될 거예요. “자, 이제 부인의 상태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우울증을 앓고 계십니까? 울적하거나 기운이 없나요?” “아뇨. 아무렇지 않아요.” 티크너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짧은 백발 머리가 새끼 흰올빼미처럼 목 위에서 흔들렸다. “정말요? 우울하다고 해도 병세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건데요.” “괜찮다고 했잖아요.” 티크너 부인이 코웃음을 쳤다. “내 머리는 검사할 필요 없어요. 그건 그렇고, 내가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할 때 선생님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건지!” 에릭은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몇 가지만 질문드릴게요. 오늘이 며칠이죠?” “날짜가 무슨 상관이지?” “부인을 진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주셔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누구죠?” “누구든 상관있나? 정치인들은 전부 사기꾼인데.” 에.. 2022. 5. 12.
03. 선생님, 우리 할미를 도와주세요. “여기 있는 손자 맥스 때문에 선생을 부른 거예요. 이 애는 열일곱 살밖에 안 됐지만 이 상황을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얘가 자꾸 나한테 미쳤다고 해서…….” 맥스가 끼어들었다. “미쳤다고 한 적 없어요. 우울증에 걸렸다는 거죠. 제가 보기에 할미는 우울증이에요. 선생님이 도와주실 거예요. 항우울제 같은 약을 처방해주실 수도 있고요.” 에릭은 맥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키가 작고 마른 체형으로, 대충 158센티미터 정도에 59킬로그램 정도 나갈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이보다 더 어려 보였다. 그는 둥근 얼굴에, 작지만 쭉 뻗은 코, 연한 푸른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고, 수줍게 웃을 때면 한쪽 뺨에만 보조개가 들어갔다. 밝은 갈색의 긴 머리카락은 층을 내서 잘랐고, 배기 진과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 2022. 5. 10.
02. 죽음을 앞둔 환자 에릭 패리시 박사는 호출을 받고 응급실로 가고 있었다. 에릭은 병원 복도를 서둘러 지나갔다. 갑자기 확성기 시스템이 켜지면서 스피커를 통해 녹음된 자장가가 흘러나왔다. 병원에서는 출산 서비스의 일환으로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자장가를 틀어주었다. 하지만 에릭은 그 소리가 위층에 있는 정신질환자들에게 고통을 줄 것을 알기에 움찔했다. 그가 담당한 환자들 중에 아이를 사산한 뒤 우울증에 걸린 젊은 엄마가 있었는데, 간간이 그 자장가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감정적인 기복이 커지곤 했다. 에릭은 관리실에 자장가 소리가 정신병동까지 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들은 항상 스피커 시스템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만 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에릭이 그 비용을 내겠다고 했지만 관리실에서는 안 된.. 2022. 5. 8.
01. 우린 여기 있고, 당신을 속이고 있다. 나는 소시오패스다. 평범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훨씬 영리하고 자유롭다. 규칙이나, 법률, 감정, 상대방에 대한 배려 따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금세 읽을 수 있고, 연락처를 바로 얻어낼 수 있으며,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끔 조종할 수 있다. 진짜 좋아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바로 당신을. 나는 당신을 속이고 있다. 매일 기만하고 있다. 책에서 본 바로는, 24명 중 1명이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만일 내게 물어본다면 걱정해야 할 건 나머지 23명이라고 답할 것이다. 24명 중 1명이면 인구의 4퍼센트다. 소시오패스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거식증 환자는 3퍼센트인데 모두들 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겨우 1퍼센트에 불과한데도 모든 .. 2022. 5. 6.
00. <15분마다> 연재 예고 “나는 모든 것을 계획한다. 모든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때가 되면 공격한다.” 사람들은 악마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테러범이나 살인자, 무자비한 독재자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악마가 자신들의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직장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기차 옆 좌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체육관의 러닝머신에서 뛰고 있다는 것을. 자신들의 딸과 결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린 여기 있고, 당신을 속이고 있다. 우린 당신을 노린다. 우린 당신을 훈련시킨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리사 스코토라인의 스릴러 소설 강렬한 서스펜스와 충격적인 반전 스릴러! 소담출판사에서 선보이는 여성 작가 스릴러 소설 시리즈 중 두 번째 소설로, 뉴욕타임스 베스.. 2022.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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