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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5분마다>

02. 죽음을 앞둔 환자

by BOOKCAST 2022.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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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패리시 박사는 호출을 받고 응급실로 가고 있었다. 에릭은 병원 복도를 서둘러 지나갔다. 갑자기 확성기 시스템이 켜지면서 스피커를 통해 녹음된 자장가가 흘러나왔다. 병원에서는 출산 서비스의 일환으로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자장가를 틀어주었다. 하지만 에릭은 그 소리가 위층에 있는 정신질환자들에게 고통을 줄 것을 알기에 움찔했다. 그가 담당한 환자들 중에 아이를 사산한 뒤 우울증에 걸린 젊은 엄마가 있었는데, 간간이 그 자장가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감정적인 기복이 커지곤 했다.

에릭은 관리실에 자장가 소리가 정신병동까지 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들은 항상 스피커 시스템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만 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에릭이 그 비용을 내겠다고 했지만 관리실에서는 안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에릭은 응급실로 통하는 이중문을 열었다. 금요일 밤이라 응급실은 북적거렸다. 에릭이 치료실 앞으로 다가가 커튼을 열자 의대생들도 입을 다물었다. 문 앞에 선 그들은 환자복을 입고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있는 짧은 은발 머리에, 온화해 보이는 얼굴을 한 나이든 여자 환자를 보고 안도했다. 그 옆에는 젊은 남자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환자의 손을 잡고 앉아 있었고, 그 뒤에 로리 포추나토 박사가 서 있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돼?”
로리가 환자를 가리켰다.
이쪽은 버지니아 티크너 씨와 손자인 맥스 자보우스키 군이야.”
에릭 패리시라고 합니다. 두 분을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에릭은 침대 옆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나이든 여자가 영민한 미소를 지으며 에릭을 올려다보았다. 쌍꺼풀이 없는 갈색 눈동자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는 건 좋은 징조였다. 에릭은 반짝거리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수치는 정상으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이 선생님은 정말 미남이네.” 티크너 부인이 쉰 목소리로 말하더니 놀리는 것처럼 에릭을 훑어보았다. “버지니아라고 불러요아니면 귀염둥이라고 부르든지.”
버지니아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에릭.” 로리가 끼어들었다그녀는 표정이 바뀌면서 직업적으로 말했다. “안타깝게도 티크너 부인은 울혈성 심부전에진행성 폐암이야. 3개월 전에 브렉슬러 박사에게 진단을 받았고순환기내과에서 사흘간 입원해 있었어그리고 이제 자택에서 고통 완화 치료를 시작한 참이야.”

에릭은 로리의 말을 들으면서 감정을 숨겼다최악의 상황이었기에 티크너 부인에게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로리가 말을 이었다.
오늘 티크너 부인은 저녁 식사 중에 질식 사고로 내원하신 거야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목에 또 다른 거대한 종양이 있는 걸 발견했어음식물을 삼키는 데 영향을 미칠 정도의 크기야.”
유감입니다.”
에릭은 진심으로 말했다그러나 그는 이렇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티크너 부인의 침착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부인은 괴롭거나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나중에 검사로 확인해볼 생각이지만현재 멍한 상태도 아니고 다른 노인 환자들처럼 옛날이야기만 늘어놓지도 않았다.
고마워요하지만 암에 걸린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티크너 부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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