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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5분마다>

04. 내가 떠나면 그 애는 오롯이 혼자 남게 될 거예요.

by BOOKCAST 202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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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부인의 상태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우울증을 앓고 계십니까? 울적하거나 기운이 없나요?”

아뇨. 아무렇지 않아요.”
티크너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짧은 백발 머리가 새끼 흰올빼미처럼 목 위에서 흔들렸다.

정말요? 우울하다고 해도 병세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건데요.”

괜찮다고 했잖아요.” 티크너 부인이 코웃음을 쳤다. “내 머리는 검사할 필요 없어요. 그건 그렇고, 내가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할 때 선생님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건지!”

에릭은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몇 가지만 질문드릴게요. 오늘이 며칠이죠?”

날짜가 무슨 상관이지?”

부인을 진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주셔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누구죠?”

누구든 상관있나? 정치인들은 전부 사기꾼인데.”

에릭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질문을 고수하는 건 오직 법적인 이유에서였다.
잘 들어보세요. 제가 단어 세 개를 말할 겁니다.”

난 당신을 사랑해 I love you?”

에릭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제가 말할 단어 세 개는 바나나, 딸기, 밀크셰이크예요. 따라해 보실 수 있겠어요?”

물론이지! 바나나, 딸기, 밀크셰이크! 이봐요, 내 뇌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니까 그러네.”
티크너 부인의 미소가 잘 살아왔다는 증거인 깊은 주름살 속으로 사라졌다.
난 우울증이 아니에요. 걱정이 있을 뿐이지.”

무슨 걱정입니까?”

손자 맥스요. 그 아이는 나와 같이 산다오. 내가 길렀지. 우울증에 걸린 건 맥스예요. 내가 죽은 뒤에 그 아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티크너 부인이 이마를 찡그렸다. “그 아이는, 맥스는 다른 사람과 달라요. 친구도 없고, 늘 혼자라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제 환자는 부인이세요.”
에릭은 티크너 부인을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부인이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다 할지라도.

부인은 여기 치료받으러 오셨어요. 그러니 진찰을 해보고, 필요하다면 치료할 생각입니다.”

난 치료받을 필요가 없어요. 선생을 부른 건 내가 아니라 맥스예요. 그 아이 뜻대로 하라고 내버려 둔 건 맥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오. 이런 식이 아니라면 저 아이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갈 수 없으니까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그 말씀은 맥스 때문에 절 불렀다는 겁니까?”
에릭은 재빨리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은 환자라고 확인한 사람이 실제 환자가 아닌 경우였다.

맞아요. 맥스는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 내가 떠나면 그 애는 오롯이 혼자 남게 될 거예요. 맥스를 도와줄래요?”
티크너 부인이 에릭의 셔츠 소매를 붙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제발 그 애를 도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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