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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깊은 밤을 건너온 너에게>6

05. 인정의 기준을 달리했다. (마지막 회)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기준이 나였다. 유치원에서 내 그림 칭찬이 쏟아졌다. 선생님은 휘황찬란한 언어로 부모님께 그림을 설명했다. 초등학교 때는 그림과 만들기로 상을 자주 받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림의 의미가 옅어졌다. 입시 미술을 준비하면서 그림에 등급이 생겼다. 타인의 기준에 의해 줄 세우기식 그림이 되었다. 인정의 기준이 내가 아닌 남으로 옮겨갔다. 대학시절에도 인정을 주는 대상이 타인이었기에 그림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부터 인정의 기준이 달라졌다. 내가 나를 인정하면 만족했다. 나를 인정하자 마음이 편해졌고 가족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내 그림을 아껴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외주 일이 들어왔다. 남이 주는 좋아함과 외주 일은 내 인생의 작은 이벤트였다. 하지만 그것은 .. 2022. 5. 9.
04. 우리에게 필요한 거리 SNS에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관한 글을 올리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인간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였다. “수진아, 진희한테 무슨 일 생겼어?”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사실 나는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오면 반갑게 통화하더라도 전화를 먼저 걸지 않았다. 친구는 진희가 요즘 자신을 피하고 있다고 했다. 서운한 점이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가 모르는 사건을 내가 헤아려 알 수는 없었다. 차분히 둘 사이에 오간 이야기를 들었다. 답답해하는 친구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진희는 마음이 공허하고 인정욕구가 높은 아이였다. 공허함을 타인이 주는 인정으로 채웠다. 어린 시절에는 진희의 환경을 알기에 공감했고 배려했다... 2022. 5. 8.
03. 내 그림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골방에서 혼자만 보던 그림이었다. 혼자만의 만족으로 끝나는 그림이었기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용기를 내어 SNS에 그림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화면 속에서 만난 그림은 2센티미터에 불과했다. 실제 그림보다 작은 크기인 그림은 자연스럽게 멀리서 바라보는 효과를 경험하게 했다. 의도하지 않게 원근법이 적용되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발견하지 못한 어수룩함과 어색함이 보였다. 수정과 보완을 통해 완성에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원근법은 그림을 볼 때 ‘멀다’, ‘가깝다’와 같이 거리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림과 ‘가깝다’라는 기준은 손을 뻗지 않아도 닿는 거리다. 그렇다면 ‘멀다’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멀다’는 그림의 크기와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림의 크기가 커질수록 .. 2022. 5. 6.
02. 삶에도 명도가 필요하다. 그림과 인생 모두 명도가 중요하다. 명도는 색의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로, 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를 뜻한다. 명도가 낮으면 어둡고 명도가 높으면 밝다. 빛은 명도에 영향을 준다. 명도가 높고 낮음의 격차가 클수록 그림의 대비가 강하고, 대비가 강할수록 이미지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림뿐 아니라 인생의 대비도 강한 인상을 준다. 인생의 불운과 행운의 격차가 클수록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 남의 불운을 통해 내 고통은 그보다 덜하다는 것을 깨닫고, 깨달음은 위안과 동시에 좀 더 견디는 힘을 준다. 다른 사람의 행운에서 희망과 막연한 기대감을 품기도 한다. 인생의 대비뿐 아니라 자연의 밝고 어두운 차이는 감성과 이성에 영향을 준다. 어릴 때는 밝은 햇살과 푸른 하늘을 보며 상쾌함, 열정, 설.. 2022. 5. 4.
01. 생각의 결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기쁘다. 나이가 어리고 많음은 중요하지 않다. 나이가 많아도 아이 같은 사람이 있고, 나이가 어려도 생각이 깊은 사람도 있다. 생각의 결이 맞는 사람들에게서 안정감을 얻고, 그들의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다. 성장한 생각은 삶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도와준다. 생각의 결이 비슷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맞는 수채화 종이를 찾는 것과 같다. 수채화 종이는 표면의 질감이 거친 정도와 물을 머금는 시간에 따라 황목, 중목, 세목으로 나뉜다. 황목은 표면의 돌기가 가장 많다. 물을 머금은 붓으로 그리면 종이의 움푹 팬 부분에 물감이 고여 돌기들이 알갱이처럼 두드러진다. 물이 거의 없는 붓으로 그리면 돌기 부분에 물감이 채색되어 거친 질감을 .. 2022. 5. 3.
00. <깊은 밤을 건너온 너에게> 연재 예고 여백을 담는 일상의 빛깔 여백을 담는 일상의 빛깔 나는 수채화를 그리는 사람이다 《깊은 밤을 건너온 너에게》 누군가가 ‘수많은’의 기준을 물었다. 나는 모른다. 각자의 삶이 다르듯 ‘수많은’의 조건과 기준은 다르다. 연습을 통해 적당한 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을 것이다. 평범한 삶이 어렵듯 적당한 농도를 찾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농도를 조절하는 연습을 거치다 보면 투명성을 확보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은 그림이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채화를 그리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자신만의 ‘농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농도를 사계절로 나누어 풀어놓는다. 봄에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열정과 생각이 가득하고, 여름에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할 수.. 2022.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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