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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깊은 밤을 건너온 너에게>

04. 우리에게 필요한 거리

by BOOKCAST 2022.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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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관한 글을 올리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인간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였다.
“수진아, 진희한테 무슨 일 생겼어?”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사실 나는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오면 반갑게 통화하더라도 전화를 먼저 걸지 않았다. 친구는 진희가 요즘 자신을 피하고 있다고 했다. 서운한 점이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가 모르는 사건을 내가 헤아려 알 수는 없었다. 차분히 둘 사이에 오간 이야기를 들었다.

답답해하는 친구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진희는 마음이 공허하고 인정욕구가 높은 아이였다. 공허함을 타인이 주는 인정으로 채웠다. 어린 시절에는 진희의 환경을 알기에 공감했고 배려했다. 어른이 된 우리는 진희의 감정을 다 받아주기는 힘들었다. 각자의 삶을 버티느라 바빴고, 감정을 다 받아줄 의지력도 없었으며, 받아준들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진희는 우리가 변했다며 서운해했다. 여전히 자신이 아닌 남을 통해 공허함을 채우려 했다.


배려심이 깊은 친구도 지친 모양이었다. 이미 지쳐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나는 친구의 마음을 깊이 공감했다. 친구에게 SNS에 올렸던 글을 이야기하며,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자신과 남을 위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자녀, 부모, 연인, 부부와 같이 가까운 관계에서 조절은 특히 중요하다. 밀접한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생각과 취향을 고려하지 못한다. 다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모른다는 호기심으로 다가가야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진희는 친구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 정신적인 어려움, 현재 상황을 다 알고 있으니 예전처럼 들어주고 공감해 주기를 원했다. 그녀는 자기 생각과 감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친구의 생각과 감정은 헤아리지 못했다. 친구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넌 충분히 잘했어. 모든 감정을 들어주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와 진희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지금은 힘들겠지만, 그게 너와 진희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싶었다며 울먹였다. 친구는 진희의 감정을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진희와 거리를 두는 다른 친구들을 마음속으로 비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는 갈등을 겪고 있었다. 나무란 자신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다른 친구들처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를 두는 것에 대한 용기가 없었고, 두려웠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같이 하는 것과 혼자 하는 것을 유연성 있게 전환하지 못하면 인간관계가 힘들어진다.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혼자 즐길 것이 있다. 알고 있지만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여러 경험을 거쳐오면서 나만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상대방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적당한 거리가 달라진다. 부모와 자녀의 거리, 친구 사이의 거리, 일로 만난 사람과의 거리는 모두 다르다. 부모와 자녀의 거리는 자녀의 마음을 느끼고 어루만져 주는 한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가 적당하다. 친한 친구와는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거리가 적당하고, 일로 만난 사람은 의사소통을 유지하는 정도가 좋다.

적당한 거리는 인간관계로 겪는 어려움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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