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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깊은 밤을 건너온 너에게>

05. 인정의 기준을 달리했다.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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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기준이 나였다. 유치원에서 내 그림 칭찬이 쏟아졌다. 선생님은 휘황찬란한 언어로 부모님께 그림을 설명했다. 초등학교 때는 그림과 만들기로 상을 자주 받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림의 의미가 옅어졌다. 입시 미술을 준비하면서 그림에 등급이 생겼다. 타인의 기준에 의해 줄 세우기식 그림이 되었다. 인정의 기준이 내가 아닌 남으로 옮겨갔다. 대학시절에도 인정을 주는 대상이 타인이었기에 그림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부터 인정의 기준이 달라졌다. 내가 나를 인정하면 만족했다. 나를 인정하자 마음이 편해졌고 가족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내 그림을 아껴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외주 일이 들어왔다. 남이 주는 좋아함과 외주 일은 내 인생의 작은 이벤트였다. 하지만 그것은 부수적으로, 주된 것은 나였다.

인정의 기준이 타인에게서 자신에게 넘어오는 것이 한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세 가지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며 실천하자 지금이 될 수 있었다. 나와의 관계를 잘 형성하려 했고, 긍정적인 환경에 나를 두려 노력했으며,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으려 했다.

내게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다. 혼자 있을 때의 모습,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모습. 말레이시아에서 동고동락했던 세 동료 중 한 명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수진 씨는 잘 모르겠어요.”

몇 년 후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 내게 비슷한 문장으로 말했다. 그 문장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나를 보는 모습과 남이 나를 보는 모습의 간극이 크다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를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는 건 아닌지, 남들이 원하는 모습이 내 모습이라고 고집하는 건 아닌지, 척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닌지. 감정적으로 화가 나면 화난다고 말했고, 우울하면 병원을 찾았으며, 불안하면 그림을 그리거나 산책하며 마음을 환기했다.

생각을 더듬던 중 마주한 것이 그림이었다.
내가 그린 그림은 편안함, 밝음, 아름다움의 감정을 주었다. 하지만 실제 내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편안하지도 밝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림에 담긴 감정들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이었다. 그림을 통해 깨달았다.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의 모습에 간극이 존재했다. 간극의 차이를 느끼고 말하는 그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이 들통난 것이다. 상대방의 언어를 공격이라 정의 내렸고, 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감추고 싶은 모습을 받아들이자 이전처럼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다. 내 삶이 제한되지 않았고, 내가 관심 대상이 되었다. 나와의 관계가 좋아지면서 인정의 대상이 내게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인정의 기준이 완벽하게 내게로 오려면 환경을 설정하는 게 중요했다. 이해할 수 없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거나 경쟁과 성공을 심하게 외치는 사람들과 있다 보면 인정의 기준이 남에게로 옮겨가려 했다. 기준이 타인으로 가는 순간 겪을 감정 에너지의 소비와 육체적 고통을 알기에, 그런 환경과 사람에게서 거리를 두고 시간이 흐르면서 멀어질 수 있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긍정적이면서도 직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모임에 참석했다.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나 자신을 더욱 인정할 수 있었다.

아무리 환경을 설정하더라도 관계에서 이어진 어려움과 피곤함은 존재했다. 그럴 때면 엄마,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를 무조건 응원해 주는 그들은 방전된 마음 에너지를 충전해 주었다. 그들에게서 위로받았고, 힘과 용기를 얻었으며, 다음을 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정은 내가 나를 더욱 인정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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