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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깊은 밤을 건너온 너에게>

02. 삶에도 명도가 필요하다.

by BOOKCAST 2022.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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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인생 모두 명도가 중요하다. 명도는 색의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로, 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를 뜻한다. 명도가 낮으면 어둡고 명도가 높으면 밝다. 빛은 명도에 영향을 준다. 명도가 높고 낮음의 격차가 클수록 그림의 대비가 강하고, 대비가 강할수록 이미지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림뿐 아니라 인생의 대비도 강한 인상을 준다. 인생의 불운과 행운의 격차가 클수록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 남의 불운을 통해 내 고통은 그보다 덜하다는 것을 깨닫고, 깨달음은 위안과 동시에 좀 더 견디는 힘을 준다. 다른 사람의 행운에서 희망과 막연한 기대감을 품기도 한다.

인생의 대비뿐 아니라 자연의 밝고 어두운 차이는 감성과 이성에 영향을 준다. 어릴 때는 밝은 햇살과 푸른 하늘을 보며 상쾌함, 열정, 설렘, 활기찬 감정을 느꼈다. 기쁨과 행복은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반면에 칙칙한 하늘과 계속해서 내리는 비는 구슬픔, 무기력함, 우울한 감정을 안겨주었다. 슬픔과 불안은 부정적인 결정을 내리게도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연약한 갈대만도 못한 감성과 이성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의 이성과 감성으로 현상을 분별하고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깊어진 생각은 환경에 따라 바뀐 지난날을 반성하게 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닌, 마음가짐이었다. 밝다고 행복하고 어둡다고 불안한 것이 아닌, 명암이 오가는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소중하다는 생각은 관심조차 없던 새싹을 보며 생명이 태어나는 신비를 느끼게 했고, 지는 해는 인생을 돌아보는 여유를 주었다. 별은 내게 경외심을 갖게 했고, 눈꽃으로 덮인 산을 보며 순백의 아름다움을 함께했다.

그림 안에 다양한 명도가 있는 것처럼 인생이라는 주제 안에 희로애락의 명암이 존재한다. 같은 명도라도 채도가 다르듯 똑같은 문제도 사람마다 해결하는 방법이 다르다. 나는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로 길을 찾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사건을 그림에 담는다. 처음에는 뒤엉킨 마음처럼 연필 선도 뒤죽박죽이다. 그려진 그림을 좀 더 단순한 선으로 정리한다. 단순해진 밑그림에 내 마음이 담긴 사물을 넣는다. 마음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색과 기법을 찾고,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그림의 명암으로 표현한다. 그린 후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글로 다시 담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보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과 만난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주름이 보이고, 주름 속에 깃든 삶의 무게를 느낀다. 아이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 심리적인 변화를 알아차리는 예리함을 품고, 다정한 시선으로 반려동물과 식물의 상태를 자세하게 살핀다.

함께한 시간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그 안에서 나는 삶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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