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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다시 쓰는 반려일기>11

10. 펫로스 증후군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회) 곁에서 펫로스를 지켜보는 마음 보기 좋은 풍경은 계속될 것 같았다. 인생의 호시절은 어쩐지 영원할 것 같고, 호시절의 끝은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11살 별이는 13살이 됐고 매일 심장약을 먹었으며 몸 상태가 심상치 않으면 병원에서 케어를 받으며 지냈다. 견주 입장에선 아픈 강아지를 노심초사 바라보면서도 하루라도 더 살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찬 시기였으리라. 그러나 산책을 잘 다녀온 어느 저녁부터 별이는 숨이 가빠지기 시작해 이틀 만에 무지개다리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15년 전 아득하게 강아지를 떠나보낸 내가 가까운 곳에서 타인의 펫로스를 지켜보기는 처음이었다. 마치 슬픔이 전염되듯 동생의 소식에 덩달아 가슴팍이 조여왔다. 직접 별이를 키운 적이 없는데도 몸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 상실감이 밀.. 2022. 2. 16.
09. 언젠가는 떠나보내야만 하는 반려동물 이별의 순간까지 최고로 행복할 것 언젠가 먼 훗날, 나의 반려견도 질병이나 노화로 인해 세상을 뜨게 되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지 머릿속에 순서를 그려봤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순간에 곁을 지키고, 사망이 확인되면 미리 선택한 장례식장에 연락해 예약을 하고, 그때까지 깨끗한 수건으로 감싸 시신을 보호하고, 시간 맞춰 품에 꼭 안고 가 헤어짐의 단계를 하나씩 밟아갈 터였다. 그야말로 십수 년 후에 벌어질 이별은 구체적으로 상상하니 더욱 아팠다. 내 곁에 등을 붙이고 앉아있던 모카를 꼭 끌어안았다. “모카야, 안 죽고 엄마처럼 오래 살면 안 될까?” 자신의 수명이 얼마쯤인지,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아무것도 모르는 모카는 그저 등을 부비고 혀를 할짝대기만 했다. 그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내가 상상하.. 2022. 2. 15.
08. 파양에 꽃길은 없다. 그건 동물유기, 동물 살해 계획입니다 모카를 데려와서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거나, 1분 1초도 빠짐없이 행복했다고 말할 순 없다. 입양 후 몇 개월간 기본적인 배변훈련과 어린 강아지의 안전과 건강을 살피느라 나는 2시간 넘게 외출한 일이 손에 꼽을 정도다. 솔직히 말하자면 간혹 모카가 오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도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그 정도의 불평 없이 단 1초도 후회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에 겐 오히려 신뢰가 가지 않는달까. 어쩌다 그런 감정이 들었어도 모카를 파양하지 않은 건 몹시 당연한 판단이었다. 강아지를 키우기로 마음먹고 데려올 땐 어떤 모진 시간이 닥쳐도 견디고 책임질 각오가 필요하다. 배변훈련이 힘들어서 손의 피부가 다 벗겨지고, 하루에 몇 번씩 놀아주고 밥을 먹이느라 생활 패.. 2022. 2. 14.
07. 만약 내가 키우지 않았더라면 강아지가 안 죽었을까? ‘만약’의 블랙홀 만약,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 만약은 가벼우면서 무겁다. 만약은 재미있고 긍정적인 상상이 될 수 있고, 어떤 결과를 누군가의 탓으로 돌릴 핑계를 만들기도 한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신중에 무게를 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온 사건이나 사고에 만약을 붙이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끝없는 자책과 아픔, 하찮은 자존감, 번번이 찾아오는 우울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일이다. 나의 가장 간절한 만약은 여름이의 죽음이었다. 그날의 상황은 지금도 생생하다. 여름이의 사고가 있기 전날, 친구들과 약속을 마치고 늦은 시간 택시를 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택시에 지갑을 흘리고 내린 것을 알게 됐다. 없어진 지갑을 찾고 있을 때 .. 2022. 2. 11.
06. 1년짜리 견생에게 배우는 사과와 용서 반려동물의 화해 대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은 항상 용서하고 반려동물이 용서를 받게 될 거라 생각한다. 이 가정이 너무나 당연한 이유는 반려인은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말썽을 부릴 목적이나 계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카는 거실 러그에 배변을 해서 내게 혼났지만, 내가 모카의 방석 위에 배변을 할 리는 없다(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모카는 밥투정을 해서 내 속을 썩이지만, 내가 식음을 전폐해도 모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생각만 해도 너무 서운하다). 모카가 내 옷의 장식을 물어뜯어 망가뜨린 일은 있지만, 내가 모카의 옷을 물어뜯어 망가뜨릴 필요는 없다(생각만 해도 너무 싫다). 그래서 당연히 나는 반려동물을 용서하는 존재, 모카는 용서받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또 이 관계는.. 2022. 2. 10.
05. 강아지의 목줄이란(feat.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너와 나의 안전거리 산책이란 게 슬리퍼 꿰어 신고 당장에라도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추운 날은 옷을 걸쳐주고 겨울을 제외한 모든 날엔 해충 방지 스프레이를 몸에 구석구석 뿌려준다. 그리고 모카와 나를 연결하고 사고로부터 구원해줄 하네스를 걸어준다. 하네스는 반려동물을 제어하는 벨트와 끈 등으로 구성된 물건이다. 보통 ‘목줄’이란 말로 통칭한다. 이 줄의 길이가 모카와 나 사이의 안전거리다. 줄을 절대 놓치지 않도록 꽉 붙들어야 하므로 손잡이를 손목에 걸고 한 바퀴 휘감아 줄을 잡는다. 내가 사용하는 목줄의 길이는 2m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이상 2m의 줄을 자유롭게 풀어두긴 어려워서 한 손에는 손잡이를 걸고, 나머지 한 손으로 줄의 중간쯤을 잡아 다른 보행자들과 거리를 둬야 한다. 보행자 외에도 .. 2022. 2. 9.
04. 개헤엄을 못 치는 강아지 체육학사전에 ‘개헤엄’이란 용어가 있다. 배를 아래쪽으로 향하고 머리는 물 밖으로 내밀고 발과 팔을 저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원시적인 헤엄의 일종을 말하는데, 개가 수영을 할 때 모습과 닮아 개헤엄이라고 한다. 그러니 개헤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개는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인식이었다. 모카의 견종은 푸들이다. 푸들은 과거 오리 수렵견이었다고 한다. 푸들 특유의 미용법이 몸털은 짧은 대신 다리털을 길게 남기는 이유가 물속에서 긴 다리털이 지느러미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다리털을 이용해 빠르게 수영해서 야생오리를 잡아 오는 게 과거 푸들의 역할이었다. 다시 말하건대 이 정보에서 알 수 있듯이 개는 수영을 할 수 있고, 푸들은 당연히 수영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모카가 1살이 .. 2022. 2. 8.
03. 강아지 독박육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다짐에는 유자녀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육아를 서로에게 미루는 모습이 큰 영향을 끼쳤다. 공동행위로 생긴 자녀의 육아를 조금이나마 회피하기 위해 배우자에게 미루는 사람들이 딱하게 느껴졌다. 내 생애 결코 겪고 싶지 않은 모습, 육아로 인해 자신을 잃어가는 살풍경이었다. 그런데 모카를 데려오면서 내가 이 살풍경을 간과했음을 단 하루 만에 알아차렸다. 당시 지방에서 장기출장 중이던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낼 때였다. 남편이 월요일 새벽 출장지로 떠나고 평일에 홀로 모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자 예상치 못한 ‘돌봄 노동’의 서막이 열렸다. 일단 모카의 배변훈련이 끝날 때까지 하루에 열 번 이상 걸레질을 해야 한다. 아주 어린 강아지는 하루에 소변을 8~10번쯤 보고 콩알만 한 대변도 3~4.. 2022. 2. 7.
02. 다시 강아지를 키우기로 했습니다. 모카와의 첫 만남 : 강아지가 좀 커요 드디어 무명의 여아 5, 모카를 만났다. 연한 갈색 털을 지닌 모카는 주먹치고는 많이 컸다. 굳이 주먹이라면 거인의 주먹이랄까. ‘크다고 미리 말씀하신 게 빈말은 아니었구나.’ 자세히 보니 주먹 크기에 비할 것도 아니고 통 식빵 두 개를 붙여놓은 정도로 컸다. 이미 입양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강아지의 크기나 몸무게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큼직한 몸집을 보니 당황스럽긴 했다. 또 현실적인 이유로 당황했는데, 우리가 사 가지고 간 켄넬이 강아지의 몸집에 비해 썩 넓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사 두면 다 성장하기 전까지 6개월쯤 쓰겠다 싶어 펫숍에서 가장 큰 것으로 샀는데 실제로 넣어 보니 강아지가 일어서면 머리를 곧게 펴지 못할 정도였다. 슬픈 예감은.. 2022. 2. 6.
01.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본가에서는 항상 개를 키웠다. 생애 첫 반려견 아심이, 부모님 지인에게 입양한 흰둥이, 임시 보호를 맡았던 초롱이, 길에서 데려온 유기견 짐보 등 많은 개가 우리 집에서 살았는데 가장 마지막에 키운 개는 여름이었다. 다른 개들은 성견으로 왔다면 여름이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우리 집에 온 갓난쟁이였다. 그동안의 반려견들은 성견으로 우리 집에 와서 마당에서 살았기 때문에 전혀 몰랐던 개의 성장 과정을 여름이를 통해 하나씩 알게 됐다. 개도 사람처럼 이갈이를 하고 배변을 ‘훈련’ 한다는 점,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고 아무거나 입에 넣으면 안 되고 사람처럼 예방접종을 한다는 것. 잘 때는 꼭 내 방으로 찾아와 내 팔을 베고 한이불을 덮고 잤고, 아침이.. 2022. 2. 4.
00. <다시 쓰는 반려일기> 연재 예고 펫로스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는 너와의 사계절 언젠가 떠나보내야만 하는 반려동물, 그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게 《다시 쓰는 반려일기》는 반려견을 갑작스레 떠나보내고 ‘펫로스 증후군’을 겪던 저자가 다시 반려생활을 하며 이별의 아픔을 갈무리하는 이야기이다. 1장에서는 저자가 긴 세월 앓던 펫로스의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반려생활을 시작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고심 끝에 반려견 ‘모카’를 입양한 후 서로를 알아가고 훈련하는 등 가족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2장은 좀 더 가까워진 모카와의 일상을 그린다. 수영 훈련, 산책, 반려견 SNS 계정 운영 등 평범한 반려생활 속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저자도, 모카도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3장은 저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펫로스 증후군과 반..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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