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본가에서는 항상 개를 키웠다. 생애 첫 반려견 아심이, 부모님 지인에게 입양한 흰둥이, 임시 보호를 맡았던 초롱이, 길에서 데려온 유기견 짐보 등 많은 개가 우리 집에서 살았는데 가장 마지막에 키운 개는 여름이었다.
다른 개들은 성견으로 왔다면 여름이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우리 집에 온 갓난쟁이였다. 그동안의 반려견들은 성견으로 우리 집에 와서 마당에서 살았기 때문에 전혀 몰랐던 개의 성장 과정을 여름이를 통해 하나씩 알게 됐다. 개도 사람처럼 이갈이를 하고 배변을 ‘훈련’ 한다는 점,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고 아무거나 입에 넣으면 안 되고 사람처럼 예방접종을 한다는 것. 잘 때는 꼭 내 방으로 찾아와 내 팔을 베고 한이불을 덮고 잤고, 아침이면 나와 함께 일어나 펄쩍펄쩍 뛰며 하루를 시작했다. 모든 게 생소했고 즐거웠다.
하지만 여름이와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여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1년 반쯤 지난 무렵이었다. 조끼 형태의 목줄을 착용하고 바깥 구경을 나온 여름이는 신나서 날뛰었고, 그만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조끼에서 줄이 떨어져 나갈 때 우리는 하필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흥분했던 여름이는 차도로 뛰어나갔다. 그 아찔했던 몇 초는 지금도 내 눈앞에 필름을 아주 느리게 감듯 선명하고 천천히 펼쳐진다. 그 뒤를 따라가며 목격한 것은 달려오던 택시에 부딪혀 공중에 붕 뜨던 여름이의 마지막 생명이었다.

여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데는 1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름이를 따라 차도에 뛰어들었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여름이를 들어 올렸을 땐 이미 사후강직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동차 경적이 귓가에 왱왱 울려왔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뻣뻣해지는 여름이를 안고 집 앞 동물병원으로 달렸다. 내 다리가 이렇게 무거웠던가, 이토록 느렸던가. 현실 속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찾아온 인생 최대 사고였다.
그렇게 여름이를 잃었다. 숱한 눈물을 흘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은 흐릿해졌다. 그런데 수년의 세월이 흘러도 한 번씩 여름이의 사진을 목격하거나 강아지를 잃은 사연을 접하면 반사작용처럼 눈물이 흘렀다. 슬프다거나 가슴이 아프다는 감정을 인지하기도 전에 울음이 치밀어올랐다.
상실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질 줄 알았건만 15년이 되도록 달라지지 않았다. 어린 여름이를 떠나보낸 부채감과 죄책감은 애초에 자존감이 높지 않은 나를 한없이 나쁘고 무책임한 인간으로 가뒀다.
‘내가 여름이를 데리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내가 키우지 않았더라면.’
무수한 ‘만약’이 나를 괴롭혔고, 종종 여름이는 꿈속에 등장해 평소처럼 애교를 떨었다. 그 지독한 세월이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인지조차 못 한 채 나는 15년을 살았다.
여름이가 떠나고 15년쯤 지난 시점은 남편과 결혼한 지 어느덧 5년 정도 지난 무렵이었다. 해결되지 않은 펫로스 증후군을 껴안고 한동안 ‘결혼하면 개를 키우자.’, ‘우리 집에 개가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라고 중얼거린 나는 얼마나 둔했던 걸까. 여름이를 떠나보낸 우울감과 상실감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스스로 ‘이제 괜찮아질 때가 됐는데 왜 이래?’라며 채찍질한 시절이었다.
곁을 내어줬던 동물의 죽음, 가족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의 죽음은 살아남은 자를 옭아맨다. 한없이 선량한 동물의 눈길과 행동을 더는 볼 수 없음에 가슴을 짓이기는 상실감을 경험하고, 어떤 개를 키우든 나보다 앞서 떠나게 되는 수명의 이치에 절망하고야 만다.
나는 가끔 남편에게 “당신보다 딱 3 일만 더 살고 싶다.”라고 말한다. 남편이 사망하면 장례를 치러주고 떠나겠다는 심산이다. 남편 장례까지는 신경 쓰지만 내 장례야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니 얼핏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어렴풋이 내가 죽음을 회피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남편이 나 없이 홀로 사는 것이 안타까워 싫으면서도, 그보다 더 솔직하게는 소중한 이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견디며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남편의 부재를 견딜 도량은 장례를 치르는 고작 3일 뿐이다.
그런 연유로 여름이를 잃고 15년간 아파하며 반사작용처럼 울던 나는 결혼 전 ‘개 한 마리 꼭 키우자.’던 남편과의 약속을 피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를 앞서 떠나갈 개 한 마리, 다시금 내게 상실과 슬픔을 떠넘길 존재.
다시 개를 키울 수 있을까.
잊을 수 없는 반려동물의 죽음, 그리고 죽음이 주는 공포와 우울감을 15년간 앓았던 나. 죽음을 잊지 못한다면 혹은 인정하지 못한다면 결코 새 생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구멍 난 인생.
긴 세월 펫로스 증후군에 빠져 허우적거렸다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던 시점에서 남편과 지인들은 내게 힘이 되는 말을 건넸다.
“개는 우리보다 빨리 죽겠지만 건강하게 살다 간다면 개 입장에선 천수를 누리다 가는 거야.”
“언니, 나는 키우던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후회하지 않아. 함께 사는 동안 정말 행복했으니까.”
“키우는 동안 충분히 사랑해주고 아껴준다면 그 죽음이 꼭 상처는 아닐 수 있어.”
“요즘은 사료도 좋고 병원도 정기적으로 다녀서 개들이 오래 살아요.”
모래사장에 글씨를 아무리 깊이 써도 파도가 몇 차례 쓸어주면 서서히 지워진다. 어쩌면 죽음도 그렇게 망각할 수 있을까. 파도가 밀려오지 않아 말라붙은 마음속 모래사장에 새겨진 여름이의 죽음을 새로운 파도로 지워내고 푸른 바다로 헤엄쳐갈 수 있을까.
주변의 응원에 힘입어 어려운 가능성 한 줄기를 손으로 붙잡았다. 계속 슬퍼하고 싶지도, 아파하고 싶지도, 악몽을 꾸고 싶지도 않았다. 죽음은 의지가 있어야만 망각할 수 있는 거였다. 아픈 존재의 죽음을 잊고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자고 마음을 다잡아갔다. 그렇게 죽음의 망각으로 반려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초조하고 설레는 가운데 매일 밤 내게 자문했다.
‘내가 다시 개를 키울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 뒤 모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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