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카와의 첫 만남
: 강아지가 좀 커요
드디어 무명의 여아 5, 모카를 만났다. 연한 갈색 털을 지닌 모카는 주먹치고는 많이 컸다. 굳이 주먹이라면 거인의 주먹이랄까.
‘크다고 미리 말씀하신 게 빈말은 아니었구나.’
자세히 보니 주먹 크기에 비할 것도 아니고 통 식빵 두 개를 붙여놓은 정도로 컸다. 이미 입양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강아지의 크기나 몸무게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큼직한 몸집을 보니 당황스럽긴 했다.
또 현실적인 이유로 당황했는데, 우리가 사 가지고 간 켄넬이 강아지의 몸집에 비해 썩 넓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사 두면 다 성장하기 전까지 6개월쯤 쓰겠다 싶어 펫숍에서 가장 큰 것으로 샀는데 실제로 넣어 보니 강아지가 일어서면 머리를 곧게 펴지 못할 정도였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 이 켄넬은 입양 한 날 이후 딱 한 번 쓰고 다시는 쓸 수 없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모카를 품에 안아봤다. 모카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듯 순한 표정으로 내 품에 안겼다. 앞으로 20년 가까이 함께 살게 될 강아지를 드디어 만났다. 긴 세월의 시작점, 첫인상을 나누는 이 짧은 찰나 스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꼭 작아야 하나?’
좀 전까지만 해도 모카의 덩치에 당황했으면서 막상 품에 안고 보니 이미 상태가 안 좋은 내 어깨를 더 망칠 만큼은 아닌 듯해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반려견은 가족 구성원, 20년 가까이 함께 살 가정의 일원이니 그에 맞는 예의를 차리고 싶었다. 다시 말해 아직 어린 생명을 외모와 몸 크기로 평가받고 선택받는 존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람과 개가 아무리 다르다 해도 이왕 가족으로 살기로 했다면 기준도 고르게 맞춰야 한다. 어린 사람을 외모와 몸 크기 때문에 가족으로 못 받아들이면 아동학대다. 개를 몸집과 생김새로 선택하는 것은 아동학대와 결이 다르지만, 인간의 기준과 취향으로 가족을 고른다는 건 서글픈 일이 분명하다. 선택받지 못한 강아지가 불우한 대우를 받는다면 더욱 슬퍼질 것이다.
개의 출신을 증명한다는 혈통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혈통서가 중요하겠지만, 사람으로 치자면 어디 김 씨와 무슨 이 씨의 탄생 비화와 성장배경을 증명해야만 우리 가족과 지인으로 인정해 준다며 허들을 세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인간사회에서도 미움받는 외모지상주의는 개도 피해갈 수 없다. 그렇기에 개를 입양할 때도 외모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통 식빵 두 개를 붙인 듯 커다란 모카를 켄넬에 넣고 건강수첩을 건네받은 후 우리 집으로 향했다. 연한 갈색 털의 외모를 보고 남편은 ‘모카’라는 이름을 주장했고, 나는 무조건 건강하고 오래 살아야 한다며 ‘장수’라는 이름을 주장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옥신각신했고 결국 여아 5는 모카가 되었다. 나는 모카에게 말했다.

“크면 큰 대로 잘 살아 보자. 몸집이 크면 장점도 있지 않겠니?”
실상 나는 긴 세월 펫로스 증후군을 앓았던 유약한 사람이고 부실한 면이 넘치는 흔한 인간이기에 개의 크기나 외모로 흠집을 낼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모카는 내가 못생겼다고, 좀 통통한 것 같다고, 얼굴이 너무 동그랗다고 불만을 갖지 않는다. 서로의 외모에 군소리하지 않는 사이, 인간사회에서는 통하지 않을 그 심플한 유대관계가 우리 사이에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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