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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다시 쓰는 반려일기>

05. 강아지의 목줄이란(feat. 우리 개는 안 물어요)

by BOOKCAST 202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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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안전거리
 
산책이란 게 슬리퍼 꿰어 신고 당장에라도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추운 날은 옷을 걸쳐주고 겨울을 제외한 모든 날엔 해충 방지 스프레이를 몸에 구석구석 뿌려준다. 그리고 모카와 나를 연결하고 사고로부터 구원해줄 하네스를 걸어준다. 하네스는 반려동물을 제어하는 벨트와 끈 등으로 구성된 물건이다. 보통 ‘목줄’이란 말로 통칭한다.
 


이 줄의 길이가 모카와 나 사이의 안전거리다. 줄을 절대 놓치지 않도록 꽉 붙들어야 하므로 손잡이를 손목에 걸고 한 바퀴 휘감아 줄을 잡는다. 내가 사용하는 목줄의 길이는 2m. 하지만 도시에 사는 이상 2m의 줄을 자유롭게 풀어두긴 어려워서 한 손에는 손잡이를 걸고, 나머지 한 손으로 줄의 중간쯤을 잡아 다른 보행자들과 거리를 둬야 한다.
 
보행자 외에도 조심할 건 수두룩하다. 거리에는 생각지 못한 위험요소가 많다. 사람에겐 별것 아닐 수 있지만 강아지에게는 길 위의 사소한 하나하나가 별것이다. 술 취한 누군가 거 하게 토해놓은 물질이나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요리조리 잘 피해야 한다. 공격성 강한 반려동물을 만날 때도 피해야 하고, 급히 달리는 오토바이와 전동 킥보드도 예사가 아니다. 목줄은 타인의 안전을 존중하는 물건이자 모카와 나의 안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상황이 이러니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한 손으로 핸드폰 게임이나 메신저를 하며 걷는 사람들을 보면 도무지 이해 불가다.
 
목줄은 강아지가 앞으로 달려나갈 때 나아가는 힘을 제어한다. 목과 가슴에 고정된 끈이 동물이 뛰쳐나가지 못하도록 강하게 결박한다. 모카의 경우 목줄이 없다면 1초 만에 10m쯤 뛰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에서 걸을 때 그런 속도는 사고를 자초하기에 반드시 목줄이 필요하다. 목줄을 걸어두면 1초에 1m쯤 나가는 속도로 걷게 된다.
 
이를 반대로 사람에게 적용하면 걷거나 달리기를 할 때 몸에 줄이 엮여 정해진 보폭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느낌 아닐까? 지금 당장 100m쯤 달리고 싶은데 내 몸을 통제하는 줄 때문에 10초에 한 걸음씩 나누어 걸어야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미안함으로 내 목까지 편치 않은 기분이다. 목줄을 평생 끼고 살아야 하는 반려동물은 오히려 적응을 마치고 무덤덤해질지도 모르지만, 정작 마음이 불편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건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오프리쉬(Off-leash) 거리에 나오는 견주들이 있는 걸까. 목줄을 하지 않고 자신의 강아지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불안과 불편을 선물하는 이중적인 사람들을 오프리쉬라고 한다. 자신의 개는 절대 물지 않는다며 세상에 절대 존재할 수 없는 100%의 확률을 고집하는 그들이다. 게다가 목줄 없이 거리로 나와 뒷짐 지고 느긋하게 산책하는 오프리쉬 견주들은 많아도 너무 많다.
 
모카를 키운 지 고작 2년여가 됐음에도 나는 오프리쉬 견주를 아주 많이 만났다. 아예 목줄을 하지 않거나 목줄은 채우고 리드줄을 뺀 형태의 오프리쉬들이다. 그들은 마치 외모만 다른 동일 인물처럼 똑같이 말한다.
 
우리 개는 안 물어.”
물면 돈 물어주면 되잖아.”
 
죽일 듯이 으르렁거리며 모카에게 달려든 개가 한둘이 아닌데도 그들은 늘 당당했다. 더욱이 우스운 점은 남편이 모카를 데리고 나가면 그런 소리가 일절 없는데, 나 홀로 모카와 산책을 나가면 그리 만만해 보이는지 뻔뻔하게 구는 오프리쉬 견주를 자주 만난다는 점이다.
 
목줄이 개에게 구속이 되는 건 맞다.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10m쯤 나아갈 수 있는 체력과 마음을 모두 지녔음에도 겨우 1m를 나가게 만드는 끈이 몸에 채워져 있으니 구속이다. 나도 가끔 모카의 목줄을 풀어주는데 그건 반려견 운동장이나 반려견 동반 카페에 방문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가끔 나쁜 마음을 먹는다. 언젠가 오프리쉬 견주들끼리 맞닥뜨려 제어되지 않는 강아지들이 싸워 다치면 어떨까 하고.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그 강아지들이 무슨 죄일까 싶지만, 그렇게나마 후회하길 바라는 심정이다. 상식을 갖추지 못한 견주들이 꼭 상처받기를 바라는 나의 애타는 복수심이다.
 
안전을 위해 채우는 목줄이지만 내게는 또 다른 감정이 교차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과거 키웠던 여름이에게 조끼 형태의 목줄을 입혀줬는데, 줄과 조끼의 이음새가 끊어져 눈앞에서 죽었다. 그래서 목줄은 내게 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장치이다. 지금도 나는 모카 목줄의 이음새를 확인하고 느슨해진 곳은 없는지, 닳은 곳은 없는지 수없이 확인해야만 현관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요즘은 모카와 나를 잇는 목줄 사이의 힘을 감지한다. 팽팽하게 당겨질 때면 조급한 모카의 마음과 호기심이 전해지고, 편안해질 때면 걸을 만큼 걷고 차분해진 상태를 감지한다. 그렇게 목줄이 팽팽했다가 느슨해지기를 반복하며 걷는다. 그 힘이 고스란히 내 손으로 전해지기에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며 버티는 날이 있고, 겨울철 산책 때 끼는 장갑은 한 철 지나면 잔뜩 헤져있다.
 
문득 이런 형태로 우리는 얼마나 걸었을까 헤아려본다. 하루에 몇 킬로미터쯤, 추운 날은 추운 대로 더운 날은 더운 대로 걸었던 거리만큼 나와 모카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있을까? 그 기나긴 거리에서 같은 종의 생물이 아닌 우리는 목줄이라는 물건에 의지해 서로를 지켜나간다. 나는 모카의 목숨을 지키고 모카는 나의 안도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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