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는 손자 맥스 때문에 선생을 부른 거예요. 이 애는 열일곱 살밖에 안 됐지만 이 상황을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얘가 자꾸 나한테 미쳤다고 해서…….”
맥스가 끼어들었다.
“미쳤다고 한 적 없어요. 우울증에 걸렸다는 거죠. 제가 보기에 할미는 우울증이에요. 선생님이 도와주실 거예요. 항우울제 같은 약을 처방해주실 수도 있고요.”
에릭은 맥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키가 작고 마른 체형으로, 대충 158센티미터 정도에 59킬로그램 정도 나갈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이보다 더 어려 보였다. 그는 둥근 얼굴에, 작지만 쭉 뻗은 코, 연한 푸른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고, 수줍게 웃을 때면 한쪽 뺨에만 보조개가 들어갔다. 밝은 갈색의 긴 머리카락은 층을 내서 잘랐고, 배기 진과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옷으로 가려지지 않는 가녀린 팔은 아이폰보다 무거운 건 들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티크너 부인은 관절염으로 울퉁불퉁해진 손을 휘저으며 손자를 내몰았다.
“이 아이는 날 하니, 할미, 할매라고 불러요. 어릴 때부터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았지. 말장난을 좋아했어요. 아주 영리한 아이라오. 전국 장학생에, SAT 만점, 성적이 최상위급이지. 그래서 이렇게 아는 척하는…….”
“할미, 제발요.”
맥스가 부드럽게 할머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 할미예요.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고요.”
맥스가 할머니와 똑같은 푸른색 눈으로 에릭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패리시 선생님, 심장 전문의 선생님은 할머니가 음식을 제대로 먹어야 기운을 차릴 수 있다면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영양 보급관을 달자고 했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영양 보급관을 다는 것도 싫고, 식사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하세요. 아무래도 우울증 때문인 것 같아요. 제 생각에 할머니는 영양 보급관을 다셔야 해요. 반드시 말이에요.”
에릭은 로리가 자신을 호출한 이유를 깨달았다. 말기 환자 치료는 환자 본인과 가족들에게 여러 가지 감정적인 문제들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는 이런 문제들에 제법 잘 대응할 수 있었다.
“맥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구나. 도움이 됐어. 할머니를 진찰하는 동안 잠시 밖에 나가 있을래?”
“그러죠.”
맥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을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얌전히 계셔야 해요.”
“잔소리 좀 그만해.”
티크너 부인이 받아치고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에릭은 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맥스가 치료실을 나가자, 에릭은 로리를 쳐다보았다.
“티크너 부인을 먼저 살펴본 뒤에 이야기하지.”
“좋아. 끝나면 연락해.”
로리는 티크너 부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특별히 넘겨드리는 거예요.”
“농담하지 말아요. 이제 우리 둘만 있게 어서 나가요.” 티크너 부인이 또다시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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