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박장애에 대해 말해보렴.”
에릭은 맥스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했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었다. 진단을 내리기에 앞서 맥스의 가족력이나, 생물학적 취약점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청소년기 후반과 이른 성년기는 위험한 시기였다. 특히 남자아이들에게는. 보통 맥스 정도 되는 나이에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가 ‘최초의 발현’을 시작한다.
“패리시 선생님, 약을 좀 처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조사를 해봤더니, 강박장애에는 약이 도움이 된대요.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 지금 같은 상황은 진료를 하다 보면 노상 겪는 일이었다. 약이 있으면 환자들은 약을 원한다. 에릭은 투약에 반대하는 건 아니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약을 처방하지 않았다. 특히 청소년한테는.
“강박장애에는 루복스하고 팍실이 좋다고 들었어요. 처방해 주실 건가요?”
“약에 대해 말하기 전에, 네 증상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꾸나.”
“무슨 증상이요?”
“네가 말했던 강박장애 증상 말이야. 어떻게 나타나지?” 에릭으로서는 첫 번째 상담 목표가 맥스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강박장애란 말을 무슨 속어처럼 쓰니까. 먼저 네 증상이 어떤지 알 필요가 있어.”
“15분마다 반드시 해야 하는 행동이 있어요. 그 시간이 되면 머리를 두드리고 뭔가 말을 해야만 해요.” 맥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어요. 그런 걸 의식이라고 하더라고요.”
“맞아. 의식적인 행동이지.”
“네.” 맥스가 초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은 일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그 의식에 속하는 말을 내뱉는 바람에 상사가 들은 적이 있어요. 정말 끔찍했죠.”
에릭은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지만 메모를 했다. 일?
“아무도 몰라요. 할머니조차 말이에요.” 맥스는 긴장한 티가 역력한 얼굴로 양손을 깍지 꼈다. “너무 힘들어요. 비밀을 지키자니 말이에요. 아무래도 제가 미친 것 같은데, 아무도 몰라요. 이중생활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럼 먼저 어떤 의식을 하는지부터 말해주겠니?” 에릭은 맥스가 어떤 느낌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불안장애가 있었다는 말은 아직 하지 않았다. 정신질환을 가진 자신이 다른 사람을 치료할 권리가 있는지 의문이긴 했지만, 동료 의사들 역시 뭔가 증상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사실 에릭은 불안장애가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통찰력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아마 2년 전일 거예요. 그때부터 안 좋아졌어요. 증상이 심해졌죠. 머리, 오른쪽 관자놀이를 정해진 시간에 두드려야 해요. 15분마다 말이에요.”
“하루 종일 말이니?”
“네. 깨어 있는 동안은 15분마다 이렇게 해야 해요.” 맥스가 가느다란 검지로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시범을 보였다. “그 시간이 지나면 안 돼요. 학교나 일터에서는 머리카락을 넘기거나 여드름을 짜는 척하면서 몰래 관자놀이를 두드렸어요.”
“그럼 시간을 봐야겠구나.”
“네. 계속 봐야 해요. 가끔은 머릿속으로 15분을 헤아릴 때도 있어요. 항상 염두에 두고 있죠. 온종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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