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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5분마다>

09. 강박장애가 있어요.

by BOOKCAST 2022.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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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에릭이 문을 열자 맥스 자보우스키가 대기실 나무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맥스? 어서 와라.”

“안녕하세요.”

“찾아오는 데 힘들진 않았고?”

“네. GPS를 이용했거든요.”

“그랬구나. 어서 들어오렴.” 에릭이 열려 있는 상담실 문을 가리키자, 맥스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에릭은 맥스가 병원에서 봤을 때보다 고민이 더 많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맥스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잠을 별로 자지 못한 것처럼 눈 밑이 검었다. 앞머리 아래로 보이는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 있는 것이 기분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았다.

“패리시 선생님, 만나주셔서 감사해요.”

상담실 가운데 멈춰 선 맥스가 말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고마워하는 눈빛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맥스의 피부는 수염 자국 하나 없이 창백하고 매끈했다.

“이리 앉으렴.”
에릭은 자신의 의자 맞은편에 놓여 있는 커다란 짙은 황록색 의자를 가리켰다.

고맙습니다.”
맥스는 조심스럽게 의자로 다가가 지팡이처럼 뻣뻣한 다리를 굽혀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의 가족인가요?” 맥스가 책장 위에 놓여 있는 케이틀린과 해나의 사진을 보며 물었다.

그래.”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는데, 대개는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들 중에는 상담실에 개인적인 사진을 놓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의 개인 환자들은 전혀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의 안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병원에서처럼 패리시 선생님이라고 부를까요?”

그래, 패리시 선생님이 좋겠구나.”

할머니가 저를 이곳에 보낸다는 동의서를 써주셨어요.”

그런 건 필요 없어. 치료에 대한 동의는 네가 직접 하면 되니까.”

할머니는 여길 학교처럼 생각하시나 봐요. 여기 수표도 있어요.”

맥스가 주머니에서 편지지를 꺼내 에릭에게 건네주었다. ‘패리시 선생님, 맥스를 잘 부탁드려요.’ 떨리는 손으로 쓴 그 편지를 보자 에릭은 목이 메었다. 편지지 안쪽에 수표도 들어 있었다. 에릭은 그 편지와 수표를 협탁에 올려두었다.

좋아, 완벽하구나. 네가 여기 오기로 해서 정말 기쁘다.”

할머니가 원하셨던 일이에요.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세요.” 맥스가 깍지 낀 손을 무릎 위에 놓으며 말했다. 긴장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도 네 할머니가 좋아. 오늘은 상태가 좀 어떠시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별로 좋지 않아요. 오늘 아침에 많이 힘들어 보이셨어요. 평소에는 7시쯤 일어나서 커피를 드시거든요. 인스턴트커피를 좋아하시는데 오늘은 건너뛰었어요. 일어나시긴 했는데 커피도 마시지 않고 다시 잠이 드셨거든요.” 맥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좀 걱정이 돼요. 언젠가 아침에 할머니를 깨우러 갔을 때 일어나지 않으시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아요. 언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잖아요.”

힘든 일이지.”

. 미리 알고 있는 게 나은 건지, 모르는 게 나은 건지 모르겠어요. 실은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 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에릭은 티크너 부인에게 남은 시간이 2주 정도라고 했던 로리의 말이 떠올랐지만 맥스에게 말하지 않았다.

맞아. 대처하기 아주 힘든 일이지.”

저도 알아요. 선생님을 만나러 와야 한다는 걸요. 하지만 할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만은 아니에요. 사실 할머니는 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세요. 지금까지 할머니에게 숨겨왔으니까요.” 맥스가 말을 잠시 멈추고 눈을 깜빡거렸다. “선생님한테는 말씀드려야할 것 같아요. 제가 여기 왜 왔는지, 머지않아 이곳에 오게 될 거라는 걸 알았던 이유에 대해서요. 제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증상이라니?”

강박장애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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