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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5분마다>

07. 가장 힘든 건, 스스로 찾아온 사람만 도와줄 수 있다는 것

by BOOKCAST 2022.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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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에릭은 자판기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맥스에게 다가갔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유리창에 비쳤다. 맥스가 돌아섰다.

어떻게 됐죠? 할머니를 도와주실 수 있겠어요? 할머니의 기분이 나아질 만한 처방을 해주셨나요?”

할머니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건 알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

어째서요?”

진찰을 해본 결과, 네 할머니는 이런 상황임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 특별한 분이시지…….”

그럼 영양 보급관은요?”
맥스가 항의가 아닌 애원하는 듯한 눈으로 물었다.

우울증이 아니라면 어째서 영양 보급관을 거부하시는 거죠? 그걸 달지 않겠다는 건 자살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비이성적인 선택이라고만 할 수는 없단다, 맥스. 할머니와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환자들이 영양 보급관을 거부하니까.”
에릭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보급관에는 두 종류가 있지. 코로 연결하는 것과 위로 직접 연결하는 것. 어느 쪽을 하더라도 불편하고…….”

하지만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할머니는 돌아가실 거예요. 굶어 죽게 될 거라고요.”

고통스러움에 붉어진 맥스의 눈을 보자 에릭은 소년에게 마음이 쓰였다. 맥스는 이런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건 나도 알아. 그래서 할머니께 언제든 치료가 필요할 때 연락 주시라고 명함을 드렸단다. 할머니께서는 본인의 병을 잘 받아들이고 계시니까…….”

할머니를 굶어 죽게 내버려둘 순 없어요. 영양 보급관을 연결해야 해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맥스, 내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알지만 이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네 할머니가 결정하실 일이지. 할머니는 의사들과 호스피스 직원들이 알아서 돌봐줄 거야.”

할머니의 선택이 틀렸어요.”

할머니가 결정하시게 해드려야 해. 할머니 인생이니까.”

에릭은 맥스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의 마음이 바뀌면요? 호스피스에서든, 집에서든 영양 보급관을 달 수 있는 건가요?”

그럼, 물론이지. 하지만 그쪽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란다.” 에릭이 잠시 말을 멈췄다. “네가 할머니를 얼마나 많이 신경 쓰고 있는지 알아. 눈에 다 보이니까. 일단 호스피스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일류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게 될 거야. 그분들에게 혹시라도 할머니가 우울해하시거나, 다른 감정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 바로 연락하라고 말해 놓을게.”

정말이죠?”
삐쭉삐쭉한 앞머리 밑에서 맥스의 눈썹이 아래로 축 쳐졌다.

그럼. 그분들은 경험이 아주 많단다.”

에릭은 소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문득 그는 아들이 있었다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해나가 태어난 뒤로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맥스와 신체적인 접촉을 한 순간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올랐다.

맥스, 앞으로 너나 할머니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너도 상담을 받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셔. 그래서 말인데, 밤이나 주말에 나한테 개인 상담을 받아보면 어떻겠니?”
에릭은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 있던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소년에게 건네주었다.

받아두렴. 혹시 상담을 받고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 다오.”

맥스는 명함을 받은 뒤 눈을 깜빡거리며 쳐다보았다.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전적으로 네가 결정할 일이니까 더 말하진 않으마. 나한테 연락하기 싫으면 호스피스 지원 그룹의 도움이라도 받아보렴. 할머니를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너 자신을 돌보는 거야.”

. 할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할머니 말에 따르길 바란다.” 에릭은 소년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잘 지내렴.”

맥스가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에릭은 힘겹게 돌아섰다. 아이에게 등을 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직업에서 가장 힘든 건, 스스로 찾아온 사람만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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