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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1>

11. “운장이 아니면 아니 됩니다.”

by BOOKCAST 2022.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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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허락해 위속이 긴 창을 들고 달려나가 욕을 퍼붓자 안량은 대꾸도 하지 않고 달려와 한칼 내려찍었다. 위속이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말 아래로 떨어지니 조조가 장수들에게 물었다.
“누가 감히 맞서겠는가?”
 
서황이 달려나갔으나 20합을 싸우고는 견디지 못해 진으로 돌아오니 장수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조조가 첫 싸움에 패하고 군사를 거두자 안량도 군사를 물렸다.
장수를 둘이나 잃은 조조가 울적해지자 정욱이 귀띔했다.
“안량을 이길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인가?”
 
“운장이 아니면 아니 됩니다.”
 
“그가 공을 세우면 떠날까 걱정일세.”
 
정욱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승상께서는 운장을 사랑하시면서 한편으로는 의심도 하십니다. 그러니 여기로 불러 강자와 한번 싸우게 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기면 중용하고 지면 의심도 필요 없게 됩니다. 유비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원소에게 갔을 것이니 운장이 안량을 죽이고 군사를 깨뜨리면 원소는 틀림없이 유비를 죽일 것입니다. 유비가 죽으면 운장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들어보니 손해라고는 없어 조조는 관우를 불렀다. 조조가 부른 까닭을 알고 관우가 대단히 기뻐 떠나는 인사를 하러 들어가자 형수들이 당부했다.
“이번에 가시거든 황숙 소식을 알아보세요.”
 
관우가 응하고 백마로 달려가니 조조가 설명했다.
“안량이 장수 둘을 죽였는데 용맹을 당할 수 없어 특별히 운장을 청해 상의하는 것이오.”
 
“그 움직임을 살펴보게 해주십시오.”
 
조조가 술상을 차려 대접하는데 홀연 안량이 싸움을 건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조조가 관우를 데리고 흙산에 올라 적진을 살피는데, 조조와 관우는 자리에 앉고 여러 장수는 빙 둘러섰다. 조조가 산 아래 안량의 진을 가리키니 깃발이 선명하고 창칼이 정연해 위엄이 가득했다.
“하북 사람과 말이 이처럼 웅장하구려!”
 
“제가 보기에는 흙으로 빚은 닭이요 모래로 구운 개[土鷄瓦犬토계와견]와 같습니다.”
 
관우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자 조조가 다시 손가락으로 적진을 가리켰다.
“대장 깃발과 해 가리개 아래 수놓은 전포를 입고 금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올라, 칼을 든 자가 바로 안량이오.”
 
관우는 눈을 들어 한 번 살피더니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목덜미에 풀을 꽂고 제 머리를 팔러 나온[揷標賣首삽표매수] 꼴입니다!”
 
【옛날 중국에서 물건을 팔 때는 표시로 풀을 꽂아 ‘초표(草標)’, 또는 줄여서 ‘표’라 했다. 함에 든 물건을 팔면 함 덮개에 꽂고, 칼을 팔면 칼집에 꽂았으며, 사람을 팔 때는 목덜미에 꽂았다. 그것을 사려는 자가 풀을 뽑으면 매매가 이루어졌다.】
 
관우가 적수를 가볍게 여길수록 조조는 관우의 분을 돋우었다.
“우습게 볼 사람이 아니오.”
 
“관 아무개가 재주는 없지만 몇만을 헤아리는 군사 속에 들어가 안량의 머리를 베어 승상께 바칠까 합니다.”
 
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조 마음을 잘 아는 장료가 한마디 보탰다.
“군중에는 농담이 없는 법입니다. 운장은 대수로이 보지 마십시오.”
 
관우는 선뜻 적토마에 올라 청룡도를 거꾸로 들고 산 아래로 달려갔다. 봉황의 눈 같은 두 눈을 부릅뜨고 누운 누에 같은 눈썹을 곤두세우며 바람같이 쳐들어가니 하북 군사들은 겁이 나서 물결 갈라지듯 양쪽으로 쫙 갈라졌다. 관우는 곧바로 안량에게 달려갔다.
 
대장 깃발 아래 서 있던 안량은 관우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물으려 하는데, 관우의 적토마가 어찌나 빠른지 번개같이 코앞에 닥쳐왔다. 관우가 손을 드는가 싶었는데 미처 막을 사이도 없이 칼이 번뜩이면서 안량을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옆에 있던 장수들은 너무나 놀라 간과 담이 깨질 듯해 깃발과 북을 버리고 정신없이 도망갔다. 관우가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안량의 머리를 베더니 다시 말에 선뜻 뛰어올라 적진을 달려 나오는데 사람 하나 없는 곳을 드나드는 듯했다.
 
하북 장졸들은 질겁해 싸우지도 못하고 어지러워졌다. 관우의 기세를 타고 조조 군사가 공격하니 죽인 자를 헤아릴 수 없고 말과 병기도 수없이 빼앗았다.
 
관우가 말고삐를 툭 잡아챘다가 놓아주니 적토마는 단숨에 산으로 달려 올라갔다. 장수들의 축하를 받으며 관우는 안량의 머리를 조조 앞에 바쳤다.
“장군은 그야말로 신 같은 사람이오!”
 
조조가 찬탄하자 관우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저야 말할 나위나 있겠습니까? 제 아우 장익덕은 100만 군사 속에서 상장의 머리 베어오기를 주머니에 든 물건 꺼내듯 합니다.”
 
조조는 매우 놀라 좌우에 늘어선 장수들을 돌아보았다.
“이후에 장익덕을 만나면 절대 가볍게 대하지 마라.”
 
말로만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장비의 이름을 저마다 옷깃에 적으라고 일렀다.
 
【관우가 아무리 용맹하고 적토마가 더없이 빨라도 원소의 장졸들이 대뜸 길을 내주고 맹장 안량이 손도 놀리지 못하고 죽었다면 믿기 어렵다. 나관중 본에는 이야기 뒤에 긴 설명이 붙어있다.
그 전에 안량이 떠날 때 유비가 가만히 부탁했다.
“나에게 관운장이라는 아우가 있는데 키는 아홉 자 다섯 치요, 수염은 한 자 여덟 치에 얼굴은 무르익은 대추 같고 봉황의 눈 위에 누운 누에 같은 눈썹이 붙었소. 푸른 비단 전포를 입고 누런 말을 타면서 청룡대도를 쓰는데 기필코 조조한테 있을 테니 그를 만나면 급히 오라고 이르시오.”
 
그래서 안량은 관우가 오는 것을 보면서도 그가 자기 쪽으로 넘어오는 것으로 알고 맞서 싸울 준비를 하지 않아 갑자기 관우의 칼에 찍혀 말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모종강 본에서는 관우의 무용담에 해가 될 이런 말들은 다 빠졌다.
 
정사에는 관우의 무공이 더욱 놀랍다. 그때 조조는 원소의 주력부대를 다른 쪽으로 유인하고 급작스레 안량의 부대를 습격했다. 조조 군사가 10여 리 밖에 이르러서야 안량이 소식을 듣고 급히 맞서는데 장료와 함께 선봉으로 나선 관우가 대공을 세웠다.
 
‘관우는 안량의 지휘 깃발을 바라보고 말을 달려가 수많은 적군 속에서 안량을 베고 머리를 잘라 왔다. 원소의 여러 장수는 막지 못했다.’
 
정사 《삼국지》 <촉지 관우전>의 기록이다.】
 
안량의 패한 군사가 도망가 원소에게 보고했다.
“얼굴이 붉고 수염이 긴 장수가 큰 칼을 들고 홀로 말을 달려 진에 쳐들어와 안 장군을 베고 유유히 돌아가 저희가 참패했습니다.”
 
원소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군가?”
 
“유현덕의 아우 관운장이 틀림없습니다.”
 
저수가 대답하니 원소는 크게 노해 유비를 가리키며 욕했다.
“네 아우가 내가 사랑하는 장수를 죽였으니 너는 반드시 그와 내통했을 것이다. 너를 살려두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원소는 무사들을 불러 유비를 끌어내 목을 치라고 명했다.
원소가 곧바로 죽이려 하는 순간에도 유비는 태연하고 차분했다.
“명공께서는 어이하여 한쪽 말만 듣고 옛정을 끊으려 하십니까? 이 비는 서주에서 뿔뿔이 흩어진 뒤 식솔을 잃고, 아우 운장이 죽었는지 아직 살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천하에 모습이 비슷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얼굴이 붉고 수염이 길다고 다 관 아무개이겠습니까? 어찌하여 분명히 밝혀보시지 않습니까?”
 
원소는 원래 주관이 없어 유비 말을 듣자 댓바람에 저수를 나무랐다.
“자네 말을 잘못 듣고 좋은 사람을 죽일 뻔했군.”
 
원소는 유비를 다시 장막 윗자리로 청해 올리고 안량의 원수 갚을 일을 의논했다. 원소가 말을 꺼내기 바쁘게 장막 아래에서 한 사람이 나섰다.
“안량은 저와 형제 같은 사이인데 조조에게 죽었으니 제가 어찌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습니까?”
 
유비가 보니 그 사람은 키가 여덟 자에 얼굴은 해태 같으니 다름 아닌 하북 명장 문추였다. 원소는 크게 기뻐했다.
“자네가 아니면 안량의 원수를 갚을 수 없네. 10만 군사를 줄 테니 얼른 황하를 건너 조조를 죽이게.”
 
원소가 너무 쉽게 이기려 들자 저수가 말렸다.
“아니 됩니다. 지금은 연진에 주둔하면서 군사를 일부 나누어 관도로 보내는 것이 상책입니다. 가볍게 황하를 건넜다가 변고라도 생기면 모두 돌아오지 못합니다.”
 
원소는 버럭 화를 냈다.
“언제 보아도 너희는 군사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시간만 질질 끌어 큰일에 훼방을 놓는단 말이다! 군사를 부림에는 신속함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도 듣지 못했느냐?”
 
저수는 장막에서 물러 나와 탄식했다.
“윗사람은 제 뜻만 고집하고 아랫사람은 제 공로만 내세우려 드니, 유유히 흐르는 황하를 과연 내가 건널 수 있을까!”
 
저수는 병을 핑계로 다시는 일을 의논하러 나오지 않았다.
유비가 원소에게 청했다.
“이 비가 명공의 큰 은혜를 입으면서도 갚을 길이 없으니 문 장군과 함께 나가서 싸워 은덕에 보답하고, 운장 소식도 알아볼까 합니다.”
 
원소가 기뻐 문추를 불러 유비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라고 이르자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비는 거듭 패한 장수라 승리에 이롭지 못합니다.”
 
“내가 현덕의 재능을 보고 싶으니 함께 가보게.”
 
원소의 권유에 문추가 대답했다.
“주공께서 꼭 보내시겠다면 그에게 3만 군사를 주어 후군으로 삼겠습니다.”
 
유비도 찬성해 문추는 7만 군사를 거느리고 앞서가고, 유비는 3만 군사로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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