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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1>

09. 관우는 촛대를 들고 문밖에 나와 날이 밝도록 서 있어

by BOOKCAST 202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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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삼국지>의리의 화신 관우]

이튿날 조조가 군사를 거두어 허도로 돌아가는데, 관우는 수레를 마련해 두 형수를 앉게 하고 직접 수레를 지키며 나아갔다.

길에서 역관에 들어 쉬게 되면 조조는 일부러 유비와 관우의 사이를 어지럽히려고 관우를 두 형수와 한 방에 들게 했다. 그러면 관우는 촛대를 들고 문밖에 나와 날이 밝도록 서 있으면서 조금도 지친 빛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행동을 보고 조조는 더욱 존경했다.
 

관우, 촛대 들고 문밖에서 날이 밝도록 서 있어
 


허도에 이르러 조조가 저택 한 채를 내주자 관우는 마당을 둘로 나누어, 늙은 군사 열 명을 뽑아 안뜰 문밖에서 안채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바깥채에 들었다. 조조가 관우를 데리고 황궁에 들어가 뵈니 황제인 헌제는 그를 편장군으로 임명했다.

이튿날 조조가 큰 잔치를 베풀고 여러 모사와 장수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관우를 손님으로 대접해 상석에 앉히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비단과 금 그릇, 은그릇을 갖추어 선사했다. 그랬더니 관우는 선물을 모두 두 형수에게 드려 간수하게 했다.

조조는 관우를 아주 후하게 대접했다. 작은 잔치는 사흘에 한 번이오, 큰 잔치는 닷새에 한 번이었다. 또 미녀 열 명을 보내 시중들게 하니 관우는 모두 안채로 보내 형수들을 모시게 했다.

관우는 사흘에 한 번씩 안뜰 문밖에 가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형수들 안부를 물었다.
“두 분 형수님은 무고하십니까?”

두 부인은 황숙의 소식이 있느냐고 묻고, 별 소식이 없다고 대답하면 일렀다.
“아주버님 편할 대로 나가보시지요.”

그제야 관우는 조심스레 물러 나왔다. 그 말을 듣고 조조는 또 탄복했다.
어느 날 조조가 보니 관우의 푸른 전포가 너무 낡아 사람을 불러 관우의 몸을 재게 하고 귀한 비단으로 전포를 한 벌 지어 선사했다. 관우는 전포를 받아 속에 입고 겉에는 여전히 낡은 전포를 걸쳐 새 옷을 덮었다. 조조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운장은 어찌 이처럼 검소하시오?”

“아닙니다. 낡은 전포는 유황숙께서 내려주신 것이라 이 옷을 입으면 형님 얼굴을 뵙는 듯합니다. 승상께서 새 옷을 내려주셨다고 어찌 형님이 주신 옷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낡은 옷을 겉에 입었습니다.”

“참으로 의로운 사나이로군!”
조조는 입으로는 칭찬했으나 속으로는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루는 관우에게 갑자기 부하가 달려왔다.
“안뜰의 두 부인이 우시다 땅에 쓰러지셨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니 장군께서 어서 들어가 보시지요.”

관우는 바삐 옷매무시를 고치고 안뜰 문밖에 가서 땅에 꿇어앉았다.
“두 분 형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슬피 우십니까?”

감 부인이 대답했다.
“내가 밤에 황숙께서 흙구덩이에 빠지신 꿈을 꾸었어요. 깨어나 미 부인과 의논해 보니 황숙께서 분명 땅 밑에 계시는 것 같아 이렇게 우는 거예요.”

“꿈은 믿을 수 없습니다. 형수님께서 형님을 너무 그리다 그런 꿈을 꾸셨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관우가 형수들을 위로하는데 조조가 사람을 보내 관우를 잔치에 청했다. 관우는 두 형수에게 인사하고 조조에게 갔다. 얼굴의 눈물 자국을 보고 조조가 까닭을 묻자 관우가 대답했다.
“두 분 형수님께서 형님을 그려 통곡하셔서 슬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조는 웃으면서 좋은 말로 관우를 위로하고 연거푸 술을 권했다. 술기운이 거나해지자 관우가 수염을 움켜쥐고 탄식했다.
“나라에 보답하지 못하고 형님도 등졌으니 사람값을 못 하는구나!”

혼자 중얼거리는 관우를 바라보던 조조가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가벼운 말을 꺼냈다.
“운장은 수염이 몇 대나 되는지 아시오?”

“몇백 대쯤 되겠지요. 해마다 가을이면 서너 대씩 빠집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검정 주머니를 만들어 싸둡니다. 수염이 끊어질까 걱정해서요.”

그 말을 듣고 조조가 비단 주머니를 짓게 하여 수염을 보호하라고 관우에게 주었다. 이튿날 조회 때 신하들이 뵈러 들어가자 헌제는 관우가 가슴에 비단 주머니를 드리운 것을 보고 까닭을 물었다.
“신의 수염이 길어 승상이 수염을 담으라고 비단 주머니를 내렸습니다.”

관우가 아뢰자 헌제가 주머니를 풀어 수염을 드러내라고 일렀다. 관우가 주머니를 풀자 수염이 배 아래까지 드리우니 헌제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정말 미염공(美髥公)이로다.”

【미염공은 아름다운 수염을 가진 어른이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관우를 ‘미염공’으로 불렀다.
어느 날 조조가 또 관우를 청해 잔치를 베풀었다. 술자리가 끝나 조조가 관우를 배웅해 저택에서 나오다 보니 그의 말이 빼빼 말랐다.
“공의 말은 어찌 이렇게 여위었소?”

“천한 몸이 무거워 말이 견디지 못해 이처럼 여윈 모습입니다.”

조조가 시종들에게 말 한 필에 마구를 갖추어 끌어오게 하니 잠시 후 말이 오는데, 달아오른 숯덩이같이 온통 붉은 말이 아주 웅장했다. 조조가 말을 가리키며 물었다.
“공은 이 말을 알아보겠소?”

“여포가 타던 적토마 아닙니까?”

“그렇소. 내가 타보지 못했는데 공이 아니면 이 말을 탈 수 없을 것 같소.”

조조는 안장과 고삐를 갖추어 적토마를 내주었다. 관우가 두 번이나 절하며 감사드리자 조조는 은근히 언짢았다.
“공은 내가 미녀와 금은, 비단을 보내줄 때는 절하지 않더니, 오늘 말을 선사하자 이처럼 기뻐하며 거듭 절을 하는구려. 어찌하여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 말을 귀하게 아는 거요?”

야속한 조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우는 들뜬 기분으로 대답했다.
“저는 이 말이 하루에 천 리를 가는 줄을 압니다. 오늘 다행히 얻게 되었으니 형님이 계신 곳을 알기만 하면 하루 만에 달려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조는 깜짝 놀라 뉘우쳤다. 관우가 떠나자 조조는 생각할수록 서운해 장료를 불러 물었다.
“내가 운장을 가볍게 대하지 않았건만 그는 언제나 떠날 마음만 품으니 어인 일인가?”

“제가 가서 그 마음을 알아보겠습니다.”

장료는 이튿날 관우를 찾아가 인사하고 물었다.
“이 료가 형을 승상께 추천했는데 혹시 푸대접을 받지나 않았습니까?”

“승상의 후한 호의에 깊이 감격하는 바요. 다만 내 몸은 여기 있어도 황숙을 그리는 마음은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소.”

“형의 말씀은 틀렸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볍고 무거움을 가릴 줄 모르면 장부가 아닙니다. 현덕이 형을 대한 것이 승상이 형을 대하는 것보다 더 후하다고 하기 어려울 텐데, 형은 어찌 여기를 떠날 생각만 하십니까?”

“승상께서 나를 아주 후하게 대접해 주시는 것은 잘 알지만, 황숙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살고 죽기를 같이 하기로 맹세했으니 저버릴 수 없소. 언제까지나 여기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오. 하지만 가더라도 반드시 공을 세워 승상의 은혜를 갚고 떠나겠소.”

“만약 현덕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땅 밑까지 따라가겠소.”

장료는 아무리 해도 관우가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물러 나왔으나 매우 난감했다.
‘승상께 사실대로 말하면 운장이 목숨을 잃을까 두렵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또한 주인을 모시는 도리에 어긋나는구나.’

망설이던 장료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승상은 어버이 같은 주인이요, 운장은 형제다. 형제의 정 때문에 주인을 속이면 충성스럽지 못한 짓이다. 의롭지 못한 인간이 될지언정 충성스럽지 못한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장료가 돌아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조조는 후유 한숨을 쉬었다.
“주인을 섬기면서 근본을 잊지 않으니 천하의 의사로다!”

순욱이 곁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공을 세운 다음에야 떠나겠다고 했으니 그가 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으면 가지 못할 것입니다.”

조조도 같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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