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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1>

07. “문원은 나하고 싸우러 오시오?”

by BOOKCAST 202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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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삼국지의리의 화신 관우]

그날 밤 조조가 소패를 차지하고 서주를 공격하니 미축과 간옹은 성을 버리고 달아나고 진등이 성을 바쳤다.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들어가 백성을 안정시키고 모사들과 하비를 칠 일을 의논하자 순욱이 걱정했다.
“운장(관우의 자)이 유비의 식솔을 보호하며 죽기로써 성을 지키는데, 급히 손에 넣지 않으면 원소가 뒤로 허도를 칠까 두렵습니다.”
 
“내가 예전부터 운장의 무예와 재주를 사랑해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으니 운장에게 사람을 보내 항복하라고 설득하는 게 좋겠소.”
 
곽가가 충고했다.
“운장은 의로움을 소중히 여기니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보내 설득하다 그에게 잘못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때 장막 아래에서 한 사람이 나섰다.
“제가 관 공과 만난 적이 있으니 가서 설득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장료로, 자가 문원이었다.
 
정욱이 대책을 내놓았다.
“제가 보기에 그는 말로 설득당할 사람이 아닙니다. 저에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운장이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길이 없고, 뒤로 물러서려 해도 틈이 없게 만든 뒤에 문원을 보내 설득하면 승상께 들어올 수 있습니다.”
 
정욱이 차근차근 대책을 설명했다.
“운장은 만 사람을 당할 실력을 지녔으니 슬기로운 계책을 쓰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먼저 유비 쪽에 있다 항복한 군사를 하비로 보내 우리에게서 도망쳐 돌아왔다고 말하고 성안에 들어가 호응하게 합니다. 그리고 운장을 성 밖으로 끌어내 싸우다 못 이기는 척 도망쳐 다른 곳으로 유인해서 돌아갈 길을 끊고 사로잡거나 설득하면 됩니다.”
 
조조가 옳게 여기고 서주에서 항복한 군사 수십 명을 가만히 하비성으로 돌아가게 하니 관우는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튿날 하후돈이 성 밑에 가서 싸움을 걸어, 관우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 나오자 10여 합을 싸우다 달아났다. 관우가 20리쯤 뒤쫓다 혹시 성을 잃기라도 할까 걱정되어 군사를 되돌려 세우는데, 포 소리가 울리며 서황과 허저가 나타나 돌아갈 길을 끊었다. 매복한 군사가 강한 쇠뇌 100장을 벌려놓고 쏘아대니 쇠뇌 살이 메뚜기 떼처럼 날아왔다.
 
더 나아갈 수 없어 군사를 되돌려 세우자 서황과 허저가 다시 달려왔다. 관우가 힘을 떨쳐 두 사람을 물리치니 다시 하후돈이 달려와 날이 저물 때까지 싸웠으나 돌아갈 길이 없었다.
 
관우가 군사를 이끌고 작은 흙산으로 올라가 잠시 쉬자 조조 군사가 겹겹이 에워쌌다. 관우가 흙산 위에서 바라보니 하비성에서 불빛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았다. 거짓으로 항복한 군사가 성문을 열자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들어가 관우 마음을 흔들려고 불을 놓은 것이다.
 
하비에서 솟는 불길에 놀란 관우가 밤중에도 몇 번이나 쳐 내려갔으나 어지러운 화살에 막혀 돌아오고 말았다. 먼동이 틀 때까지 버티다 다시 군사를 정돈해 쳐 내려가려 하는데 문득 한 사람이 말을 달려 올라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장료였다. 관우가 나가서 물었다.
“문원은 나하고 싸우러 오시오?”
 
“아닙니다. 옛정을 생각해 특별히 뵈러 왔습니다.”
장료는 칼을 던지고 말에서 뛰어내려 인사를 올렸다.
 
두 사람이 산꼭대기에 자리를 잡자 관우가 또 물었다.
“문원은 혹시 관 아무개를 설득하러 온 것이 아니오?”
 
“아닙니다. 지난날 이 아우를 구해주셨는데, 오늘 어찌 형을 구해드리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문원은 나를 도우러 오셨소?”
 
“그것도 역시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하러 오셨소?”
 
“지금 유 사군(유비)이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고, 익덕(장비)이 살아 있는지도 모르는 형편입니다. 어젯밤에 승상께서 하비를 깨뜨리셨는데 성안의 군사나 백성은 하나도 해치지 않고, 누구도 사군의 식솔을 놀라게 하지 못하도록 사람을 보내 지키게 하셨지요. 승상께서 사군의 식솔을 귀중하게 대하심을 알리려고 이 아우가 일부러 왔습니다.”
 


싸우지도 돕지도 않겠다던 장료가 속뜻을 내비치자 관우는 화를 냈다.
“바로 나를 설득하겠다는 말이로군. 내가 비록 막다른 경지에 빠졌지만,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정도로 알아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대는 어서 돌아가게. 나는 곧 산을 내려가 싸우겠네.”
 
관우가 성을 냈으나 장료는 오히려 껄껄 웃었다.
“형의 말씀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충성과 의로움을 받들어 죽는 것이 어찌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단 말인가?”
 
“형이 지금 여기서 죽는다면 그 죄가 세 가지나 됩니다.”
 
“무슨 죄가 세 가지나 되는지, 어디 말해보게.”
 
“처음에 유 사군과 형이 형제의 의를 맺을 때 살고 죽기를 같이 하겠다고 맹세했는데, 오늘 유 사군이 패하자마자 형이 곧바로 싸우다 죽으면 이후에 유 사군이 다시 일어서서 형의 도움을 받고자 해도 더는 힘을 얻을 수 없으니 옛날 맹세를 저버리는 게 아닙니까? 이게 바로 첫 번째 죄라 하겠습니다. 또 유 사군은 식솔을 형에게 부탁했는데, 형이 지금 싸움터에서 죽으면 두 부인은 의지할 데가 없으니 사군의 무거운 부탁을 저버리는 게 아닙니까? 이게 두 번째 죄입니다. 형은 무예가 남달리 뛰어나며 학문과 역사에도 통달하셨으면서 유 사군과 함께 기울어지는 황실을 보좌하려고는 하지 않고, 부질없이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한낱 평범한 사내의 용맹이나 떨쳐보려 하니 어찌 옳다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형이 이런 세 가지 죄를 지으려 하시니 이 아우는 충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우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내 죄가 세 가지라면 나보고 어찌하란 말인가?”
 
“지금 승상의 군사가 사방에 깔렸으니 형이 항복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속절없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이로움이 없는 노릇이니 승상께 잠시 항복하는 것이 좋지요. 이후 유 사군의 소식을 듣고 곧바로 찾아가면, 첫째로 두 부인을 보호할 수 있고, 둘째로 복숭아 뜰의 약속을 어기지 않게 되며, 셋째로 쓸모 있는 몸을 보전하게 됩니다. 이처럼 세 가지 이로움이 있으니 형은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장료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만 하니 관우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문원이 세 가지 이로움을 이야기했으니 나는 세 가지 약속을 받을까 하오. 승상이 들어주시면 내가 곧 갑옷을 벗겠지만 들어주시지 않으면 세 가지 죄를 짓더라도 목숨을 버릴 것이오.”
 
“승상께서는 너그럽고 도량이 넓은 분이니 무슨 일이든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세 가지가 무엇인지 들어봅시다.”
 
“첫째, 나는 유황숙(유비)과 함께 한의 황실을 돕기로 맹세했으니 오늘 한의 황제께 항복을 드릴 뿐 조 승상에게 항복하는 게 아니오. 둘째, 두 분 형수님께 황숙의 녹봉을 내려 부양하되 지위가 높든 낮든 누구도 문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하오. 셋째, 유황숙 행방을 알기만 하면 천 리든 만 리든 가리지 않고 바로 떠날 것이오.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빠져도 나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니 문원은 급히 돌아가 승상께 전하기 바라오.”
 
장료는 기꺼이 승낙하고 말에 올라 조조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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