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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1>

08. “내가 한번 말했으면 그만이지 어찌 신용을 잃겠소.”

by BOOKCAST 2022.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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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삼국지> 의리의 화신 관우]

먼저 관우가 한의 황제께 항복할 뿐 승상께 항복하지 않는다는 첫 조건을 이야기하자 조조는 허허 웃었다.
나는 한의 승상이니 한이 바로 나일세. 그거야 들어줄 수 있지.”

장료가 두 번째 조건을 보고했다.
“두 부인이 황숙의 녹봉을 받게 하고, 지위가 어떠하든 누구도 문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달랍니다.”
 
“황숙의 녹봉에 갑절 더 얹어주지. 안팎을 엄하게 가르는 것이야 가문의 법도이니 내가 무얼 의심하겠나?”
 
장료가 세 번째 조건을 전했다.
“현덕(유비의 자) 소식을 알기만 하면 아무리 멀더라도 꼭 찾아가겠답니다.”
 
앞의 두 조건에는 선선히 대답하던 조조가 그 말에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내가 운장을 길러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그 일은 들어주기 어려운걸.”
 
장료는 미리 생각해둔 바가 있는 듯 얼른 대답했다.
“저 옛날 예양(豫讓)이 보통 사람과 나라의 특출한 인재를 논한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현덕이 운장을 대한 것은 그저 두터운 은혜를 베푼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승상께서 더 두터운 은혜로 마음을 사로잡으시면 운장이 복종하지 않을까 걱정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예양은 사마천이 《사기》의 <자객열전>에서 대서특필한 전국시대의 이름난 자객이다. 진(晉)의 여섯 대신 가운데 범씨와 중항씨를 섬길 때는 별로 이름이 나지 않았는데, 권력 싸움에서 범씨와 중항씨가 잘못되자 군소리 없이 최대 실력자 지백의 가신이 되었다.
 
뒷날 지백이 권력 싸움에서 패하자 예양은 목숨을 걸고 복수에 나섰다. 새로운 실권자인 원수 조양자를 죽이려다 실패하자 몸에 옻을 발라 피부병에 걸린 듯 모습을 바꾸고, 숯을 삼켜 목소리까지 다르게 하여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하려는 일은 지극히 어렵지만, 이로써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리라.”
 
그러나 두 번째 시도에서도 잡히자 조양자가 꾸짖었다.
“그대의 원래 주인은 범씨와 중항씨였다. 지백이 범씨와 중항씨를 파멸시켰을 때는 그대가 도리어 지백의 신하가 되었는데, 어찌하여 지백이 죽자 기어이 원수를 갚으려 하는가?”
 
예양은 태연히 대답했다.
“내가 범씨와 중항씨를 섬길 때는 그들이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해주었으니 나도 보통 사람 정도로 보답했지만, 지백은 나를 나라의 특출한 인재로 대접했으니 나도 특출한 인재답게 보답하는 것이오.”
 
예양이 죽기 전에 한을 풀게 해달라고 청해 조양자가 자기 옷자락을 베도록 허락하니 예양은 세 번이나 펄쩍 뛰면서 그의 옷을 벤 다음 자결했다.】
 
장료의 말에 조조도 선선히 허락했다.
“문원 말이 옳군. 내가 세 가지를 모두 들어주지.”
 
장료는 관우에게 돌아가 조조가 조건을 모두 받아들인다고 전했으나 관우는 바로 항복하지 않았다.
“비록 그러하나 승상께서는 잠시 군사를 물려주시기 바라오. 성안에 들어가 두 형수님을 뵙게 해주시면 이 일을 여쭌 다음 항복하겠소.”
 
장료가 돌아와 아뢰자 조조는 즉시 30리 밖으로 군사를 물렸다.
“안 됩니다. 속임수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순욱이 말렸으나 조조는 차분히 대꾸했다.
“운장은 의로운 사나이라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오.”
 
조조 군사가 물러서자 관우가 부하들을 데리고 하비로 들어가 살펴보니 백성은 모두 놀란 기색이 없었다. 두 형수를 만나려고 들어가니 감부인과 미부인이 급히 나와 맞이해 관우는 섬돌 아래에서 절하며 사죄했다.
“두 분 형수님을 놀라시게 했으니 저의 죄입니다.”
 
두 부인이 급히 물었다.
“황숙께서는 어디 계세요?”
 
“어디로 가셨는지 모릅니다.”
 
“아주버님은 어찌하려 하세요?”
 
“관 아무개는 성 밖에 나가 죽기를 무릅쓰고 싸우다 흙산에 에워싸였습니다. 장료가 항복을 권해 제가 세 가지 약속을 요구하니 조조가 다 들어주고 특별히 군사를 물려 저를 성안에 들여보냈습니다. 저는 형수님들 뜻을 듣지 못해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세 가지 일이란 어떤 것들이지요?”
 
두 부인의 물음에 관우가 상세히 대답하자 감 부인이 설명했다.
“어제 조조 군사가 성에 들어와 우리는 반드시 죽을 줄 알았는데,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군졸 하나도 문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아주버님께서 이미 승낙을 받았다면 저희 두 사람에게 물을 것이 있나요? 다만 뒷날 아주버님께서 황숙을 찾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지요.”
 
“형수님들께서는 마음 놓으십시오. 관 아무개에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조조는 입만 열면 모든 말이 명령으로 전달되는데, 자신이 한 말을 뒤집으면 누가 그를 따르겠습니까?”
 
“아주버님께서 알아서 하세요. 무슨 일이든지 구태여 저희 아녀자들에게 묻지 마시고요.”
 
두 부인의 말에 따라 관우가 기병 수십 명을 데리고 가자 조조는 친히 영채 밖까지 나와 맞이했다. 말에서 내려 절을 하니 조조가 황급히 답례해 관우가 입을 열었다.
“싸움에 진 장수를 죽이지 않은 은혜에 깊이 감사합니다. 어찌 승상님 맞절을 받겠습니까?”
 
“평소 운장의 충성과 의로움을 흠모하던 차에 오늘 다행히 만나게 되었으니 평생소원을 풀었다 하겠소. 조조는 한의 승상이고 공은 한의 신하요. 관직과 작위는 다르지만 늘 공의 덕을 존경하는 바이오.”
 
“문원이 저 대신 아뢴 세 가지 일을 승상께서 모두 허락하셨으니 약속을 어기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한번 말했으면 그만이지 어찌 신용을 잃겠소.”
 
“관 아무개는 황숙께서 계신 곳을 알기만 하면 물에 뛰어들고 불을 밟더라도 반드시 찾아가겠습니다. 그때 미처 작별인사를 드리지 못하더라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현덕이 살아 있다면 반드시 공이 떠나도록 하겠소. 그러나 어지러운 싸움 중에 돌아가지나 않았을까 염려되는구려. 마음 놓고 두루 알아보도록 하시오.”
 
관우는 절을 올려 사례하고, 조조는 잔치를 베풀어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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