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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1>

05. “내가 천자가 되면 너를 귀비로 세우겠다!”

by BOOKCAST 2022.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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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코 늙은 도적놈을 죽여 저의 수치를 씻겠습니다.”

왕윤은 급히 손으로 여포의 입을 막았다.
“장군은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늙은이에게 누가 미칠까 두렵구려.”
 
“대장부가 하늘땅 사이에 살면서 어찌 답답하게 언제까지나 남의 아래에만 처박혀 있겠습니까?”
 
“장군의 재주로 보면 실로 태사가 눌러서 다룰 바가 아니오.”
 
“내가 그 늙은 도적놈을 죽이고 싶으나 아버지와 아들의 정이 있어 후세 사람들이 무어라 떠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왕윤은 빙그레 웃었다.
“장군은 성이 여 씨이고 태사는 동 씨인데, 화극을 던질 적에야 어디 아버지와 아들의 정이 있기나 했소?”
 
여포가 선뜻 받았다.
“사도 말씀이 아니었으면 여포는 자신을 망칠 뻔했습니다.”
 
왕윤은 여포의 뜻이 굳어진 것을 보고 한마디 더 보탰다.
“장군이 한나라 황실을 받들면 나라의 충신이니 청사(靑史=역사책)에 이름이 전해지고 만대에 향기를 풍길 것이요, 장군이 만약 동탁을 돕는다면 반역한 신하이니 사관의 붓끝에 적혀 천만년 구린내만 남길 것이오.”
 
여포는 일어나 삿자리에서 나가 왕윤에게 절을 올렸다.
“이 포의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사도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혹시 일을 이루지 못하면 오히려 큰 화를 부를까 두렵소.”
 
왕윤이 미심쩍어하자 여포는 검을 뽑아 팔을 찌르고, 피를 흘리며 맹세했다. 왕윤은 꿇어앉아 고마워했다.
“한나라 제사가 끊기지 않는 것은 모두 장군의 덕이오. 절대 비밀을 흘리지 마시오! 때가 되어 계책이 생기면 반드시 알려주겠소.”
여포는 시원스레 대답하고 떠났다.

왕윤은 곧 두 사람을 불러 상의했다. 상서대 부장관인 상서복야 사손서와 다시 벼슬길에 오른 사예교위 황완이었다. 사손서가 제안했다.
“천자께서 병환이 다 나으셨으니 말 잘하는 사람을 미오로 보내 황제 자리를 물려주는 일을 의논하자고 동탁을 불러오게 하시지요. 그리고 여포에게 천자의 비밀조서를 주어 무사들을 조정문 안에 매복시켰다가 동탁이 들어올 때 붙잡아 죽이면 그만입니다.”
 
황완이 물었다.
“감히 누가 가겠소?”
 
“여포와 고향이 같은 기도위 이숙은 동탁이 벼슬을 올려주지 않아 원한이 큽니다. 그 사람을 보내면 동탁은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윤이 옳게 여기고 여포를 불러오니 그도 찬성했다.
“옛날 저를 꾀어 양아버지 정건양을 죽이게 한 사람도 이숙입니다. 만일 그가 가지 않으려 하면 제가 그 목을 치겠습니다.”
 
남들 모르게 이숙을 불러오니 여포가 물었다.
“형은 옛날에 이 포를 꼬드겨 정건양을 죽이고 동탁에게 오게 했소. 지금 동탁이 천자를 속이고 백성을 학대해 죄악이 넘쳐흐르니, 사람과 하늘이 모두 분하게 여기는 바요. 형은 미오로 가서 천자의 조서를 전하고 동탁을 조정으로 불러오시오. 무사를 매복해 그를 죽여서 한나라 황실을 돕고 함께 충신이 되기를 바라는데, 형의 존귀한 뜻은 어떠하오?”
 
이숙은 대뜸 찬성했다.
“나도 그 도적놈을 없애려 한 지 오래이나 마음이 같은 사람이 없어 한스러웠네. 지금 장군 말을 들으니 하늘이 내려주는 기회인데 내가 어찌 다른 마음을 품겠나!”
 
이숙은 화살을 꺾어 맹세했다. 왕윤이 장담했다.
“공이 이 일을 해낸다면 어찌 높은 벼슬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겠소?”
 
이튿날 이숙은 10여 명 기병을 데리고 미오로 갔다.
 
시종이 천자의 조서가 왔다고 보고하자 동탁이 불러들였다.
“조서는 어떤 내용이냐?”
 
“병환이 나으신 천자께서 문무백관과 함께 태사께 자리를 선양할 일을 상의하시려고 이 조서를 내리셨습니다.”
 
“사도 왕윤의 뜻은 어떠하냐?”
 
“왕 사도는 이미 사람들에게 명해 황제 자리를 넘겨받을 수선대를 짓게 하고 주공께서 오시기만 기다립니다.”
 
동탁은 대단히 기뻐했다.
“내가 밤에 용 한 마리가 내 몸을 덮는 꿈을 꾸었더니 오늘 과연 이런 좋은 소식을 듣는구나. 시기를 놓쳐서는 아니 되지!”
 
그는 이각과 곽사를 비롯한 심복 장수들에게 날개 돋친 곰처럼 날쌔고 사납다는 뜻으로 비웅군이라 부르는 3000명 군사를 거느리고 미오를 지키게 하고, 그날로 길에 오르려고 행차를 갖추었다. 동탁은 이숙을 돌아보며 인심을 베풀었다.
“내가 황제가 되면 너를 집금오로 삼겠다.”
 
【오늘의 수도경비사령관 격인 집금오는 후한을 세운 광무제가 ‘내가 만약 벼슬을 한다면 집금오를 하겠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위풍이 당당했다.】
 
이숙이 절하며 감사 인사를 하는데 어느새 자신을 ‘신(臣)’이라 불렀다.
 
동탁은 어머니에게 인사하려고 안채로 들어갔다. 나이 90이 넘은 어머니가 물었다.
“내 아들은 어디로 가려 하느냐?”
 
“아들은 한나라 황제 자리를 넘겨받으러 갑니다. 어머님은 조만간 태후가 되십니다!”
 
“내가 요즈음 살이 떨리고 마음이 놀라우니 불길한 징조가 아닐까 걱정이구나!”
 
“나라의 어머니가 되실 터이니 어찌 놀라운 징조가 없겠습니까?”
 
동탁은 어머니와 작별하고, 떠나기 전에 초선에게 말했다.
“내가 천자가 되면 너를 귀비로 세우겠다!”
 


이미 속내를 빤히 아는 초선은 기뻐하는 척 절하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미오를 나온 동탁은 수레에 올라 부하들을 늘여 세우고 장안을 향해 떠났다. 30리도 가지 못해 갑자기 수레바퀴가 부러져 말로 옮겨 탔다. 또 10리도 못 가서 말이 울부짖으며 몸부림쳐 고삐를 끊어버렸다. 동탁이 이숙에게 물었다.
“수레는 바퀴가 부러지고 말은 고삐를 끊으니, 이게 무슨 징조냐?”
 
이숙이 재치 있게 둘러댔다.
“태사께서 한나라 황제 자리를 넘겨받는 것을 말해줍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어, 장차 옥으로 만든 연(輦=황제의 수레)에 타시고 금 안장을 얹은 말에 오르실 징조입니다.”
 
동탁은 흐뭇해 그 말을 믿었다. 이튿날 다시 길을 가는데 세찬 바람이 불며 뿌연 안개가 하늘을 가렸다. 동탁은 또 이숙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징조냐?”
 
“주공께서 용의 자리에 오르시니 붉은빛과 안개가 나타나 황제의 하늘 같은 위엄을 만드는 것입니다.”
 
동탁은 또 기분이 좋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장안성 밖에 이르자 백관이 모두 나와 맞이하는데 유독 사위 이유만 병에 걸려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동탁은 백관을 돌려보내면서 다음 날 새벽 조정 밖에서 맞이하라고 분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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