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탁과 부딪쳐 넘어뜨린 사람은 바로 이유였다. 이유가 재빨리 동탁을 부축해 서원으로 들어가자 동탁이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왔느냐?”
“제가 승상부 앞에 오니 태사님께서 노하시어 여포를 찾아 뒤뜰로 들어가셨다 하더군요. 그래서 급히 오는데 여포가 달아나면서 소리쳤습니다. ‘태사님께서 나를 죽이려 하시오!’ 그래서 황급히 달려가 화해를 권하려다 그만 은혜로운 태사님과 부딪쳤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여포는 괘씸한 역적 놈이다! 내가 귀여워하는 첩을 희롱하다니, 맹세코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동탁이 악에 받쳐 씨근덕거리자 이유가 말렸다.
“은혜로운 태사님께서는 들어보십시오. 옛날 초장왕이 갓끈을 끊은 ‘절영지회’에서 애첩을 희롱한 신하 장웅의 잘못을 따지지 않았더니, 후에 진나라 군사에 에워싸여 곤경에 빠졌을 때, 장웅이 죽기로써 싸워 구출되었습니다. 지금 따져보면 초선은 한낱 여인에 지나지 않으나 여포는 태사님의 심복 맹장입니다. 태사님께서 이 기회에 초선을 여포에게 내려주시면 여포는 크나큰 은혜에 감격해 반드시 죽기로써 보답할 것입니다. 태사님께서는 세 번 생각해보시기를 빕니다.”
【춘추시대 다섯 패자의 하나로 초나라 명군이었던 장왕이 밤에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푸는데 불이 꺼졌다. 그 틈을 타 누군가가 장왕이 사랑하는 첩을 끌어안았다. 첩은 잽싸게 그 사람 갓끈을 잡아당겨 끊어버리고는 왕에게 일렀다. 웬만한 임금이라면 그 신하를 찾아내 목을 쳤으련만 초장왕은 생각이 역시 패자다웠다.
‘아랫사람들에게 술을 내려 취하게 만든 후 여인의 절개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그는 시종들에게 잠시 불을 켜지 말라 이르고 어둠 속에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과인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갓끈이 끊기지 않는다면 마음껏 즐기지 못한 것이니 모두 갓끈을 끊어라!”
모든 신하가 다 갓끈을 끊은 뒤에야 환하게 자리를 밝혔다. 물론 누가 왕의 애첩을 건드렸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동탁은 한참이나 말없이 궁리하다 말했다.
“네 말도 맞다. 내가 생각해보겠다.”
그리고 후당으로 들어가 초선을 불러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여포와 사통했느냐?”

초선은 철철 눈물을 흘렸다.
“첩이 뒤뜰에서 꽃을 보는데 갑자기 여포가 들어왔어요. 첩이 놀라 피하자 여포는 ‘내가 태사의 아들인데 피할 게 무어냐?’고 하면서 화극을 들고 봉의정까지 쫓아왔지요. 첩은 그가 흉측한 마음을 품은 것을 알고 핍박당할까 두려워 연못에 뛰어들어 자결하려 했으나 몸놀림이 늦어 그놈에게 끌어안겼어요. 한참 사느냐 죽느냐 할 때 태사님께서 오셔서 제 목숨을 구해주셨사옵니다.”
“내가 너를 여포에게 주려고 하는데 어떠하냐?”
초선은 소스라쳐 놀라며 소리 내어 울었다.
“첩은 이미 귀인을 섬기는데 별안간 집안 종놈에게 내려주신다니요, 천한 첩은 죽을지언정 그런 욕을 보지 않겠사옵니다!”
초선은 벽에 걸린 보검을 쑥 뽑아 목을 베려고 했다. 동탁은 황급히 검을 빼앗고 초선을 덥석 껴안았다.
“내가 너에게 농담한 것이다!”
동탁 품에 힘없이 몸을 맡긴 초선은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었다.
“이는 틀림없이 이유의 계책이에요! 이유는 여포와 사이가 좋아 이런 계책을 짜냈으나, 태사님 체면과 천한 첩의 목숨은 아랑곳하지도 않는 거지요. 첩은 그의 생살을 씹어야겠어요!”
“내가 어찌 차마 너를 놓아주겠느냐?”
“지금은 태사님 사랑을 받사옵니다만 여기는 오래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 오래 있다가는 반드시 여포에게 해를 당할 것이옵니다.”
“내가 내일 너와 함께 미오로 돌아가 즐거움을 누리겠다. 그러니 걱정하거나 의심하지 마라.”
그제야 초선은 눈물을 거두고 절을 하며 감사했다.
이튿날 이유가 승상부에 들어왔다.
“오늘이 좋은 날이니 초선을 여포 집으로 보내시지요.”
그러나 동탁은 마음이 변한 지 옛날이었다.
“여포는 나하고 아버지와 아들 명분이 있으니 초선을 내려주기가 불편하다. 다만 그 죄를 따지지는 않겠다. 너는 그에게 내 뜻을 전하고 좋은 말로 위로하면 된다.”
“태사님께서 여인에게 홀리셔서는 아니 됩니다.”
이유의 말에 동탁은 비위가 상해 낯빛이 변했다.
“네 아내는 여포에게 내주겠느냐? 초선의 일은 더 말하지 마라. 말하면 목이 달아날 것이다.”
이유는 밖으로 나와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모두 여인의 손에 죽게 되었구나!”
동탁이 그날로 미오로 돌아간다고 영을 내려, 백관이 모두 나와 절을 하며 배웅했다. 초선이 수레에 앉아 바라보니 여포가 멀리 붐비는 사람 속에 서서 수레를 멀거니 바라보는 것이었다. 초선은 얼굴을 가리고 통곡하는 시늉을 했다.
수레는 멀리 갔으나 여포는 여전히 고삐를 늦추고 말이 흙 언덕 위를 느릿느릿 걷게 놓아두었다. 여포가 수레 뒤에서 이는 먼지를 멍하니 바라보다 풀풀 한숨을 쉬는데 뒤에서 누가 물었다.
“장군은 어찌하여 태사를 따라가지 않고 멀리 바라보며 탄식만 하시오?”
돌아보니 사도 왕윤이었다.
“이 늙은이는 요사이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 문을 닫고 바깥에 나오지 못해 오랫동안 장군을 보지 못했소. 오늘 태사께서 미오로 돌아가신다고 해서 병을 무릅쓰고 배웅하러 나왔는데 반갑게도 장군과 만났구려. 여보시오, 장군! 어찌하여 여기서 길게 한숨을 쉬시오?”
“사도의 따님 때문입니다.”
왕윤은 짐짓 놀라는 척했다.
“아니,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아직도 딸아이를 장군께 보내주지 않았단 말이오?”
“늙다리 도적놈이 제가 차지하고 총애한 지 오랩니다!”
왕윤은 또 깜짝 놀라는 척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구려!”
여포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낱낱이 알려주자 왕윤은 하늘을 우러러 얼굴을 쳐들고 발을 구르며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러다 겨우 말이 나왔다.
“태사가 그런 새나 짐승 같은 짓을 할 줄이야!”
그는 여포의 손을 잡았다.
“변변찮은 내 집에 가서 상의합시다.”
여포가 따라가자 왕윤은 밀실로 안내하고 술상을 차려 대접했다. 여포가 다시 봉의정에서 초선과 만난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니 왕윤이 한탄했다.
“태사가 내 딸을 더럽히고 장군의 여자를 빼앗았으니, 실로 천하의 비웃음을 받을 일이오. 태사를 비웃는 게 아니라 이 윤과 장군을 비웃는 것이오. 이 윤이야 나이 먹고 재주 없는 몸이니 아쉬울 것 없지만, 장군은 세상의 으뜸가는 영웅인데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요!”
여포는 노기가 하늘에 솟구쳐 상을 치며 소리소리 질렀다. 왕윤이 급히 말렸다.
“늙은이가 말을 잘못했으니 장군은 화를 삭이시오.”
“맹세코 늙은 도적놈을 죽여 저의 수치를 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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