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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1>

03. “초선은 뒤뜰에서 꽃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by BOOKCAST 2022.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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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미인 초선미인계로 동탁 제거]

왕윤은 여포를 후당으로 안내하고 능청스레 물었다.
장군은 무엇 때문에 이 늙은이를 원망하시오?”

“당신이 초선을 수레에 태워 승상부로 보냈다던데 무슨 까닭이오?”
 
여포가 예절도 차리지 않고 퉁명스레 물었으나 왕윤은 여전히 고상하게 대답했다.
“아, 장군은 아직 모르셨구려! 어제 태사께서 조정에서 이 늙은이에게 다짜고짜 그러시더군요. ‘내가 일이 있으니 내일 사도 집에 가겠소.’ 그래서 간소하게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태사께서 오셔서 말씀하더이다. ‘이 집에 초선이라는 딸이 있어서 내 아들 봉선(여포의 자)에게 허락했다던데, 혹시 별일이 있을까 걱정되어 특별히 와서 청혼하며 만나보기를 청하오.’ 그러니 이 늙은 것이 감히 어기지 못해 초선을 불러 시아버님께 절을 드리게 했소. 그랬더니 태사께서 말씀하셨소. ‘오늘이 좋은 날이니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 봉선에게 짝을 지어주겠소.’ 그러니, 생각해보시오. 태사께서 친히 오셨는데 이 늙은 것이 어찌 감히 막을 수 있겠소?”
 
그럴듯한 말에 여포는 속아 넘어가 급히 사과했다.
“사도께서는 저를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오늘 깜빡 잘못 알았으니 내일 매를 지고 와서 죄를 빌겠습니다.”
 
“어린 딸에게 혼수품이 꽤 있으니 그 아이가 장군 댁으로 가기를 기다려 보내드리겠소.”
 
여포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떠났다.
 
이튿날 여포가 승상부에 가서 어떻게 되어가나 알아보니 아무 소식이 없어, 후당으로 들어가 동탁의 첩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기막혔다.
“태사님께서는 어젯밤 새로 데려온 사람과 주무셨는데, 지금껏 일어나지 않으셨어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가만히 동탁의 침실 뒤로 돌아가 훔쳐보니, 마침 초선이 일어나 창문 아래에서 머리를 빗고 있었다.
 
이때 초선이 가만히 훔쳐보니 창문 밖 연못에 갑자기 웬 사람의 그림자가 비치는데, 키가 매우 크고 머리카락을 묶는 관을 썼으니 바로 여포였다. 초선은 일부러 눈썹을 찌푸리고 수심에 잠긴 모습을 지어 보이며 비단 수건으로 자꾸만 눈가를 훔쳤다.
 
여포는 한참이나 엿보고 밖으로 나왔다가 잠시 후 다시 들어갔다. 이미 동탁이 대청에 나와 앉아 여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밖에 무슨 일이 없느냐?”
 
“별일 없습니다.”
 
여포는 대답하고 동탁 곁에 모시고 섰다. 동탁이 식사를 시작하자 여포가 가만히 안쪽을 훔쳐보았다. 수놓은 발 안에서 한 여자가 오고 가면서 바깥을 내다보는데, 얼굴을 반쯤 살짝 내밀고 눈으로 정을 보내기도 했다. 그녀가 초선임을 아는 여포는 넋이 공중에 떴다. 여포가 하는 꼴을 본 동탁은 덜컥 의심이 들었다.
“일이 없으면 봉선은 물러가거라.”
 
여포는 우울한 심정으로 승상부를 나왔다. 집에 이르자 여포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챈 아내가 물었다.
“오늘 혹시 동 태사께 꾸중 들은 것 아니어요?”
 
여포가 짜증을 냈다.
“태사가 어떻게 감히 나를 통제한단 말이야?”
 
아내는 더 묻지 못했다. 이때부터 여포는 초선 생각만 가득해 날마다 승상부를 드나들었으나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초선을 받아들이고 동탁은 단단히 홀려 한 달 남짓 바깥에 나와 일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하찮은 병에 걸렸다. 그랬더니 초선은 옷 띠도 풀지 않고 비위를 잘도 맞춰가면서 정성껏 간호했다. 동탁은 초선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어느 날, 여포가 안방에 들어가 문안하는데 동탁이 마침 잠이 들어 있었다. 초선이 침상 뒤에서 몸을 반쯤 내밀고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키고는 다시 동탁을 가리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여포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동탁이 잠이 깨어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여포가 눈에 띄는데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침상 너머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몸을 돌려보니 초선이 침상 뒤에 서 있었다. 동탁은 발끈해 여포를 꾸짖었다.
“네가 감히 내 사랑하는 첩을 희롱하느냐?”
 
곧바로 좌우의 심복을 불러 여포를 쫓아냈다.
“이후 다시는 후당에 들어오지 못한다!”
 
화가 치민 여포가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다 마침 길에서 동탁의 사위 이유를 만나 연유를 말하니, 이유가 급히 동탁을 찾아갔다.
“태사님께서는 천하를 손에 넣으려 하시면서 무슨 까닭으로 자그마한 잘못 때문에 봉선을 나무라십니까? 만약 그 마음이 변하면 큰일이 틀어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내일 불러서 금과 비단을 내리시고 좋은 말로 달래시면 무사할 것입니다.”
 
이튿날 동탁은 여포를 앞채로 불러 위로했다.
“내가 어제 병으로 속이 뒤숭숭하던 차에 말을 잘못해 네 마음을 상하게 했구나. 깊이 새겨두지 마라.”
 
동탁은 금 열 근과 비단 스무 필을 내렸다.
“어르신께서 나무라셨는데 포가 어찌 마음에 새겨두겠습니까?”
 
이때부터 여포는 다시 승상부 앞뒤 채를 거리낌 없이 드나들었다. 하지만 몸은 동탁 곁에 있어도 마음은 항상 초선에게 가 있었다.
 
병이 낫자 동탁은 조정에 들어가 나랏일을 상의했다. 화극을 들고 동탁 곁에 모시고 섰던 여포는 동탁이 헌제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궁전을 나와 곧바로 승상부로 달려갔다. 승상부 대문 앞에 말을 매고 화극을 든 채 후당으로 들어가니 초선이 말했다.
“뒤뜰 봉의정에서 기다려주셔요.”
 
여포는 곧장 봉의정으로 가서 구불구불한 난간 곁에 서 있었다. 한참 지나 초선이 꽃을 헤치고 버들가지를 쳐들며 다가오는데 과연 달나라 선녀 같았다. 초선은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다.
“왕 사도님은 저를 비록 친딸은 아니어도 친자식처럼 대해주셨어요. 장군님을 처음 뵙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청소라도 할 수 있는 첩으로 허락받으니, 천한 계집은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태사가 못된 마음을 품고 첩을 더럽힐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저는 당장 죽지 못하는 게 한스러우나 다만 장군님과 헤어지는 인사를 하지 못해 모욕을 참으면서 구차하게 살아왔어요. 이제 다행히 장군님을 만나 뵈었으니 제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더러운 몸으로 다시 영웅을 모실 수는 없으니 그리던 임 앞에서 죽어 천한 년의 뜻을 밝히겠어요!”
 
말을 마치자 초선은 난간을 잡더니 연꽃이 피어난 연못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여포는 다급히 초선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가 네 마음을 안 지 오래다! 다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을 뿐이다!”
 
초선은 여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천한 년은 이생에 장군님 사람이 되지 못했으니 내생에서나 약속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생에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면 영웅이 아니다!”
 
“첩은 하루가 한 해 같아요. 장군님께서 가엾게 여기시어 구해주시기만 기다립니다.”
 
“내가 지금 잠깐 틈을 타서 왔는데 늙은 도적놈이 의심할까 두려우니 빨리 가야 한다.”
 
초선은 여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장군님께서 이처럼 늙은 도적을 겁내시니 첩은 밝은 해를 볼 날이 없겠네요!”
 
여포가 멈추어서서 대답했다.
“내가 좋은 계책을 찾아낼 시간을 다오.”
 
여포가 화극을 들고 돌아서는데 초선이 또 한마디 꼬집었다.
“첩은 깊은 규방에서 우레와 같이 장군님 성함을 들어왔어요. 당대에 하나밖에 없는 영웅으로 알았는데, 이렇게 남의 손아귀에 잡혀계실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초선은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온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가득 떠오른 여포는 화극을 다시 난간에 기대놓고 돌아서서 초선을 끌어안고 좋은 말로 달랬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차마 떨어지기 아쉬워했다.
이때 궁전 윗자리에 앉아 있던 동탁이 돌아보니 여포가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더럭 의심이 들어 급히 헌제에게 인사하고 승상부로 돌아오니 여포의 말이 대문 앞에 매어져 있었다.
 
“봉선은 후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동탁이 따르는 자들을 물리치고 곧장 후당으로 들어가 찾아보았으나 여포가 보이지 않았다. 초선을 부르니 그녀도 나타나지 않아 급히 첩에게 물었다.
 
“초선은 뒤뜰에서 꽃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뒤뜰로 들어간 동탁은 곧바로 여포와 초선이 봉의정 아래에서 속살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 곁의 난간에는 화극이 기대어 있었다. 바짝 화가 치민 동탁이 꽥 소리를 지르자 여포가 깜짝 놀라 홱 돌아서서 달아났다. 동탁은 화극을 잡아채 꼬나 들고 쫓아갔다.
 
몸이 빠른 여포가 잽싸게 뛰어가니 뚱뚱한 동탁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포를 겨누고 화극을 던지니 여포가 팔로 쳐서 떨어뜨렸다. 동탁이 달려가 화극을 집어 들고 다시 쫓아가려 할 때는 여포는 이미 멀리 도망간 뒤였다.
 


동탁이 씨근덕거리며 대문으로 뛰쳐나가는데 웬 사람이 나는 듯이 달려오다 가슴에 탁 부딪혀 동탁은 그만 땅에 벌렁 나가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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