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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05. 이곳에는 일상이 있고 세상은 여느 때처럼 움직이고.

by BOOKCAST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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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밤부터 문을 여는 바(Bar)를 가와이 쥰이치는 한 곳밖에 알지 못한다도저히 바로 집에 들어갈 기분이 아니어서 집에선 더 멀어지지만 전철을 타고서 강변에 오도카니 자리한 그 가게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카운터석에 앉아 위스키를 주문한다정월 초하룻날부터 밖에서 술을 마시는 인간이 그리 흔할까 싶었는데 예상은 빗나가고 좁은 가게 안은 손님들로 복작였다.
하지만 쥰이치에게는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다적어도 이곳에는 일상이 있고 세상은 여느 때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어쩐 일로 혼자시네요.”
젊은 바텐더의 그 말에,

“응. 뭐.”
라고 대답은 했지만 실은 혼자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혼자로 보이겠지만 츠토무라는 남자와 함께라고.

술잔을 아주 살짝 들어 올렸다. 헌배가 아니라 건배의 의미로.
만약 츠토무 씨가 옆에 있었다면 서로 그리 했을 게 틀림없으니까. 세간에선 그것을 헌배라 부를지도 모르겠지만 쥰이치에게는 결단코 달랐다. 경찰서에서 설명을 듣고 대학 병원에서 시신을 확인(워낙 손상이 심해서 형체뿐이었지만)한 후에도 여전히 시게모리 츠토무를 고인으로 간주하긴 어려웠다.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에는 물론 놀랐지만 한편으론 묘하게 납득이 갔달까, 자신이 알고 지낸 누군가가 만약 엽총으로 자살했다고 한다면 츠토무 씨 말고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팡! 하고 싶네.”
설마 엽총 이야기는 아니었겠지만 그 사람은 예전부터 종종 그리 말했다. 업무에서든 그때그때 여성 관계에서든 ‘팡!’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쥰이치를 비롯한 젊은 직원 들은 엄청 운이 좋기도 했지만(시게모리 츠토무에게 그 어떤 결점이 있든 시원시원했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종국엔 직장을 잃었다. 그런데도 교류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를 모르겠다. 츠토무라는 사람 자체에 어딘가 강하게 끌리는 면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쥰이치는 생각한다.
위스키를 한 잔 더 주문한다.

“빠르시네요.”
바텐더가 말했다. 볕에 그을린 피부에 다부진 몸, 생김새도 정갈한 이 젊은 바텐더의 이름이 마모루였던 것을 쥰이치는 문득 생각해 낸다.
“저기, 마모루, 시게모리 씨라고 기억나? 여기도 몇 번 온 적 있는데. 몸집이 좀 작고 늘 양복 차림에 모자도 꼭 쓰고.”

“아, 기억납니다, 기억납니다. 거침없는 할아버지 말씀이시죠? 그 사람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니, 아무 일 없어.”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하는 바람에 대화의 흐름이 끊겼다. 애매하게 웃으며,
“됐어,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되풀이한다. 자신이 뭘 기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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