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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04. 치사코 씨가 떠나 버렸다. 도우코가 알게 된 것은 그게 다였다.

by BOOKCAST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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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상은 호화로웠다. 떡국과 설음식 외에 고기 요리 두 종류와 샐러드 두 종류가 올라오고, 동글동글한 방울 초밥까지 나왔다(“많이 만들어 놨으니까 괜찮으면 나중에 싸 갖고 가게나.”). 별로 잘하지 못하는 술을 마시면서 나는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누님 또 책 나왔던데.”
장모가 불쑥 말했다.

그렇습니까?”
누나하곤 십 년 넘게 얼굴을 못 봤고 그럭저럭 이름이 알려진 작가인 듯한 누나의 저서도 나는 읽어 본 적이 없다.

신문에 광고가 났더라고. 얼굴 사진까지 넣어서.”

네에.”
나는 짧게 대답했다.

식사를 마치고 장인이 TV를 켜자 갑자기 끔찍한 뉴스 속보가 자막으로 흘러나왔다. 도내 호텔에서 노인 셋이 엽총으로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뭐야. 무서워.”
리호가 말했다. 자막은 짧고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엽총이라니 요란뻑적지근하네.”라는 장인의 감상이 그대로 내 감상이기도 했다. 현장의 모습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이고야, 무서워라.”
장모가 몸서리를 치고, 아마도 모두 같은 심정으로, 요컨대 단순한 호기심에서 TV 화면을 주시했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자막이 나올 뿐, 어느 방송국이고 온통 설 명절 일색의 떠들썩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내보내기에 금세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케이크 내오는 거 어때?”
처남 말에 처남댁이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타이츠에 감싸인 가는 다리).

“그럼 홍차 내릴게.”
리호도 자리를 뜨고, 처남이 장인과 내게 캐시리스(cashless)가 너무 빠르게 진행된 뉴욕에서는 현금을 받지 않는 상점이 늘어나 문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카드 사회라지만 카드를 소유하지 못하는 빈곤층도 많으니까요, 그 나라는.”
어쩌면 조만간 상점 측은 현금을 거부해선 안 된다는 법안이 의회에서 가결될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하고, 그런 것을 굳이 명문화해야만 하다니 놀랍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 같이 홍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다.
그게 다였다. 엽총으로 자살했다는 세 노인 이야기는 더 이상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 그중 한 사람이 나의 할머니라는 사실 따위 나는 알 턱이 없었다.
 
* * *

그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을 때 도우코는 마침 이웃집 하루히짱이 준 커다란 연하장을 바라보고 있던 참이었다. 도화지에 색색 사인펜으로 집과 풀과 꽃과 여자아이를 그려 넣은 연하장이었는데 ‘도우코짱에게~ 올해도 같이 많이 놀아요.’라는 말이 곁들여져 있었다. 게다가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싶었는지 여백에 묘하게 큰 글씨로 굳이 ‘연하장’이라고 써 놓아서 도우코는 조금 웃었다. 1층의 공동 우편함이 아니라 각 호실 문에 달려 있는 우편함(평소에는 전기나 수도 검침표밖에 안 들어오는, 하지만 그 용도로 쓰기엔 너무 크다 보니 무엇 때문에 있는지 이전부터 도우코가 의아하게 여기던 문 안쪽의 돌출부)에 직접 쏙 넣어 놓았다.

그 뉴스의 무엇이 도우코에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자살한 사람들의 이름은 공표되지 않았고, 세 사람 다 80대라는 것만 전해졌을 뿐 그들의 관계도 동기도 불분명했다. 다만 현장에는 유서가 남겨져 있고 자살이란 것만은 확실한 듯했다. 도우코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근거 없는 불안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치사코 씨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가시기는커녕 여전히 근거 없이 의심은 제멋대로 부풀고, 스스로 자신이 좀 이상하다고 여기면서 도우코는 몇 년 넘게 못 만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을 걸었지만 어김없이 부재중 메시지로 넘어가고 그때마다 도우코는 듣는 즉시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밤이 되어서야 전화가 걸려 왔는데 어머니는 줄곧 경찰서와 대학 병원에 가 있어서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부자연스러우리만치 침착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도우코에게 자기 엄마의 죽음을 알리더니, 미안한데, 하고 망설이는 듯이 말했다. 미안한데, 너랑 유우키도 와 봐야 할 것 같다, 라고.
치사코 씨가 떠나 버렸다.
도우코가 알게 된 것은 그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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