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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07. 대체 왜, 엄마의 엄마라는 사람은 하필이면 섣달 그믐날 자살 따위를 했을까.

by BOOKCAST 2022.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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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엔 숍에서 산 보풀 제거기는 성능이 꽤 우수해서 본체가 작은 것을 감안하면 의외일 만큼 큰 모터 소리와 함께 적확하게 보풀을 빨아들인다. 스웨터 두 장과 코트 한 벌의 보풀을 제거한 후, 나는 아내에게 보풀이 생긴 옷가지가 없냐고 물었다. 가능하면 코트처럼 큰 게 좋겠다고 덧붙인 까닭은 단순 작업에 몰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명서에 따르면 털이 짧은 카펫의 보풀도 제거할 수 있는 모양인데 우리 집에 카펫 같은 건(털이 길든 짧든) 한 장도 깔려 있지 않다.
“갔으면 좋았을걸.”

내 질문을 무시하고 아내는 말했다.
“가지 않고서 심란하고, 그래서 보풀 따위 제거하고 있을 바엔 차라리 갔으면 좋았을걸.”
라고. 이번엔 내가 그 말을 무시한다. 남향의 거실은 밝은 데다 기름 난로 덕에 따뜻하다. 어젯밤, 10년 넘게 못 본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자살한 세 노인 중 한 사람이 우리 할머니라고 전해 주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누나가 여덟 살, 내가 다섯 살 때 우리를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의 엄마이며, 나로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후 수습인지 뭔지를 위해 갑자기 불려 갈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할머니잖아? 유언에 당신 이름도 있었다며? 안 가면 안 되지.”
별로 걱정하는 것 같지도 않은 투로 아내는 말을 잇는다.

“어머니랑 누님, 틀림없이 지금쯤 경찰서에서 막막해하고 있을 거라니까?”
소파가 아니라 거실 바닥에 철퍼덕 앉은 채(테이블이 너무 낮아서이지만) 연하장에 대한 답장을 작성하면서.

“저기 말야.”
나는 운을 떼고 아내가 얼굴을 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전에도 이야기한 것을 다시 이야기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나랑 누나가 친할머니와 숙부 밑에서 자랐다는 것, 자식을 두고 집을 나간 엄마를 친할머니가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물론 나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것), 곧바로 아버지는 재혼했지만 누나가 먼저 집을 나가고, 이어서 재혼 상대가(아버지에게 정나미가 떨어져서) 나가고,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또다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요컨대 우리 가족은 그냥 그렇게 와해되었다는 것,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다고 나는 생각한다는 것─. 복잡하게 얽힌 세부 사항은 생략하고 설명한 후,
“그래서 지금은 리호 가족이 내 가족.”
이라고 마무리 지었다.

아내는 거의 희한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보며,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 치곤 당신은 우리 친정 식구들에게 전혀 동화되질 않잖아.”
라고 한다.
“우리 친정을 허울 좋게 써먹지 말아 줘.”
라고도. 맞는 말이었기에 반론의 여지도 없이 나는 물러났다(그렇다기보다 아내가 이내 하던 작업으로 다시 돌아가 연하장 답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내 리호의 바로 이런 솔직함을 나는 좋아하고 이런 여자라서 결혼하기로 마음먹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 노인 사건을 알게 되고 누나한테서 전화까지 와 버린 지금, 아내의 솔직함은 공포였다. 내내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토로하는 정론에 대처할 능력이 나에겐 없다.
대체 왜, 엄마의 엄마라는 사람은 하필이면 섣달 그믐날 자살 따위를 했을까.

 

 

얼른 설 연휴가 끝나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 직장에 돌아갈 수 있고, 내 자신의 일상이 정체 없이 지속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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