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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1>

14. “죽을지언정 여기 오래 머무를 리 있겠소?”

by BOOKCAST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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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가 이모저모 궁리하는데 옛 친구가 찾아왔다고 하여 청해 들이고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공은 어떤 분이시오?”
 
“저는 원소 아래에 있는 남양 사람 진진입니다.”
 
관우는 깜짝 놀라 급히 좌우를 물리쳤다.
“선생께서는 반드시 무언가 큰일을 하러 오셨겠지요?”
 
진진이 편지 한 통을 주어 받아보니 유비의 글이었다.
‘이 유비는 그대와 복숭아 뜰에서 결의할 때부터 함께 살고 함께 죽기를 다짐했는데, 어찌 중도에서 맹세를 저버리고 의리를 끊으시오? 그대가 기어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려 부귀를 꿈꾼다면 내 머리를 바쳐 그 공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겠소. 글로는 말을 다 하지 못하니 오로지 그대의 명을 기다릴 뿐이오.’
 
관우는 편지를 읽고 목 놓아 울었다.
“제가 형님을 찾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디 계신지 몰랐을 뿐입니다. 어찌 부귀를 바라 옛날 맹세를 저버리겠습니까?”
 
“현덕께서는 공이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공이 옛날 맹세를 저버리지 않으셨다니 어서 가 만나보시지요.”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나서 살면서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오. 나는 여기로 올 때 당당하게 왔으니 떠날 때도 당당하지 못해서는 아니 되오. 편지를 쓸 테니 수고스럽겠지만 공이 먼저 형님께 전해드리시오. 조 공에게 작별인사를 한 다음 두 형수님을 모시고 찾아가겠소.”
 
“만약 조 공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죽을지언정 여기 오래 머무를 리 있겠소?”
 
“유 사군께서 기다리시지 않도록 어서 답장을 써주십시오.”
 
진진이 말해 관우는 회답 편지를 썼다.
‘관우가 가만히 듣자니 의리를 지키려면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충성을 다하려면 죽음을 돌보지 않는다[義不負心의불부심 忠不顧死충불고사] 합니다. 관우는 어릴 적부터 책을 읽어 대강 예의를 아는데, 양각애(羊角哀)와 좌백도(左伯桃)의 일을 볼 때마다 세 번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전에 하비를 지키다 성안에는 모아둔 식량이 없고 성밖에는 구원병이 없었으나, 죽으려고 보니 귀하신 두 분 형수님께서 계시어 형님 부탁을 저버릴까 염려해 함부로 머리를 내놓아 몸을 바치지 못하고, 잠시 남에게 몸을 붙여 뒷날 다시 만남을 바랐습니다. 근간에 여남에 가서야 형님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바로 조 공을 만나 작별하고 형수님들을 모시고 돌아가겠습니다. 전날 한에 항복할 때 미리 말했듯이 이미 작은 공을 세워 보답했으니 제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형님 편지를 받아보니 꿈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관우가 만에 하나라도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신과 사람이 함께 죽일 것입니다. 충성을 다하려는 이 마음을 고스란히 털어놓으려 해도 붓끝으로는 다 그려낼 수 없습니다. 만나 뵙고 절을 드릴 날이 오래지 않으니, 그저 엎드려 저를 알아주시기만 빕니다.’
 
【양각애와 좌백도는 전국시대 연(燕)의 사람들인데, 초의 임금이 유능한 사람을 찾는다고 하여 가보려고 떠났다가 눈보라를 만났다. 옷이 얇고 식량이 부족해 그대로 가다가는 둘 다 얼어 죽을 것 같아서 좌백도는 자기 옷과 식량을 전부 양각애에게 주고 속이 빈 나무 둥치 안에 들어갔다.
 
끝내 좌백도는 굶주림에 떨다 얼어 죽고, 양각애는 초에 가서 큰 벼슬을 하게 되었다. 양각애가 좌백도의 주검을 찾아 잘 묻어주었더니 뒷날 좌백도가 양각애의 꿈에 나타나, 자기 무덤 곁에 진시황을 죽이려던 자객 형가(荊柯)의 무덤이 있어서 그의 귀신에게 시달려 고생한다고 호소했다.
 
양각애는 벼슬 따위에 미련을 두지 않고 결연히 자결하여 귀신으로 변해 형가의 귀신을 물리쳤다고 한다. 옛날에 양각애와 좌백도는 의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버리는 친구의 본보기였으니 두 사람의 교제를 ‘양좌교’라 했다.】
 
진진은 글을 받아 돌아갔다. 관우가 안으로 들어가 두 형수에게 사실을 알리고 조조에게 떠나는 인사를 하러 승상부로 찾아가니, 그가 온 뜻을 잘 아는 조조는 만남을 사절한다는 ‘회피패(回避牌)’를 문에 내걸었다.
 
관우는 우울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와 이전부터 따르던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떠날 수 있게 수레와 말을 갖추라고 명했다. 조조가 준 물건은 전부 그대로 두고 조금도 가져가지 말라고 일렀다.
 
이튿날 관우가 다시 조조에게 인사하러 승상부로 갔으나 문 앞에 또 회피패가 걸려 있었다. 연이어 몇 번을 갔으나 조조를 만나지 못하자 장료에게 말하려고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장료도 병을 핑계로 나와 만나주지 않으니 이제 그 속을 알 수 있었다.
‘승상이 나를 보내지 않으려고 이러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었으니 어찌 더 머무를 수 있으랴!’
 
관우는 마음을 정하고 조조에게 편지를 썼다.
‘한수정후 관 아무개는 특별히 목욕하고 두 번 절하며 한의 대승상 휘하에 글을 올립니다. 제가 듣기로는 하늘이 있어 땅이 생기고, 아버지가 계시어 아들이 있으며, 임금이 임하시어 신하가 나타난다 합니다. 하늘의 기(氣)는 양(陽)에 어울리고 땅의 기는 음(陰)에 어울리니 만물이 순조로워야 여러 생명을 키우면서 삼강오상(三綱五常)의 도리가 이루어집니다. 관우는 한나라에 태어나 젊은 시절 황숙을 모시면서 삶과 죽음을 같이 하기로 맹세했으니 황천과 후토께서 분명히 그 말을 들었습니다. 전에 하비가 함락될 때 승상께 세 가지 일을 청하여 은혜롭게 허락을 받은 바 있습니다. 저는 그 때문에 귀순했는데 승상께서 과분하게 승진시켜 주셔서 실로 분에 넘칩니다. 이제 주인 유황숙께서 원소 군중에 계시며 남에게 몸을 붙인 손님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저는 아침저녁으로 불안합니다. 승상님 은혜를 세 번 생각하니 그 깊이가 바다 같고, 옛 주인 의리를 돌이켜 그리니 그 무게가 산 같습니다. 떠나기도 쉽지 않지만 남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에는 앞뒤가 있는 만큼 옛 주인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아직 채 갚지 못한 은혜는 뒷날 죽기로써 보답하겠습니다. 삼가 글을 올려 떠나는 인사를 드리니 살펴보시기 바라며 관 아무개가 올립니다.’
 
【옛날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유학(儒學)의 영향권 안에 살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념은 바로 삼강오상이었다. 삼강은 인간관계의 원칙으로 임금은 신하의 기본이고[君爲臣綱군위신강], 아버지는 아들의 기본이며[父爲子綱부위자강], 남편은 아내의 기본[夫爲婦綱부위부강]이라는 것이다. 신하는 임금에게 복종하고, 아들과 아내도 아버지와 남편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런 논리가 얼마나 철저했던지, 아버지가 도둑질하여 아들이 관가에 고발하면 아버지는 절도죄로 가벼운 형벌을 받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고발한 죄로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판결이 나올 정도였다. 오상은 도덕적인 인간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말한다. 너그럽고, 의로우며, 예절 바르고, 슬기로우며,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명나라 판본에는 전문이 실린 편지나 글들이 청나라 모종강 본에는 많이 삭제되거나 줄어들어 거의 ‘글은 대체로 이러했다’로 변했다. 소설 흐름에 방해되는 글들은 모종강이 잘 잘라 구태여 되살리지 않았으나, 관우의 편지는 고대 중국인의 사고와 예법을 엿볼 수 있어서 고스란히 실었다.】
 
관우는 글을 단단히 봉해 승상부로 보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받은 금과 은은 일일이 봉해 창고에 넣고, 한수정후 도장은 앞채 대청에 높직이 걸었다.


그런 뒤 두 부인을 모셔서 수레에 오르게 하고, 적토마에 뛰어올라 청룡도를 손에 들었다. 전부터 따르던 부하들만 데리고 수레를 호위해 곧장 북문으로 나가는데 문을 지키는 장졸들이 막았다. 그러나 관우가 칼을 비껴들고 눈을 부릅뜨며 한 소리 크게 호통치니 부랴부랴 몸을 피했다.
성문을 나서자 관우는 부하들에게 분부했다.
너희는 수레를 호위해 먼저 가거라. 쫓아오는 자가 있으면 내가 막을 테니 두 부인께서 놀라시게 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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