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보면 더 재미있어】
옛 맹세 지키려는 사나이의 뜨거운 의리
관우가 유비를 찾아 떠나는 대목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조조에게 붙으면 보장된 인생을 누릴 수 있지만,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기어이 옛 맹세를 지키러 떠나는 사나이의 의리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때 유비는 남에게 얹혀사는 신세였으니 관우가 찾아간다 해서 얻을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관우를 지극히 숭배하는 모종강은 이렇게 평했다.
‘사내들 욕심을 살펴보면 재물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다. 재물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작위와 녹봉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 자는 없다. 작위와 녹봉을 무겁게 여기지 않더라도 남이 마음을 터놓고 자신을 낮추면서 존경하는 행위를 무겁게 알지 않는 자는 없다. 조조가 뛰어난 인재를 다루고 빼어난 영웅들을 거느리게 된 것은 모두 이 몇 가지 방법에 의지해서였다. 그래서 여포를 섬기던 장료, 양봉을 모시던 서황, 장수의 모사 가후, 유표의 부하 문빙, 원소의 신하 장합, 마초의 장수 방덕을 비롯한 사람들이 저마다 옛 주인을 버리고 새 주인을 따라, 기꺼이 조조를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유독 관 공에 이르러서는 옛 주인에게 쏠리는 마음이 쇠나 돌처럼 단단했다. 금은과 미녀를 내려도 그 마음을 바꾸지 못하고, 편장군 벼슬과 한수정후 작위로도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며, 주인과 손님으로 나누어 앉아 예절을 차리며 즐겁게 술을 마시는 특별한 예우도 그 마음을 빼앗지 못했다. 간사한 영웅의 재주가 바닥이 난 뒤에야 하늘 아래 땅 위에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없고 농락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 놀라게 되었으니 어찌 감탄하고 우러르지 않으랴?’
한수정후는 관우로서는 처음 받는 작위이니 대단한 영광이었다. 정후(亭侯)는 후한 시대에 황실인 유 씨가 아닌 사람으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 작위인 열후 가운데 식읍이 가장 작은데, 인구 몇백 호 정도인 정(亭)에서 나오는 세금을 받았다.
젊어서 손수레를 끌던 관우가 단번에 최고급 작위를 받아 금 도장에 자줏빛 끈을 달고, 평생 벼슬을 살아도 얻을까 말까 한 작위를 얻었다. 안량을 죽인 공로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조조가 그만큼 관우에게 공을 들인 것이다.

관우의 작위 이름에 오해가 많다. 한수정후의 한수(漢壽)는 지명이고 정후는 작위다. 한수는 후한 때 현 이름으로 지금의 후난성 창더시 부근에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한수정후의 첫 글자가 ‘한나라 한(漢)’자라 관우의 작위가 수정후로 둔갑하기도 했다. 원나라 시대 잡극에서는 관우가 모두 ‘한의 수정후’였는데, 청나라 초기에 나온 모종강 본에서 오랫동안 전해지던 오류를 바로잡고 문제를 명쾌하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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