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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본삼국지 1>

15. “운장이 갔구려!”

by BOOKCAST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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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들은 수레를 호위해 큰길로 나아갔다.
이때 조조는 관우의 일을 의논하며 어찌해야 할지 결정짓지 못하는데 사람들이 관우의 글을 올리니 소스라쳐 놀랐다.
“운장이 갔구려!”
 
북문을 지키는 장수가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관 공이 문을 박차고 나갔는데, 수레에 앉은 사람에 말 탄 사람까지 20여 명이 북쪽을 향해 갔습니다.”
 
또 관우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아뢰었다.
“관 공은 승상께서 내리신 금과 은 따위는 죄다 창고에 봉하고, 미녀 열 명은 따로 안방에 들게 하며, 한수정후 도장은 대청에 높이 걸었습니다. 승상께서 보내신 일꾼들은 다 그대로 두고 원래 따르던 자들만 데리고 몸에 지닐 만한 짐들만 지녀 북문으로 나갔습니다.”
 
모두 놀라는데 한 장수가 선뜻 나섰다.
“제가 철갑기병 3000명을 거느리고 달려가 관 아무개를 사로잡아 승상께 바치겠습니다!”
 
사람들이 보니 장군 채양이었다.
조조 장수들 가운데 장료 다음으로 관우와 교분이 두터운 사람은 서황이었다. 다른 장수들도 대개 관우를 존경하고 탄복했으나 채양만은 대수로이 보지 않아 쫓아가려 하자 조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옛 주인을 잊지 않고, 오고 감을 분명히 하니 진짜 장부일세. 자네들도 그를 본받아야 할 걸세.”
 
채양을 꾸짖어 물리치자 정욱이 나섰다.
“승상께서는 관 아무개를 아주 후하게 대접하셨는데, 그가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면서 허튼소리를 적은 글이나 몇 줄 남겨, 높으신 위엄을 모독하니 죄가 큽니다. 곱게 놓아주어 원소에게 가게 하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니 쫓아가서 죽여 뒤탈을 없애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전에 이미 허락했으니 오늘 놓아주는 것이오. 쫓아가서 죽이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내가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할 것이니 어찌 믿음을 잃겠소? 그는 제 주인을 위하는 일이니 뒤쫓지 마오.”
 
【나관중 본에는 이 말에 이어 배송지가 정사 《삼국지》의 <관우전>에 덧붙인 평가를 인용했다.
‘조 공은 관 공을 잘 알아 마음속으로 그 뜻을 갸륵하게 여기고, 떠나는 사람을 쫓아가지 못하게 하여 그 도리를 이루게 했으니, 왕패(王覇)의 도량이 없었으면 어찌 이 정도에 이르렀으랴? 이야말로 조 씨의 아름다운 소행이다.’
 
그다음 옛사람이 조조를 찬양하는 시 두 수를 적고 작은 글자로 이렇게 평했다.
‘이 시는 조 공 평생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으니 현덕을 죽이지 않고 관 공을 쫓지 않은 점이다. 이로써 조 공에게 너그럽고 인자한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중원의 주인이 될 만하다.’
 
모종강 본에서는 조조가 절대 악인으로 점 찍혀 이런 말이 전부 빠졌고, 그 후에는 관우를 놓아 보낸 행위도 조조의 교활한 수단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조가 장료에게 일렀다.
“운장이 금은을 봉하고 도장을 걸었으니 재물로도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작위와 봉록으로도 그 뜻을 바꿀 수 없네. 나는 이런 사람을 깊이 존경하는 바인데 아직 그가 멀리 가지 못했으니 좀 더 그와 사귀어 인정을 베풀고 싶네. 자네가 먼저 가서 길을 잠시 멈추라고 청하게. 내가 전송하면서 노자도 주고 전포도 선사해 뒷날 기념으로 삼을까 하네.”
 
장료가 명을 받들어 먼저 말에 올라 떠나고, 조조는 말 탄 부하 수십 명을 이끌고 뒤를 따랐다.
관우의 적토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명마라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으나 수레를 호위하느라 말고삐를 늦추어 마음껏 달리지 못했다. 고삐를 잡아당기며 천천히 가는데 뒤에서 누가 소리 높여 불렀다.
“운장은 잠시 멈추시오!”
 
관우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 자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나를 해치지는 않으리라.’
 
돌아보니 장료가 말을 급히 몰아 달려왔다. 관우는 수레를 호위하는 부하들에게 큰길만 따라 계속 가게 하고, 고삐를 잡아당겨 적토마를 세우고 청룡도를 안장에 단단히 눌러놓았다.
“문원은 혹시 나를 다시 돌아가게 하려는 거요?”
 
“아닙니다. 승상께서 형이 먼 길을 떠나는 것을 알고 배웅하시겠답니다.”
 
“승상께서 오시는 데에는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오?”
 
“아닙니다. 승상께서는 ‘그가 옛 주인을 바라고 가니 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형을 보내드려 의리를 지키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전송을 못 하셔서 가벼운 차림으로 오시는데, 특별히 저를 먼저 보내 형의 발길을 멈추게 하실 뿐이니 다른 뜻은 없습니다.”
 
“승상의 철갑기병이 오더라도 나는 죽기로써 싸우겠소.”
 
관우가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바라보니 조조가 수십 명 기병을 거느리고 달려왔다. 뒤에는 허저, 서황, 우금, 이전 같은 무리가 따라왔다.
 
관우가 칼을 가로 들고 다리 위에 말을 세운 것을 보고 조조는 장수들에게 명해 말을 멈추고 좌우로 늘어서게 했다. 관우는 사람들이 병기를 들지 않은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조조가 말을 건넸다.
“운장은 어찌 이처럼 서둘러 떠나시오?”
 
관우는 말 위에서 몸을 약간 굽히며 대답했다.
“관 아무개는 이미 승상께 말씀드린 바가 있고, 옛 주인께서 하북에 계신다니 급히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 번 승상부로 찾아갔으나 뵙지 못해 글을 올려 떠나는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금은을 봉하고 도장을 걸어 돌려드렸으니, 승상께서는 지난날의 약속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천하 사람들의 신의를 얻으려 하는 터에 어찌 이전에 한 말을 어기겠소? 장군이 길에서 노자가 모자랄까 하여 특별히 갖추어 선사하는 것이오.”
 
따르는 장수 하나가 말 위에서 황금 한 쟁반을 들어 건넸으나 관우는 받지 않고 사양했다.
“여러 번 은혜롭게 내려주신 물건이 아직 남았으니 황금은 거두셔서 장졸들에게 상으로 내리십시오.”
 
“특별히 적은 물건으로 크나큰 공로의 만에 하나라도 보답하려는 것인데 사절할 건 뭐요?”
 
“보잘것없는 수고를 새삼 입에 담을 나위나 있겠습니까?”
 
관우가 겸손하게 말하자 조조는 허허 웃었다.
“운장은 천하의 의사(義士)요. 안타깝게도 나에게 덕이 부족해 곁에 두지 못하는구려. 비단 전포 한 벌로 약소하나마 내 성의를 나타낼까 하오.”
 
조조는 장수에게 말에서 내려 두 손으로 비단 전포를 받들어 올리게 했다.
관우는 다른 변이라도 있을까 염려해 말에서 내리지 못하고 청룡도 끝으로 전포를 걸어 올려 몸에 걸쳤다. 그리고 고삐를 잡아당기며 머리를 돌려 감사드렸다.
“승상께서 내리신 전포를 받았으니 뒷날 다시 뵙겠습니다.”
 
관우가 북쪽을 향해 달려가자 허저가 몹시 분개했다.
“저자가 저렇게 무례한데 어찌 잡지 않으십니까?”
 


조조는 관우를 위해 설명했다.
“그는 혼자 말 한 필에 탔을 뿐이고 우리는 수십 명이니 어찌 의심하지 않겠나? 내 말이 입 밖으로 나온 다음이니 쫓아가서는 아니 되네.”
 
조조는 장수들을 데리고 돌아가면서 관우를 생각하며 탄식을 거듭했다.
“우리 여러 장수도 운장을 배워 만세에 썩지 않을 맑은 이름을 이루어야 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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