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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바다 인문학>

09. 방어, 먹성이 좋은 바다 돼지

by BOOKCAST 2022.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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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에서 잡은 방어는 통영의 따뜻한 바다에서 양식해 대방어로 키운 다음 겨울철 전국의 횟집으로 공급된다. 통영 활어시장에서 팔리는 양식 소방어.
 


먹성이
좋은
바다 돼지

모슬포항에서 출항한 방어잡이 배들은 마라도 서남쪽에서 주로 방어를 잡는다. 아침부터 50~60척의 방어잡이 배가 모여들자 해경이 보호하고 나섰다. 우리 국토 끝 섬인 탓이다. 이곳이 제주도에서 소문난 방어 어장인 ‘신알목’이다. ‘새로 찾아낸 마라도 아래쪽 물목’이라는 의미다. 방어는 살아 있는 자리돔을 미끼로 해서 잡는다. 그래서 방어잡이를 하려면 새벽에 나와 들망으로 자리돔을 떠야 한다. 그런데 자리돔은 보통 동이 터야 움직이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잡아 자리밧(자리돔이 많이 서식하는 바다)에서 자리돔을 먼저 잡아야 한다.

큰 모선(母船)에 딸린 작은 배 2척이 그물을 끌고 가서 자리돔이 지날 만한 곳에 그물을 내리고 있다가 떠서 잡는다. 그래서 배 3척이 그물을 떠서 ‘삼척 들망’이라고 한다. 마라도 주변에는 자리덕이 많다. ‘덕’은 깊거나 높은 곳을 뜻하는 제주도 말이다. 그런 곳에 자리돔이 많다.

제주도에는 갯벌 이름이 자리덕, 물내리는덕, 알살레덕, 남덕, 올한덕(올란덕) 등 덕이라는 접미사가 붙은 지명이 많다. 모두 자리돔을 잡는 덕그물을 놓는 곳이다. 지금은 어군탐지기를 이용해 잡지만, 옛날에는 모두 경험에 의지했다. 다행히 겨울철 자리돔은 맛이 없다. 사람의 입맛에 맞는 것이 아니라 방어의 입맛에 딱 맞는 모양이다. 한때 미꾸라지를 미끼로 사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마라도와 가파도 주변은 소문난 자리밧이다.

 

겨울철이면 마라도 옆 바다에는 방어를 잡는 어선들이 줄을 선다. 이들은 자리돔을 미끼로 방어를 잡는다. 외줄낚시로 방어를 잡는 마라도 신알목 방어 어장.
 

식탐이 강한 방어는 살아 있는 멸치나 자리돔을 좋아한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생명력이 강한 자리돔을 낚시에 끼워 유인하는 것이다. 제주도 연안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기름지고 고소하고 베지근한 맛을 방어도 잊지 못할 것이다. 자리돔을 뜨는데 인근에 방어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방어와 자리돔의 먹이사슬을 알아차리고 30여 년 전부터 방어잡이에 자리돔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자리돔도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방어도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자리돔이 움직이는 새벽과 해 질 무렵이 방어잡이가 잘되는 시간이다. 방어는 이때 부지런히 자리돔을 탐하고 몸을 만들어 산란을 준비한다. 자리돔의 배 쪽에 낚시를 매달고 바다에 놓아주면 수직으로 헤엄을 쳐서 방어가 서식하는 수심 600~700미터 아래까지 내려간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마리도 해역에서 자리돔을 잡아먹으며 살을 찌운다. 그러니까 그 깊은 바닷속까지 낚싯줄을 내려 잡는다. 이런 낚시를 ‘채낚기’라고 한다.

큰 방어가 물게 되면 그 힘이 엄청나다. 방어는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리는 녀석들이니, 바로 끌어올리다가는 낚싯줄이 끊어질 수 있다. 늦추고 당기는 힘겨루기를 하면서 올려야 한다. 그물질을 하면 더 많이 잡을 텐데 왜 외줄낚시를 고집할까? 모르는 소리다. 제주 바다는 거칠다. 그 탓에 화산암이 닳고 닳아 칼처럼 솟았다.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1692)이 탔던 배가 좌초된 곳도 이곳이다.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다. 이렇게 잡은 제주 방어를 ‘자리 방어’라고 한다.

강원도에서는 정치망으로 방어를 잡는다. 크레인이 있는 20여 톤의 큰 배로 그물을 끌어올린다. 오징어, 방어, 삼치, 고등어, 다랑어 등이 잡힌다. 그물 크기는 길이만 100미터가 넘고 무게도 10톤에 달한다.소방어나 중방어는 곧바로 횟감으로 사용되거나 통영 축양장(畜養場)으로 보내진다. 이런 방어를 ‘마름’이라고 한다. 방어는 크기도 하지만 먹성이 좋아 ‘바다 돼지’라고 한다.

추자도에서는 긴 줄에 여러 개의 방어 낚시를 매달아 낚시를 한다. 이때 미끼는 끼우지 않고 갈치 모양으로 만든 인공 미끼를 매단다. 나머지 원리는 제주도의 채낚기와 같다. 부산에서는 고등어를 잡을 때 사용하는 선망으로 포획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어류 양식의 출발은 방어 축양에서 시작되었다. 1964년 포항 감포 · 통영 한산도 ·미륵도 삼덕 어장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까지 포항·통영· 여수 일대에서 방어 축양이 시도되었다. 방어 가두리 양식이 본격화된 것은 1975년 일본으로 방어 종묘를 수출하면서다. 당시 일본은 방어 양식이 활발했는데, 종묘가 부족해 통영 욕지· 산양, 거제, 봉암, 한산, 여수와 여천에서 치어를 길렀다. 그리고 1979년 처음으로 수산 통계에 방어 양식량이 18톤으로 기록되었다. 1980년대 우리나라 어류 양식의 중심은 방어였다. 넙치, 우럭, 참돔 등 양식이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제주 바다는 거칠어 화산암이 닳고 닳아 칼처럼 솟았다. 그래서 낚시로 방어를 잡는다. 1653년 8월 16일 하멜과 일행 64명이 탄 스페르웨르Sperwer호의 모습을 묘사한 목판화다. 이들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했다.
 

일본에서는 방어를 부리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방어를 많이 잡아갔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경남 울산의 방어동이다. 조선시대에 적을 막기 위한 ‘관방(關防: 국경의 방비)의 요해처(要害處)’로 방어진(防禦陣)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또한 울산에서 일본인이 가장 많이 거주했던 지역이다. 당시 방어뿐만 아니라 멸치, 대구, 청어, 상어도 많이 잡히자 일제는 방어진에 어업 전진기지를 조성했다. 그 뒤로 ‘방어’의 음만 남아 ‘방어가 많이 잡히는 곳(方魚洞)’으로 지명이 둔갑했다. 울산만에 있는 항구도 방어진(方魚津)이다.

그런데 최근 수온 상승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동해안에서 잡은 소방어 혹은 중방어를 통영의 따뜻한 바다에서 양식해 대방어로 키운 다음 겨울철 전국의 횟집으로 공급하고 있다. 또 겨울철 수온이 따뜻해지면서 방어는 제주도까지 내려가지 않고 동해 남쪽 바다나 남해 동쪽 바다에서 잡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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