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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바다 인문학>

03. 일본의 고등어 공급 기지로 전락한 어장

by BOOKCAST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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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등어 공급 기지로
전락한 어장

쓰시마섬을 근거지로 고등어잡이를 하던 일본 어민들은 봄부터 여름 사이에 부산이나 거제도 바다에서 밤에 불을 밝히고 고등어를 잡았다. 이들 중에는 부산이나 마산 객주에게 고등어를 팔기도 했다. 마침내 일본이 부산에 ‘부산수산주식회사’를 설립해 이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직접 고등어 염장을 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남 거제도 장승포, 울산 방어진, 경주 감포, 포항 구룡포, 전남 여수 거문도 등 조선의 연안에 일본인 어촌을 건설해 고등어를 잡아갔다. 이들 지역에 등대가 세워진 것도 이 무렵이다. 통영의 욕지도, 여수의 안도, 고흥의 나로도 등에도 건착망(巾着網: 자루그물 없는 긴 그물로 어군을 포위해 발아래 조임줄을 조여서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잡는 어법)과 기선으로 무장한 일본 어민들이 들어와 정착을 했다.

특히 울산 방어진에는 고등어잡이 배의 건조와 철공소, 어구점(漁具店), 저장과 가공을 위한 제빙소(製氷所), 염장고(鹽藏庫) 등이 들어섰다. 그리고 목욕탕, 극장, 신사, 유곽 등 일상생활과 유흥을 위한 시설도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인들은 대부분 고등어잡이 어민이었다. 이들은 손낚시로 고등어를 잡는 조선인과 달리 건착망과 기선 등 선진기술로 무장해 대량으로 포획한 고등어를 일본으로 운반했다. 이렇게 조선의 어장은 일본의 고등어 공급 기지로 전락했다. 심지어 일본은 고등어를 중국과 미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일본 어부들은 조선의 연안에 일본인 어촌을 건설하고, 선진기술로 무장해 대량으로 고등어를 포획했다. 1962년 전갱이, 고등어, 오징어를 표식標識 방류한다는 포스터.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고등어는 1년만 지나도 30센티미터에 이를 만큼 빨리 자란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는 어획량이 6~9만 톤, 1930년대 초반에는 25만톤, 그 후 10만 톤 이하로 잡히다가 해방 후 1950년대에 2만 6,000톤,1960년대에 1만 톤 미만으로 감소했다. 1970년대에는 최고 12만 톤까지 어획량이 증가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10여 만 톤이 어획되었으며, 1990년대 중반에는 20여 만 톤에서 40여 만 톤까지 증가했다. 그 후 계속 감소해 10만 톤 수준을 유지했으며, 2012년에 12만 5,000톤, 최근에는 10만 2,000여 톤이 잡혔다.

고등어의 주요 어장은 제주도와 거문도와 소흑산도 일대였다. 어로장비의 현대화와 적극적인 어장 개척으로 쓰시마섬 주변, 동해안, 동중국해까지 어장이 확대되었다. 과거에는 연안 유자망(流刺網: 그물을 닻으로 고정하지 않고 수면에 수직으로 펼친 후 조류를 따라 이동하면서 물고기를 그물코에 걸리게 해서 잡는 어법) ·소형 정치망·근해 안강망(鮟鱇網: 조류가 빠른 해역에서 자루그물을 닻으로 고정시켜놓고 조류의 흐름을 따라 밀려들어 온 물고기를 잡는 어법) · 기선 저인망 등으로 잡았지만, 최근에는 쓰시마섬 인근 해역에서 대형 선망(旋網)으로 잡는 양이 어획량의 90퍼센트에 이른다. 1999년 1월 체결된 신한일어업협정(新韓日漁業協定)으로 한일 공동어업 구역에서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바다의
금맥


고등어의 90퍼센트 이상이 부산공동어시장을 통해서 전국으로 유통된다(부산시는 고등어를 2011년 시어市魚로 지정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고등어는 선망선단어업으로 잡은 고등어들이다. 고등어잡이 선단(船團)은 선장과 어로장(漁撈長)이 타는 본선(本船), 불을 밝혀 집어(集魚)를 맡는 등선(燈船) 2척, 운반선 2척으로 이루어지며 선단에 따라 활어배를 갖추기도 한다.

본선에는 그물이 실리며 20여 명의 선원이 타고, 등선에는 공중등과 수중 집어등을 갖춘 배에 각각 8명씩 승선한다. 5개의 어창(魚艙)으로 나누어진 운반선은 30톤의 얼음이 실려 있으며 각각 10명씩 승선한다. 이렇게 고등어잡이 선단은 5척에 약 70명이 함께 조업을 한다. 한 번 조업을 나가면 25일 정도 바다에 있다가 5일 정도 귀향해 머무르다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들은 뭍에 있는 시간보다 바다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고등어는 한 번 조업에 수십 톤을 잡기도 해서 고등어 어장을 발견하는 것이 금광에서 금맥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대형 선망으로 잡아온 고등어를 부산공동어시장에서 하역하고 있다.
 

조업 과정을 보면 어로장이 어군탐지기에서 고등어 떼를 발견하면 집어등을 켜고 수중 집어등을 바다에 집어넣는다. 고등어 떼가 보이면 등선 2척이 가운데로 모여서 고등어를 한곳으로 모으고 등선 1척은 불을 끄고 빠져나간다. 수중 집어등을 빼내고 본선과 빠져나간 등선이 그물을 줄로 연결하고 그물을 내려 고등어 떼를 에워싼다. 그물은 깊이 100미터, 지름 500미터에 이른다. 그리고 바닷속에 있는 밑그물을 조여서 고등어를 가두고 서서히 끌어올린다. 그사이 운반선은 본선 옆으로 다가와 대형 뜰그물로 고등어를 퍼 올려 어창에 얼음과 함께 집어넣는다. 이렇게 잡은 고등어가 15~16시간을 달려 부산공동어시장으로 운반된다. 이곳에서는 고등어를 크기별로 선별해 상자에 담아 전국으로 보내진다.

고등어잡이 선단이 조업을 하는 주요 어장은 흑산도, 제주도와 거문도 사이, 마라도와 차귀도 사이에 가을철에 형성된다. 『자산어보』에도 “추자도(楸子島)의 여러 섬에서는 5월에 비로소 낚시로 잡고 7월에 자취가 끊겼다가 8~9월에 다시 나온다. 흑산 바다에서는 6월에 비로소 낚시로 잡고 9월에 자취가 끊긴다”고 했다. 이 시기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어군(魚群)이 형성되는 곳은 대체로 일치한다. 한 번 조업에 수십 톤의 고등어를 잡기도 하며, 금액으로는 7,000~8,000만 원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선주들은 고등어 어장을 발견하는 것이 금광에서 금맥(金脈)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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