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는 내 글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은 이대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공상과 창조의 문은 닫힌 것처럼 보인다.
나는 가끔 몇 페이지씩 썼다. 오늘 아침은 심각하고, 진지하고, 단호하고, 금욕적인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오전 내내 아빠의 책에 대한 작업을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에 센강을 따라 걸었다. 강 가까이 있으니 아주 행복했다. 심부름, 카페, 화려함, 생의 이 모든 움직임과 콧노래와 색채에 흠뻑 취해 걸었다. 이런 것들은 크나큰 갈망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어떤 해답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열병이자 마약 같다. 샹젤리제 대로가 날 흔들어 놓는다. 기다리는 남자들, 바라보는 남자들. 따라오는 남자들. 하지만 나는 금욕적이고, 슬프고, 내성적이며, 걸으면서 책을 쓴다.
- 아나이스 닌, 1935년 10월 30일 일기
일기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인 아나이스 닌은 인생의 대부분을 그녀가 살았던 도시의 거리를 걷고, 그렇게 걸으면서 글을 썼다. 1903년 프랑스에서 스페인과 쿠바와 덴마크 혈통이 섞인 음악가 부부에게서 태어난 그녀는 음악가인 아버지의 성공을 위해 어렸을 때부터 하바나와 많은 유럽의 도시를 옮겨 다녔다. 그렇지만 성년을 맞은 곳은 뉴욕이었다. 그녀가 열한 살 때 아버지가 가정을 버렸고 엄마와 형제자매와 함께 뉴욕에 왔다. 여기서 아나이스는 그녀가 작가로서 가장 편하게 느낀 언어인 영어를 배웠고, 여기서 처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뉴욕 거리에 있는 많은 것이 소녀 아나이스 닌의 상상력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사춘기 소녀 시절에도 그녀는 예리한 관찰력이 있었고, 그것을 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열여섯 살 때 학교 친구인 프랑세즈와 같이 걸으며 아나이스는 이런 글을 썼다.
먼저 우리는 112번가에서 77번가로 걸었고 … 우리는 빨리 걸었는데 그 시간에 브로드웨이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6시쯤 극장에서 나와서 다시 브로드웨이를 걸었고 … 이번에 그곳은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묘사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저기 거칠게 밀치고 다니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뉴욕 거리는 사람에게, 도시 생활이 제공하는 삶의 일면에 가장 관심이 큰 작가 지망생에게 이상적인 훈련소였다. 거리를 걸으면서 아나이스는 매일매일 사람들의 풍부함, 다양함, 기괴함과 접했다. 그녀에겐 그런 면을 알아보는 눈썰미가 일찍부터 있었다. 1919년 3월 30일 일기에서 유행하는 옷을 차려입고 산책하는 여성들을 묘사하려고 해봤지만, 그녀가 처음에 의지한 수단은 글이 아니라 그림이었다. 일기장에는 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하면서 부분적으로 인간의 몸을 재현한 형상 위에 날카롭게 관찰한 여자들의 옷을 그린 스케치 몇 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림으로는 자신이 본 것의 정수를 표현하고 전달하기에 부족하다고 느낀 그녀는 글로 쓴 묘사를 덧붙였다. 거기서 그녀는 어린 나이에 썼다고 보기에는 아주 세속적인 냉소주의를 선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다 아는 것 같은 유머 감각을 보였다.
우리는 그 숙녀들이 아주 작은 보폭으로 걷는 모습을 봤다. 그들은 모두 색칠한 인형처럼 보였다. 여자들은 몇 명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지독하게 인공적으로 보였다. 더 사치스럽게 차려입을수록, 이성으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남자들은 걸어가다가도 그녀들을 보고 멈춰 서서 감탄하며 바라봤다. 남자들 몇몇은 거리 모퉁이를 느긋하게 걸어 다니다가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그러다 ‘숙녀’가 걸어오면, 그녀를 따라갔다. 그것은 아주 우스꽝스러우면서 동시에 바보 같아 보였다.
글 전체가 다양한 종류의 걷기와 다양한 종류의 보기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한 아나이스의 예리한 관찰에 의지하고 있다. 오직 언어만이 이 두 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다. 닌의 스케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깊어지는 과정을 기록할 수 없다. 유행을 따라 옷을 차려입은 ‘숙녀들’은 가식적이고 비효과적인 걷기를 (그렇게 ‘아주 작은 보폭’으로는 멀리 갈 수 없다) 통해 그들의 여성성과 성적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남자들은 거리 모퉁이에서 어슬렁거리고 지나쳐 가는 여자들을 따라다니는 것으로 그들의 남성성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이면에 아나이스의 걷기와 관찰이 있다. 걸음으로써 그녀는 이 남자들과 여자들을 지켜볼 수 있지만, 언뜻 보기에도 그녀는 남들과 다른 산책자다. 관찰자는 그 현장을 걸으면서도 남자들의 포식자 같은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는 닌의 걷기와 글쓰기 스타일의 특징이다. 그녀는 어떤 면에서도 거의 위험을 겪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작품은 초연한 관찰자의 시각을 유지하고, 닌은 자신만만하고 객관적인 목격자로서 미국과 유럽의 혼잡한 거리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하고 난잡한 인생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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