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타비스톡 광장을 걷다가 가끔 글을 쓸 때 그런 것처럼 《등대로》를 마음속에서 썼다. 그 이야기는 무의식 속에서 급류처럼 세차고 격렬하게 쏟아져 나왔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터져 나오면서 곧바로 다른 아이디어를 낳았다. 마치 관으로 비누 거품을 부는 것처럼 수많은 아이디어와 장면이 내 마음속에서 쏜살같이 흘러나왔다. 걸어가는 동안 내 입술이 저절로 말을 뱉어내는 것 같았다. 대체 무엇이 그런 비눗방울을 불었을까? 하필 왜 그때였을까? 나도 정말 모르겠다.
- 버지니아 울프, 《존재의 순간들》
나무가 줄줄이 늘어선 블룸즈베리 광장을 거니는 버지니아 울프는 그 순간 아주 거대한 창조력을 전달하는 수동적인 도구가 된다. 그 창조력은 그녀의 발자국이 빚어내는 리듬 속에 살고 있고, 《등대로》는 일종의 ‘자동 기술’을 통해 세상에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단어를 추동하는 힘은 외부에 있는 영혼이 아니라 부드럽게 흔들리며 걸어가는 작가의 몸에서 나온다. 몸이 그 아이디어에 형태를 부여하고, 각각의 차원에 맞게 배치했다. 울프의 발자국이 그녀의 입술에서 그녀가 쓴 소설의 단어를 끌어냈다.
걷기는 울프가 쓴 모든 글과 그녀의 경험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삶의 다양한 시점에서 걷기는 그녀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우정을 쌓게 해주고, 추억을 주고, 뮤즈가 됐으며, 크게 호평을 받은 소설 여러 권을 쓴 비결이 되기도 했다. 걷기는 습관적인 행동이자 주목할 만한 행동이었으며, 저항이자 항복의 행위이기도 했다. 울프는 탁 트인 곳에서 하는 산책이나 호젓한 곳에서 하는 산책과 도시의 인도에서 하는 산책을 차별하지 않은 채 그저 그녀의 작품에서 모든 종류의 걷기가 하는 역할을 탐구했다.
걷기는 유년기 시절부터 울프의 취미였고, 특히 그녀의 가족이 집을 한 채 세내서 몇 년 동안 살았던 세인트 아이브스에서 보낸 휴가 때 그런 점이 더 두드러졌다. 서식스에서 살고 있을 때 울프는 도로시 워즈워스도 인정했을 만한 산책자로 살았다. 도로시가 그랬던 것처럼 울프는 산책 나갈 때마다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울프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사우스이즈에 우편물을 보내러 왔다. … 구릉 지대를 넘어 집으로 왔다. 버섯을 많이 땄는데 땅속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있었다.” 의무적인 집안일과 습관과 욕망이 섞인 이런 종류의 걷기가 몇 주 동안 일상의 중심이 됐다.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면서 집 근처에서 하는 버섯 따기는 블랙베리 따기로 바뀌었다. 그동안 날씨는 계속 안 좋아졌지만 울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가끔은 혼자 걸었고, 가끔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다녀서 익숙해진 길을 걸었다. 다른 때는 새로운 길을 시도해 보고, 그 평가는 나중에 일기에 적었다. 가끔은 못 갈 경우도 생기지만, 울프는 어디서든 매일의 산책을 토대로 일상을 구축할 수 있었다. 울프는 걸으면서 우정과 행복과 영감을 발견했다.
글의 속도와 리듬을 잡는 것은 모든 소설에 중요하지만, 특히 울프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그녀가 쓴 소설의 플롯은 종종 그녀의 보행 리듬에 맞춰졌다. 플롯 역시 종종 걷다가 떠올랐는데, 예를 들어 댈러웨이 부인의 내면의 삶은 울프가 런던 거리를 거닐면서 펼쳐진다. 울프 자신도 등장인물과 상황을 찾아 산책을 나섰고, 놀라운 사람들을 사냥하러, “그 야수들, 우리와 같은 인간들”인 먹이를 찾아 시속 3마일의 속도로 걷곤 했다. 새로운 이야기와 사건, 글에 쓸 구절과 아이디어를 찾아다니는 습관이 울프의 산책에 아주 깊숙이 배어들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기록할 매체가 편지나 일기에 그쳤다 해도, 울프의 걷기는 여전히 환상적인 장면과 희미하게 빛나는 이미지를 자아냈다.
그것은 아주 일찍부터 울프에게 생긴 습관이자, 그녀가 살아가는 내내 글쓰기와 걷기를 접하는 태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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