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애 최초로 자유롭게 마음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기 사는 것이 좋습니다. 다년간 무기력하게 질병에 시달린 후 이제 내 인생은 (이 계절에) 거칠 것 없이 방랑하는 인생이 됐죠. 나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경계 지방에 사는 사람처럼 말을 타고 도붓장수처럼 걷고 등산가처럼 산을 오르고 가끔은 친절하고 유쾌한 이웃들과 짧은 소풍을 가고 가끔은 하루 내내 산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 해리엇 마티노가 랄프 왈도 에머슨에게, 1845년 7월 2일
해리엇 마티노는 노퍽에서 유니테리언 교파 목사와 그의 아내가 낳은 여덟 자식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15년에 걸친 문학적, 지적경력을 통해 마티노는 사회학자, 노예 폐지론자, 소설가, 여성과 빈민을 위한 활동가로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또한 전문 기자이자 여행 작가로 미국과 이집트와 중동에 다녀와서 쓴 여행기가 선풍적인인기를 끌었다. 그녀는 영국에서 법률 개혁과 사회 정책에 관한 상담을 해주는 컨설턴트로도 활동했다. 그녀의 지적 관심사가 미치는 범위는 무시무시하게 넓었고, 그녀가 그런 분야를 정력적으로 공략하는 모습만 봐도 지칠 정도였다. 말년에 쓴 정치경제학에서 사회학 방법론과 레이크 지역의 도보 여행 안내서까지 포함해서 총 35권의 책을 썼다. 1845년 여름 가까운 친구인 미국의 수필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에게 편지를 썼을 때 그녀는 40대 초반이었지만, 그 전해 가을까지 그녀는 뉴캐슬 근처 해안가에 있는 마을인 타인머스의 집 침대에 5년 동안 몸져누워 있었다. 온갖 치료를 받아도 허사로 돌아간 위험하고 끈질긴 병에 시달려서였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 글을 썼고, 바닷가가 보이는 침실에 준비된 망원경 덕분에 바깥세상과 어느 정도 연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온몸에 내리쬐는 햇빛을 받고 싶었고 다시 한 번 살아 있는 초록색 나무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둘 다 침대에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병에 걸렸을 때 해리엇은 자신의 상태에 체념하고 그런 상황에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시기에 놀랄 정도로 유쾌한 편지들을 친구들에게 보낸 심리 이면에는 그녀를 걱정하는 그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멘토인 윌리엄 존슨 폭스(William Johnson Fox)에게 그녀는 이런 편지를 썼다.
내부 질환이 오랫동안 말썽을 부렸지만 작년 여름 베니스에서 지낼 때까지는 저도 제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 병은 아무래도 오래갈 것 같고 (아마 1년이나 2년 정도) 아주 심각합니다. 전 회복할 가능성이 크고, 그러면 완치될 것 같지만,미래를 자신하기엔 아직 위험 요인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는 여동생 집에서 조용한 생활을 실컷 즐기고 있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일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할 수 있을 때 글도 조금 쓰고 있답니다.
이 ‘내부 질환’에 대해 다양한 진단이 내려졌지만, 지금까지도 문학적 명성과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그녀를 앓아 눕게 만든 병의 정체가 뭐였는지 확실히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그 병의 정체를 몰라 당혹스러워했던 의사들은 해리엇의 고통을 아편으로 치료하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편에 의지한 채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몇 년 동안 소파와 침대를 오가며 살아야했다. 1844년 6월 해리엇은 새로운 기법인 최면술을 시험해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석과 화려한 손동작과 어마어마한 쇼맨십을 발휘해 피험자를 무아지경에 빠뜨리는 기법인데 1830년대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최면술의 대중적인 평판을 보고 의학계와 과학계는 주춤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1840년대에 되살아났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사회 각계각층에서 인기를 끌었다. 의학이 계속 발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과 기법이 용인됐는데 그중 최면술도 있었다. 최면술의 과학적 위상이 낮은 것과 상관없이 해리엇은 그 효과를 즉각적으로 경험했다. 거의 5년 동안 작은 방이란 좁은 세계에 갇혀 지내던 그녀가 첫 최면 치료를 받고 석 달 만에 자신의 상태를 발표했다.
“이제 나는 그저 몸이 약할 뿐이지 전혀 아프지 않다. 난 모든 약을 끊었고, 모든 고통과 통증이 사라졌다. 상태가 좋은 날에는 1마일씩 걷고 아주 젊고 기운찬 사람처럼 곶에서 햇볕을 기분 좋게 쬐고 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완치될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해리엇의 건강이 저절로 회복됐거나(그녀 스스로도 처음 병에 걸렸을 때는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녀가 강력한 위약 효과를 경험했을 거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긴 하지만, 해리엇에게 기적으로 보이는 회복은 전적으로 최면술의 힘 덕분이었다. 그녀는 그 효과를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그녀 자신이 최면술사이자 열렬한 옹호자가 되는 바람에 죽기 전까지 식구들과 불화를 겪었다. 원인이 무엇이건 이 회복은 삶을 바꿔놓는 경험이 돼 해리엇의 삶은 침대에 매여 살던 병자에서 10년 넘게 계속될 ‘육체적 활력과 건강한 영혼’의 시기로 변했다. 최초의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해리엇은 환경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그녀는 뉴캐슬에서 레이크 지역으로 이사해 언덕 사이에 집을 지었다.
'인문 > <자기만의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07. 낸 셰퍼드 (2) | 2022.04.27 |
---|---|
06. 버니지아 울프 (3) | 2022.04.26 |
04. 사라 스토다트 해즐릿 (2) | 2022.04.22 |
03. 엘렌 위튼 (2) | 2022.04.21 |
02. 도로시 워즈워스 (1) | 2022.04.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