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가이드와 함께 내려오는 신사 한 명을 봤다. 그들도 나를 봤다. 나는 사람들이 평소 다니는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내 갈망을 채우기 해서 그랬던 것인데, 이제는 거기서 더 멀어지게 됐다. 그들이 혹시라도 나를 다른 곳에서 볼 때 아까 본 사람이란 걸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내 옷이나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다. 길을 가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킬까 두렵다. “저 여자가 바로 스노든산을 내려올 때 봤던 그 사람이야. 여자 혼자서 내려오더라고!”
- 엘렌 위튼, 가정교사 잡지
1825년 6월 중순의 어느 화창한 날 랭커셔에 사는 48세의 가정교사 엘렌 위튼은 웨일스 지방을 여행하다가 혼자서 스노든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감에 차 있고 강인했으며, 레이크 지역에 있는 높은 산도 올라본 노련한 등산가였다. 그러나 높이 3,560피트에 달하는 스노든산처럼 높은 산은 처음이었다. 1777년 (정확한 날짜는 알려지지 않음) 위건 근처에 있는 업홀랜드에서 태어난 위튼은 크면서 웨일스의 산을 보고 자랐을 것이다. 업홀랜드는 머시 계곡 위 고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고, 남쪽으로는 스노도니아 산지가 보였다. 물론 위튼이 최초로 등산을 한 여성은 아니다. 1818년 스카펠파이크산을 오른 도로시 워즈워스는 그 무렵 비슷한 설렘과 흥분을 찾아 산에 오른 여러 여성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위튼 같은 신분의 사람이 산에 오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재미로 걷는 건 여전히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
또 여성이 혼자 산을 오르는 걸 ‘목격당하는’ 일도 흔치 않았다. 사람들이 짐작하는 전형적인 이유인 성폭행을 당하거나 강도를 만날까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은 등반할 때 종종 가이드의 도움을 받았다. 스노든산을 오르는 위튼이 독특한 이유는 그녀가 용감하기 때문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남성들에게 ‘목격을 당한’ 위튼은 그들을 피하려고 했다. 사람들에게 괴짜라고 불리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혼자 알아서 내려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가이드는 내가 길에서 벗어난 걸 보고 (마침 그 길에 그가 있어서 그랬다) 나를 큰 소리로 불렀지만, 나는 못 들은 척했다. 그는 계속 소리를 질러서 어쩔 수 없이 그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는 내게 구리 길로 계속 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 길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집에서 지도와 안내서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나왔으니까. 그 신사가 한 말로 봐서 내가 그 가이드의 집에 찾아가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려 했지만, 가이드가 이미 산에 오른 걸 보고 그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신사는 가이드에게 자길 놔두고 내게 가라고 간청했으니까. … 나는 단호하게 그들을 외면한 채 최대한 빨리 걸었고 … 그 가이드는 다시 내게 소리를 질러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물론 선의에서 그랬으리라고 믿는다.
가이드의 선을 넘은 참견도 위튼의 결의는 이기지 못해서 결국 그녀는 혼자 산을 내려왔다. 그녀는 가이드가 산을 내려오면서 이런 심정이었을 거라고 상상했다. ‘이거 고민되는데 … 누구든 내 도움 없이 산을 오른 경우는 본 적이 없는데, 그것도 여자 혼자서 가다니!’ 그녀의 상상에서 가이드가 한 생각은 직업적인 자부심이 달린 문제였고, 그녀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그저 부차적일 뿐이었다.
끈질기게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위튼은 계획했던 등산을 계속했다. 그녀는 베트위스(Bettws) 쪽에서 정상을 넘어 린베리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그 길은 위튼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매우 힘들고 험난했지만 그녀는 그 풍경을 모든 각도에서 보고 싶어 했다.
산을 오르면서 그녀는 모든 것에서 뚝 떨어져 있는, 아주 장엄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마치 뾰족한 산봉우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까마귀처럼 산마루에 걸터앉아 있다. 어딜 봐도 사람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이 산을 독차지하고 있나 보다.”이는 기묘한 서술이다. 산에 혼자 있다고 기뻐하는 감정에 좀 더 근본적인 뭔가가 자리 잡고 있다. 까마귀들은 영국의 산에서 종종 발견된다. 그들은 소용돌이치는 바람 속에서 유유히 날아다니거나, 조용하고 느긋하게 산꼭대기를 맴돈다. 산마루에 혼자 있는 이 순간 위튼은 인간이 아니라 이 야생의 동물들과 동류의식을 느끼고 있다. 잠깐 산을 올랐을 뿐 여기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이 생태계의 일원도 아닌 인간이 까마귀와 공감한다.
위튼의 산문에서는 초조해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자신이 까마귀와 같은 종족이 됐다고 상상하는 그녀는 언제 어느 때 그 정상에서 뛰어내려 하늘로 솟아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 산에서 위튼의 인간성은 사라져서 이제 인간이라기보다는 새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튼은 상상 속 세계에서나 실제의 세계에서나 날아갈 수 없고, 대신 초조한 마음으로 묶여 있는 지상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스노든산의 산마루에 앉아 사방에 노출돼 있자 그녀는 현기증을 느끼고 이어서 공황이 엄습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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