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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4

08. 인간은 기대를 먹고사는 존재다. 꼬르륵.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물속에 몸을 던지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밖에서 사람들이 물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을 보았을 때 들었던 소리는 ‘풍덩’이었는데, 정작 물속에 들어간 사람이 듣는 소리는 자신의 숨소리뿐이다. 발을 떼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들어갔는데 이퀄라이징이 안 되면 어쩌지? 내가 패닉에 빠지지는 않을까? 물속에 뭐가 있을 줄 알고? 그러나 막상 물 안에 몸을 던지자 저 육지 세상보다 더 큰 평온이 찾아왔다.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고요했다.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 아이들이 바깥 소리를 이렇게 듣는다는 이야 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주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처럼 말이다. 물속에 들어가자 새 소리도, 파도 소리도, 사람들의 환호 소리도 아득했다. 그래. 내겐 이.. 2022. 9. 6.
03. ‘와인처럼 근사한’ 대학을 마치며 1976년, 경영대학 2학년 과정을 마치고 나니 교수님들은 내게 경영대학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실제로 나는 회계학 과목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나는 학교생활이 너무 피곤해서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과목들만 골라 들으려고 노력했다. 전공은 경제학이었고 회계학 때문에 골치 아프기는 했지만 다른 과목은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나는 우수한 경영대 학생이었고, 경제학은 예술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결코 정답이 있을 수 없는 과목이지만 나는 괜찮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경제학은 상대적으로 내 방식을 고집하기 쉬웠다. 나는 가장 쉬운 것이 가장 큰 성취감을 주기 때문에, 인생에서 누구나 쉬운 과정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캘.. 2022. 6. 17.
00. <육백 리 퇴계길을 걷다> 연재 예고 지리학자, 미술사학자와 함께 퇴계 선생의 귀향길을 따라, 경복궁 광화문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걷는 역사의 길, 휴식의 길 자동차 여행으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감동의 시간 1569년 3월 4일(음력), 퇴계 이황이 선조에게 사직 상소를 올리고 귀향길에 오른 날이다. 도산서원에서는 퇴계 선생의 귀향 450주년이 되던 2019년부터 ‘퇴계 선생 귀향길 재현 걷기’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당시 귀향길을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지리학자이자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인 이기봉 박사가 이 길을 처음으로 완주하였다. 이후 이 길을 홀로 걷기도 하고, 때론 함께 걸으며 다섯 번이나 다녀왔으며, 일부 구간은 수없이 걸었다. 누군가는 지겹지 않냐고 왜 그 길만 걷느냐고 묻지만, 이기봉 박사는 일상에 지친 이에게 위로와 .. 2022. 5. 26.
09. 셰릴 스트레이드 10년 전 내 모습을 상상했을 때, 나는 이때쯤이면 첫 책을 출간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단편을 몇 개 썼을 것이고, 소설을 본격적으로 시도해 봤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 내 처지에 책은 꿈도 꿀 수 없다. 혼란스러웠던 지난해 글쓰기는 나를 영원히 떠나버린 것처럼 느껴졌지만, 도보 여행을 하면서 그 소설이 다시 내게 돌아오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내 머릿속을 떠도는 노래의 파편과 광고 CM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날 아침 올드 스테이션에서 … 나는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다. -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Wild)》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힘든 하이킹 코스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까지 2,650마일에 달하며, 미국의 서해안과 지극히 건조한 내륙 지.. 2022.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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