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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엽기적인 그녀>

04. 인연·두 번째

by BOOKCAST 2022.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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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삶이란 되풀이되는 만남 속에서
서로를 배우는 것이 아닐까?

 


 

 

 

그녀를 보내고 저는 집에 가기 위해 서울행 지하철을 탔습니다. 어제 오늘, 단 몇 십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마치 오래전 꿈속에서 있었던 일인냥 느껴집니다.

홀가분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어제 술에 취한 그녀와 함께 타던 지하철. 물론 어제 그 지하철은 아니겠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지하철 안의 풍경은 별반 다를 것도 없습니다.

제 눈에는 지금 지하철 의자 가장자리에 있는 쇠기둥이 보입니다.

씨익~!

언제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보아왔던 것이고, 아무런 느낌도 없이 피곤할 땐 몸을 기대던 것인데 앞으로는 이 쇠기둥을 볼 때 마다 웃음을 지을 거 같습니다.

쇠기둥에 가까이 갔습니다. 그 곳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멍하니 초점 없는 눈빛으로 저도 모르는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그녀처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여. 몸을 홱~! 하니 돌려서 배를 기댔습니다.

까딱~! 까딱~!

‘어라~, 이거 재밌네!

어제 대머리 아저씨가 앉아있던 위치에는 파마한 아주머니가 앉아 계십니다. 그렇게 몇 번 까딱~! 까딱~!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먼 가 이상하셨던지 갑자기 고개를 홱~하고 들며 위를 쳐다보더군여.

아줌마랑 키스할 뻔 했습니다.

“학생, 지금 뭐하는거야?

“아네요. 아주머니. 하하핫!

제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저를 주목하고 있더군여. 으흠 ….

괜히 죄 없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옆 칸으로 껄렁껄렁~ 걸어갔습니다. 제 뇌리에 그녀의 목소리가 스칩니다.

“저녁 때 연락할게. 잘 가라.

‘설마, 정말 연락을 할까?

‘미안하니까 괜히 해본 말이겠지.

‘그래도 ….

…………

………

……



“엄마 다녀왔습니다아~~!”

“그래, 인사 잘 드렸어? 용돈 좀 주시던?”

“이거 내 돈이야.”

“지금 5시인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점심도 안 먹고 나갔다며?”

“친구 만났어요. 친구랑 점심 먹었구여, 엄마 나 좀 잘께여”

어느 순간 배경이 지하철로 바뀝니다. 지하철 안에는 교수님도 계시고, 옆집에 사는 배불때기 아저씨도 있습니다. 군대 동기들도 있고, 학교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전부가 절 모른 척 합니다. 다가가서 말을 걸려고 했지만 아무도 제겐 신경을 쓰진 않습니다.

“모야, 모야. 나야!!! 나란 말이야앗~~!!”

띠리리~띠리리리~!

어디선가 핸드폰이 울립니다. 처음에는 작게 멀리서 울리던 것이 점점 크게 들리더니 고막을 찢을 거 같습니다. 부스스 잠을 깼습니다. 핸드폰은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받아 달라고 지랄을 합니다.

“여보세여?”

“여보세여?”

“네, 말씀하세요.”

“나야, 나!”

으흐핫!! 그녀입니다. 저녁때 연락한다는 그녀의 말이 예의상 했던 게 아니었나 봅니다.

이런 근데 제가 웰케 좋아하져 …? ^^

“지금 부평으로 와라!”

“지금요?”

“그래, 지금! 아까 그 카페로 와!”

“저 내일 학교도 가야하고 …시간이 ….”

뚝~!

“헉!!”

모냐?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 게 어디 있는 거냐!!!

저도 한번 튕겨 볼라고 했습니다.

내일 학교도 가야하고, 지금 시간이 여섯시인데 부평까지 가면 여덟시 ….

으으으 …! 이 저녁에 거기 어떻게 갑니까!!!

부평역입니다. -_-;

 

 

갔습니다.^_^;;

카페 문을 열었습니다. 점심에 왔을 때 알바를 하고 있던 안경 쓴 여자는 없더군여. 아마 오전 오후로 파트타임을 나눠서 하나 봅니다.

다행입니다. 만약 있었음 얼마나 쪽팔렸겠습니까 …

“야! 여기야. 뭘 두리번거려?”

“네.”

알바생이 물을 갖다 줍니다. 제 앞에 앉아있는 여자는 …

헉 …! 모야 …?!!

이 여자, 아까 그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여자의 변신술은 정말 놀랍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단지 옷을 갈아입고 신경 써서 화장을 하고 머리에 핀을 몇 개 꽂은 것뿐인데, 아까의 그녀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오래 기다렸어여?”

“아니, 금방 왔어.”

“ …….”

“어제 오늘 정말 고마웠어.”

“고맙긴요.”

“ …….”

어색한 침묵이 흐릅니다. 서로에게 별 할 말이 없습니다. 하긴 추한 꼴 다 보이고 또 먼 할 말이 있겠습니까 ….

그녀는 멍하니 자기가 시킨 커피를 보고 있고, 저도 멍하니 먼 곳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참, 이 근처에 사시나봐요?”

“응, 여기서 얼마 안 걸려.”

“그렇군여. 어제 부평역에서 내리길 잘했네여.”

“어제? 훗훗훗 …! 아, 그리고 아까는 내가 돈이 없어서 신세 좀 졌다.”

“네에 ….”

“가자. 술 한 잔 살 테니깐.”

그래서 그녀와 전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으 …!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하져?? 그녀가 술을 마시고 어제처럼 또 그러면 어쩝니까?

기분이 안 좋을 때 마시는 술은 금방 취한다는데. 특히 이성과 관련되어 가슴 아파 마시는 술은 조금만 먹어도 울적한 기분에 취하기 마련인데 ….

그녀가 저를 데리고 간 곳은 2층에 있는 작은 소주방입니다.

소주방에는 남녀 두 쌍이 조용하게 술을 마시고 있을 뿐입니다.

그녀가 저에게 메뉴판을 주면서 주문을 하라고 하더군여.

눈물납니다!

또 지 맘대로 시킬 줄 알았더니 ….

“참이슬 한 병 하구요. 안주는 김치찌개 주세여~!”

두 쌍의 커플이 앉아있던 테이블에서 갑자기 큰 웃음소리가 납니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겼을까 말까한 애때 보이는 얼굴들 이더군여.

우리 테이블에 술과 찌개가 나왔습니다. 그녀가 저한테 한잔 따라주고, 자기 잔은 자기가 채우더군여.

말없이 술잔을 부딪쳤습니다. 두 번째 잔부터 그녀는 술을 권하지 않고 혼자서 술을 따라 마십니다.

 


홀짝~ 홀짝~ 홀짝~

‘음 … 이 여자가 혼자 세 잔이나 완 샷을 …? 먼 가 좀 불안하다.’

그렇게 저를 앞에다 두고 혼자서 소주를 반병 정도 마시더군여. 불안이 제 몸을 엄습해 왔습니다. 순간! 아무 말도 없이 술을 마시던 그녀가 그녀가 … 쿵~!! 소리를 내면서 테이블에 머리를 박으며 뻗어버리더군여.

 

 

‘젠장!! 모냐? 모냐? 겨우 반병 마시구 뻗은 거냐?’

츄르르~!

 

 

‘그럼 어제도 소주 반병 마시고?? 그 난리를 ….’

정말 황당했습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타계합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맨 정신으로는 대책이 안 서더군여. 저는 잔에 술을 채우고 입속에 털어 넣었습니다.

“캬아~~~!”

“에휴~!”

술이 넘어 갈 때의 소리와 한숨이 저절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더군여.

내가 여길 왜 나왔을까???

제기랄 …자신이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번에는 내가 돈을 낼 수 없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제가 미쳤습니까! 얻어먹으러 나와서!!!

그녀의 가방을 뒤졌습니다. 별거 별거 다 있더군여. 지갑을 찾아서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지갑을 가지고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했습니다. 흐흐흣 … 당연하지!

지갑에 주민등록증이 보이더군요. 사실 전 이 여자의 이름도 모릅니다. 이름이라도 알자해서 주민등록증을 받습니다. 그런 제 제 눈에 선명히 들어온 것은 …!

760416-2XXXXXX.

 

 

“허걱! 치 … 치 … 칠육?!!!”

추 …, 충격 먹었습니다!!!

저여?? 전 75년생!!!

그것도 생일 빨라서 제 친구들은 전부 74년생입니다. 그래서 저도 74년 대우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도 어린 게 대체 날 어떻게 보고 … 대뜸 바, 바, 반말을 …!!!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제가 그렇게 어려 보였나 봅니다. 아니면 이 여자는 원래 이러던가. 하지만 지금 이런 쓸 때 없는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술 먹고 뻗은 그녀를 앞에 두고 저 혼자 앉아 있으면 뭐 합니까!

별수 없습니다.

또 그녀를 업었습니다.

‘제발 어제처럼 오바이트만 하지 마라. 제발~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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