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를 한 가지 소개한다. 1693년 8월 4일 베네딕도 수도회의 나이 지긋한 수사 돔 피에르 페리뇽(Dom Pierre Perignon)이 오빌리에(Hautvilliers) 수도원의 양조장에서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페리뇽은 들뜬 목소리로 동료 수사들에게 양조장으로 오라고 외쳤다.
“빨리 와보게!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네!”
페리뇽이 흥분한 것도 당연하다. 몇 년 동안 시행착오를 되풀이한 끝에 드디어 거품이 이는 술의 양조 비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흥미로운 일화는 실화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페리뇽이라는 수사가 거품 이는 백포도주를 발명했다는 생각은 19세기에 날조된 마케팅 신화라고 한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술인 삼페인은 우연한 발견과 (프랑스인인 내 모친께서는 분명 충격을 받으시겠지만) 영국인의 독창성이 빚어낸 산물이다.
샴페인은 원래 포도주의 종류가 아니라 프랑스의 포도 산지인 샹파뉴를 가리키며 스페인의 카바(Cava)나 이탈리아의 프로세코(Prosecco)와 비슷한 음료다. 중세만 해도 샴페인은 현재와 달리 거품이 일지 않으며 회색빛이 도는 술이었다. 그 당시에도 평판이 좋은 술이었지만 보르도(Bordeaux) 포도주의 높은 명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사실 샴페인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까닭은 품질이 좋아서라기보다 국왕 대관식이 거행되던 렝스(Reims) 성당과 가까운 지역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샹파뉴의 포도주 양조업자들은 적어도 왕실의 후원은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샴페인이 세계 최초의 발포성 포도주(sparking wine)일까? 아니다. 그 영광은 1531년 프랑스 남부의 요새 도시인 카르카손(Carcassonne)에서 멀지 않은 생틸레르(St. Hilaire) 수도원의 베네딕도 수사들에게 돌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페리뇽이 그곳에서 양조 기술을 배웠다는 이야기도 “별을 마시고 있어”와 같은 허구에 불과하다. 죄송해요, 어머니!
사실 샴페인에서 생기는 거품은 페리뇽이 살던 시대에만 해도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제조 공정이 잘못되었음을 나타내는 징후이자 이상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리뇽에게 거품이 보글보글 한 샴페인은 ‘악마의 술(le vin du daible)’로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샴페인의 거품이 악마의 간섭이 아니라 유기화학 반응의 조화 때문에 생겨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샹파뉴는 프랑스의 최북단에 있어 겨울이 매우 춥다. 이곳에 서리가 내릴 때면 당을 알코올로 분해하는 효모의 화학반응이 한동안 일어나지 않는다. 가을이면 마무리되어야 할 발효과정이 늦춰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이듬해 3월에 햇포도주를 병에 받을 때면 휴면 중이던 효모가 봄 햇살을 받고 깨어나 갑자기 병 안에 가득 찰 정도로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이 이산화탄소가 거품을 만드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의 유리 제조 기술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내부에서 거품이 발생하면 압력 때문에 병이 깨지는 일이 많았다. 거품은 페리뇽에게는 손해와 망신을 초래하는 골칫거리였다. 더 큰 문제는 철제 마스크 등의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포도주 창고에 들어갔다가는 유리 파편에 맞아 눈이 멀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기름칠한 삼으로 된 헝겊조각이나 나무 마개 덕분에 깨지지 않은 술은 서둘러 국내 소비자에게 팔려나갔지만 일부는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영국에 도착한 샴페인은 배에서 내려지자마자 유효기간을 늘리기 위해 새 병에 담기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영국의 용광로는 역청탄을 연료로 썼기 때문에 나무를 땔 때보다 훨씬 높은 열을 냈고 결과적으로 더 튼튼한 유리병을 만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영국인은 헝겊조각보다 코르크 마개로 밀봉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종류의 술이 탄생했다. 탄산가스가 튼튼한 유리와 코르크 마개 덕분에 병 속에 갇히면서 거품이 가볍게 일던 술이 거품이 풍부하게 터지는 술로 변모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인은 거품이 이는 샴페인을 보고 가깝고도 먼 프랑스의 적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분노를 터뜨렸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파티에 미쳤던 찰스 2세 시대의 영국에서는 거품 이는 샴페인이 짜릿하고 진기한 술로 대환영을 받았다. 페리뇽이 포도주 생산 공정 개선에 이바지하고 적포도로 비발포성 백포도주를 만들었으며 여러 품종을 혼합하는 실험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악마의 술’에 대한 해외 주문이 폭주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프랑스의 상류층 고객도 그에게 거품 이는 샴페인을 주문하기 시작했고 당황한 페리뇽 수사는 바뀐 현실에 적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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