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앉은 모든 사람에게 전채를 내고 나서 우리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넘치는 음식물을 받은 데 대해 감사의 말을 하기 전까지는 빵부스러기 하나도 입에 넣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대부분 (전통적으로 영국인은 그렇지 않지만) 식사를 하기 직전에 전지전능한 신에게 짧고 간단한 감사 기도를 올린다.
힌두교 신자도 비슷한 식전 기도를 올리는 반면에 유대인은 식사를 하고 나서 비르카트 하마존(Birkat Hamazon)이라는 기도를 드린다. 이슬람교 신자는 식전 기도문인 비스밀라(Bismillah: 신의 이름으로)와 식후 기도문인 알함둘릴라(Alhamdulillah: 신에게 찬양을)라는 이중 장치로 만전을 기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중세 이슬람교 신자는 식사를 끝마치기 전에는 알함둘릴라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식사 도중에 이 말을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은 그보다 중요한 용무가 있으니 식사를 중단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식전 의식이 항상 종교적인 의미를 띠는 것만은 아니었다. 청동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음식 냄새만큼이나 향긋한 내음이 나도록 손님들 손에 도금양(도금양과의 관목으로 동남아에서 흔히 자라며 열매는 식용으로 씀), 생강, 향나무를 섞은 향유를 바르고 나서야 연회가 시작되었다. 고대 이집트, 로마, 그리스에서는 중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향유보다는 물로 손을 씻는 것을 선호했다. 다만 이집트의 상류층은 머리에 화관과 향이 나는 밀랍 장식을 쓴 채로 연회장에 나타났다. 밀랍이 식사를 하는 동안 녹아내리면서 그들이 쓴 가발은 페브리즈 분무기처럼 향내를 발산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향을 뿜어내는 장식을 머리에 이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를 기리기 위해 의식용 화환을 소지한 채로 연회장에 갔다. 프로메테우스는 진흙으로 인간을 빚고 다른 신들에게서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가져다준 신화 속의 티탄족 신이다. 인간을 위해 도둑질을 한 대가로 그는 날마다 재생되는 간을 독수리에게 영원히 쪼아 먹히는 고문을 받았다.
어쨌든 프로메테우스의 신화 덕분에 신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도축된 동물의 지글거리는 지방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고대 그리스의 연회는 신에게 바친 동물의 지방을 태우고 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며 폭이 넓은 잔에 포도주를 가득 채우는 의식으로 시작되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그리스 신들의 심기를 달래려면 그 정도 의식은 필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인간이 먹을 고기와 술이 잔뜩 생긴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의식이었다.
손 씻기는 수천 년 동안 지켜야 할 식전 관습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식기류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해결책이었지만 권력자들이 손 씻기를 연회의 관습으로 정착시킨 까닭은 음식물에 묻는 오물이 두려워서만은 아니었다. 중세 프랑스에는 연회 시작 직전에 뿔을 불어 사람들에게 앞에 놓인 물병에 손을 넣고 씻을 것을 알리는 관습이 있었다. 손님들이 그렇게 손을 담그고 있는 동안 검식관이 마술인지 연금술인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코스별 요리를 분석했다. 상어 이빨, 개구리의 일부, 수정구슬 등이 음식물 속의 독을 찾는 데 동원되었다. 피가 나오거나 색깔이 변하는 음식이 있으면 그 안에 독이 들었으며 범인이 연회장 안을 배회하고 있다고 여겼다. 귀빈의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여부는 검식견이 확인했다. 그러나 편집증이 심한 사람은 그러한 과정으로도 안심하지 못했다. 루이 14세는 대부분 혼자 먹거나 왕비하고만 식사했으며, 그의 식사는 주방에서 자물쇠로 잠근 식기에 담겨 무장한 경위병의 호위를 받으며 차려졌다. 주방에서 식탁까지 오는 과정에서 독이 들어갈 가능성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아, 요즘 식당에도 웨이터가 수프에 침을 뱉지 못하게 막을 무장 특공대가 지키고 있다면 좋으련만. 아쉬운 일이다.
'역사·문화 >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09. 황금빛 미소를 위한 치과 시술 (1) | 2022.08.20 |
---|---|
08. 연금술과 '생명의 물' (1) | 2022.08.19 |
06. 거품이 이는 '악마의 술' (1) | 2022.08.17 |
05. 혁명가들의 바지 (3) | 2022.08.16 |
04. 어떻게 늑대가 개로 변신했을까? (1) | 2022.08.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