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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당신의 부는 친구가 결정한다>

07. 상대를 지지해 신뢰를 얻어라.

by BOOKCAST 2022.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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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에 포숙아(鮑淑牙)와 관중(管仲)이라는 매우 친한 두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장사할 때마다 언제나 더 많은 이익을 챙기는 건 관중이었다. 그렇다고 관중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중이 재물을 탐내는 자라고 여기며 손해만 보는 포숙아를 대신해 관중을 비난했다. 하지만 포숙아는 관중의 집안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를 변호했다.
 
관중은 또한 수차례 포숙아의 일을 망치기도 했고, 과거에 세 차례나 낙방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관중을 쓸모없는 인간이라 손가락질할 때 포숙아는 관중은 단지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두둔했다. 관중은 전쟁 중 탈영한 이력이 있어 사람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로 놀림을 받곤 했다. 포숙아는 이때도 역시 ‘집에 계시는 노모 때문’이라며 그를 변호하고 나섰다.
 
나중에 두 사람 모두 제(齊)나라를 위해 일했지만 모시는 주군은 서로 달랐다. 둘은 서로 다른 진영에서 각자의 주군을 위해 싸웠다. 관중은 포숙아가 모시는 제나라 공자 소백(小白)이 쏜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기도 했다. 두 세력 간 권력 다툼에서 소백은 결국 왕위를 계승하여 제환공(齊桓公)이 되었다.
 
제환공은 왕위에 오른 뒤 관중을 죽이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포숙아는 사력을 다해 관중을 보호하고 나섰다. 포숙아는 재상의 자리를 한사코 거절하며 관중을 그 자리에 추천했다. 포숙아의 관중 옹호는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 관중은 포숙아의 꾸준한 비호 아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결국 제환공을 춘추 오패로 만들었다.

 

 

   
자기 뜻을 드러내는 정보는 단 하나, 바로 지지 여부다. 아무것도 선택하고 싶지 않다면 중도를 걸어도 무방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우정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양측이 상호작용할 때 모든 일은 쉽게 해결된다.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내비쳤을 때 혹시나 반응이 없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다. 당신은 상대에게 당신의 지지가 반드시 되돌아온다고 믿게 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지지는 “난 네 말에 동의해.”라는 한마디 말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명심하라.
 

맹목적인 지지는 지양하라.

우리는 상대방을 숭배하고 맹목적으로 받들기보다는 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상대의 동의와 신뢰를 얻는 데 힘써야 한다. 우리 눈앞의 상대를 존중하고 떠받들다 보면 어느새 상대에 대한 지지는 맹목적 숭배로 변한다. 만약 당신이 상대의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을 때, 당신은 그가 온전히 당신을 믿는다고 여기는가? 당신은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가?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맹목적 지지는 지양해야 한다. 사람은 공평한 관계에서 교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왜곡되고 변질하기 쉽다.
 

상대를 지지하는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단순하게 “네 말에 동의해.”, “네 말이 맞아.”라는 지지의 몇 마디 말로 상대의 신뢰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지는 상대의 공감 외에도 합당한 이유가 뒷받침되어야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진심이 전혀 없고 사건의 본질을 무시한 접대성 발언은 상대가 금방 눈치챈다.
 

‘뒷북치지’ 말라.

비가 그친 뒤 우산을 펴는 모습은 당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가. 결코, 상대 앞에 이런 뒷북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결국, 불리해지는 건 자기 자신뿐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상대가 필요로 할 때는 나서지 않다가 정작 당신이 필요 없거나 모든 일이 다 끝났을 때 어색하게 나서며 자기 뜻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뒷북’은 사람들의 반감을 살 뿐이며 오히려 상대에게 아부한다는 의구심만 심어줄 뿐이다.
 
그러므로 절대 뒷북치지 말라. 적절한 시기를 놓친 지지와 동의는 그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기 마련이다. 지지와 동의 역시 타이밍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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