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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2

06. 탐정이 된 성녀 (마지막 회) 스쿠타리 병원의 상황은 재난과 같았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나중에 이렇게 썼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스쿠타리 병원은 웅장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눈에 그 병원이 실로 백색 무덤, 질병의 온상임을 알 수 있었다.” 왜 그토록 많은 병사가 죽어가고 있었을까?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나쁜 위생이 명백한 원인이다. 세균은 지저분하고 해충이 들끓는 환경에서 전파된다는 사실을 현대인은 잘 안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이 활약하던 19세기 중반에는 질병이 병원균으로 전파되며 소독제와 청소로 대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막 밝혀지던 참이었다. 따라서 병원균과 그 전파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신뢰는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의사가 부지기수였다. 나이팅게일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그녀는 식량과 보급품이 부족해서 사망자가 많다고.. 2022. 11. 2.
05.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흰색 간호복 너머 숨겨진 질병 역학의 개척자 코흐는 자신의 연구업적으로 인정받았지만, 나이팅게일은 역학자라기보다 크림전쟁 당시 “등불을 든 여인”으로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이 병원에서 간호사로 환자들을 돌본 시간은 매우 짧았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로서보다 질병 전파에 관해 연구하고, 토론하고, 분석하고, 보고서를 쓰는 데 자신의 경력대부분을 할애했다. 나이팅게일의 이런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과학지식의 발전이 일반적으로 유럽 백인 남성들에 의해 이뤄진다는 통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과학지식 발전이 스쿠타리의 야전병원에서 일하거나 인도 주재 영국군과 인도 전역에 대해 침실에서 분석한 여성에 의해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식생산에 관한 대중의 고정관념은 나이팅게일의 연구 활동을 가리고, 그를 역학자가 ..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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