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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제국주의와 전염병>

05.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흰색 간호복 너머 숨겨진 질병 역학의 개척자

by BOOKCAST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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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흐는 자신의 연구업적으로 인정받았지만, 나이팅게일은 역학자라기보다 크림전쟁 당시 “등불을 든 여인”으로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이 병원에서 간호사로 환자들을 돌본 시간은 매우 짧았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로서보다 질병 전파에 관해 연구하고, 토론하고, 분석하고, 보고서를 쓰는 데 자신의 경력대부분을 할애했다.

나이팅게일의 이런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과학지식의 발전이 일반적으로 유럽 백인 남성들에 의해 이뤄진다는 통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과학지식 발전이 스쿠타리의 야전병원에서 일하거나 인도 주재 영국군과 인도 전역에 대해 침실에서 분석한 여성에 의해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식생산에 관한 대중의 고정관념은 나이팅게일의 연구 활동을 가리고, 그를 역학자가 아닌 간호사로만 인식하게 만들었다.

나이팅게일이 전기나 논문의 주제로만 주로 다뤄지는 데도 원인이 있다. 그의 활동은 공중보건의 기원에 대한 연구에 점점 더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는 당시 전염병 확산을 연구한 남성 의료 전문가들과 달리 취급되고 있다. 토마스 트로터, 개빈 밀로이처럼 나이팅게일도 외국을 여행했고, 대영제국 전역의 의료 상태와 질병의 원인을 조사하고, 프로토콜을 확립하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나이팅게일이 남긴 방대한 출판물은 역학자로서 그의 역할을 보여주는 증거다.

물론 연구자로서 나이팅게일의 활동은 간호사로서의 일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전쟁과 제국주의는 나이팅게일의 관심을 환자 개개인에 대한 보살핌에서 공중보건으로 옮겨가게 만들었다. 나이팅게일은 스쿠타리 병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한 환기, 과밀 금지 규칙 및 청결을 옹호했으며, 병원 복도와 병실에 필요한 공간의 양을 계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수식을 만들어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여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특정 지역의 환경적·물리적 상태를 조사하며 건강상태에 관한 연구를 계속했다. 배수구나 하수구 등의 환경적 요인에 집중했던 나이팅게일은 세균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했다. 세균이론은 자신이 스쿠타리에서 관찰하고 인도, 러시아, 그리고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전해들은 냉철한 현실을 훼손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아즈마 이론을 지지했고 미생물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역학 분야 형성에 기여한 일련의 관행들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메이카의 개빈 밀로이와 카보베르데의 제임스 맥윌리엄처럼, 나이팅게일의 접근방법과 분석 주제는 그 어떤 이론보다 가치 있었다. 환경조건에 대한 나이팅게일의 이론은 공중보건을 발전시켰다. 사망률, 출생률, 질병 발생률에 대한 신중한 분석은 전염병의 주요 특징으로서 통계 분석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의 보고서와 서신은 전염병을 추적하고 연구하는 관료체계의 역할을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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